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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리뷰] 조정래, 『정글만리』: 조정래의 현대 중국사회 강의
우리 문학계의 거장인 조정래 작가의 신작이자, 2013년 가장 큰 사랑을 받은(100만부 돌파) 소설로 단연 꼽을 수 있는 『정글만리』를 저도 독파했습니다. 이 작품은 중국을 무대로 여러 국적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경제전쟁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점들은 현대 중국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중국이 대세라는 이야기를 근래에 빈번하게 들었지만 막상 중국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죠.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몰락의 길을 걸었던 쏘련과 대조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라든지, 공산당 독재 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사회주의적 이념이 중국의 지도자 및 민중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등을 교육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까지 20여년 간 취재하고 공부하고 고민했다던데, 그 훈련이 소설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정글만리』는 좋은 소설이라고 평가하기가 머뭇거려집니다. 이 소설의 화자들이 쏟아내는 중국에 대한 정보들은 작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비즈니스 맨이 몇 페이지에 걸쳐 한, 중, 일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와 디테일한 수치를 독백으로 내뱉는데, 이러한 장면은 그럴듯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이 소설 사이, 사이에 너무나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의 최고작으로 흔히 꼽히는 『태백산맥』과 비교를 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해집니다. 『태백산맥』에서도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비추어 견해를 피력하는 장면들이 왕왕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 무대에서 작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각 인물들의 형상화가 강렬하기 때문에 그들의 발언들이 그 캐릭터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하지만 『정글만리』의 경우에는 그와 같이 형상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과 작가가 빈번하게 겹쳐보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종국에 가서도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려내는 드라마가 각인되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들에 닿아지기 보다는, 조정래 작가의 현대 중국사 강의를 들은 느낌을 더 줍니다.
공들인 취재가 오히려 소설에서 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획득된 정보가 소설 속 인물을 압도할 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설은 소설만의 미학을 잃고 정보를 전달하는 하나의 매체에 불과해 버립니다. 물론 소설도 정보를 전파하는 하나의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에 기대하는 모든 것은 아니겠죠.
저 같이 중국에 문외한 사람은 어쨌든 그럼에도 여러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또 이런 저런 생각도 하게 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현대 중국에 대해 공부가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소설에서 피력하는 입장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견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것이 다소 단정적인 뉘양스를 취하다 보니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과 같이 다양한 입장들이 소설 속 인물의 긴밀한 형상화를 통해 무대화되고, 그러면서 조율과 파토가 진행되는 방식으로 소설의 서사가 구성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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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조정래, 『정글만리』, 해냄, 2013.
http://cisiwing.blog.me/120205222298 (1권)
http://cisiwing.blog.me/120205497921 (2권)
http://cisiwing.blog.me/120205576295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