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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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나에게 온 소년이, 당신에게도 가길.

 

 

<1>

 

몇 년 전 독서모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광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단 하나. 5.18광주항쟁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익히기 위해서다. 나는 1984년생. 기억할 5.18이 없다. 1980년에 나는 없었다.

 

같이 여행을 간 한 선배는 89학번으로 광주가 학생운동의 주요한 동력이 되던 때를 거쳤다. 그는 원래 운동권이 아니었다가, 같은과 선배가 투신 하는 것을 보고 학생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선배는 졸업 후 오랜 시간 환경단체에서 활동가 일을 했다.

 

광주를 여행하면서 선배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울분. 그리고 학생운동의 궤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돌면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인물들에 대한 얘기들도 들려줬다. 그리고 이후, 나는 다 잊고 말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나는 고3이었다. 야자를 땡땡이치고 광장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은 말도 안 되는 승리를 연달아 일궈냈고, 그럴수록 다음날 학교에서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허벅지는 아팠지만, 우리는 모두 덜 아팠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날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의 시공간은 나의 어딘가에 스며들었고, 나는 문득문득 그 때의 감격을 감각한다. 하지만 5.18은 나에게 그런 감각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을 익혀야 하고, 익혀야 한다.

 

그런 내게, ‘소년이 온다’


 

<2>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녀는 본 소설에서 ‘그날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소설은 동호라는 한 소년을 중심으로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한 사건과 그 사건의 여파를 다룬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하던 소년 동호는 왜 끝끝내 죽음의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까.

 

처음 누나들을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중 사실이 아닌 게 있었다.

역전에서 총을 맞은 두 남자의 시신이 리어카에 실려 시위대의 맨 앞에서 행진했던 날, 중절모를 쓴 노인부터 열두어살의 아이들, 색색의 양산을 쓴 여자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던 저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시상에, 옥상이여.

(···)

옆 빌딩 옥상에서 다시 총성이 울렸다. 비트적비트적 일어나려던 남자의 등이 튀어올랐다. 배에서부터 번진 피가 삽시간에 상반신을 감쌌다. 옆에 선 아저씨들의 얼굴을 너는 올려다봤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머리가 벗어진 아저씨가 입을 막으며 소리 없이 떨었다.

(···) 옆 골목에서 청년들 셋이 달려나갔다. 쓰러진 사람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막 일으키려 했을 때,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발 총성이 터졌다. 맥없이 청년들이 쓰러졌다.(···)

정적 속에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군인들의 대열에서 2인 1조로 이십여명이 걸어나왔다. 앞쪽에 쓰러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때를 기다린 듯, 옆 골목과 맞은편 골목에서도 여남은명이 달려나가 뒤쪽에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업었다. 이번엔 옥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정대를 향해 그들처럼 달려가지 않았다. 네 곁에 있던 아저씨들은 숨이 끊어진 일행을 업고 서둘러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갑자기 혼자 남은 너는 겁에 질려,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을 곳이 어디일까만을 생각하며 벽에 바싹 몸을 붙인 채 광장을 등지고 빠르게 걸었다. 31~33(강조는 인용자, 이하동문)

 

그래서 동호는 끝까지 남았다. 정대가 그냥 학살의 희생자로만 남기를 원치 않았기에. 충분히 겁을 먹었기에. 정대의 누나 역시 행방불명이었기에. 아니, 그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사건 이후 동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쫓으며 소설은 계속된다. 그들의 사연은, 참혹하다. 그 참혹함을 양분으로 삼고,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 대한민국, 만세다.

 

 

<3>

 

소설은 광주라는 사건, 그 자체만을 숭상하진 않는다. 우리가 광주에 이르기까지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 곳곳의 광주들을 상기시킨다.

 

당신은 하루에 열다섯시간 일했고 한달에 이틀 쉬었다.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다. 잔업수당은 없었다. 하루 두알씩 타이밍을 먹어도 잠이 쏟아졌다. 선 채로 잠들면 작업반장이 욕을 하거나 뺨을 쳤다. 오후부터 묵직하게 붓던 종아리와 발등. 물품을 빼돌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퇴근하는 여공들을 몸 수색하던 경비들. 브래지어 언저리를 더듬을 때 느려지던 그들의 손. 치욕. 기침. 잦은 코피. 두통. 가래를 뱉으면 뭉쳐져나오던 거무스레한 실밥 덩어리들.

우리는 고귀해.

성희 언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한자 공부를 할 거란 성희 언니의 말에 당신은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 모임에 들어갔었다. 실제로 언니들은 모이자마자 한자부터 공부했다. 1800자는 알아야해, 신문은 읽을 수 있어야지. 각자 펜글씨 공책에 서른자씩 쓰고 암기하는 일이 끝나면 성희 언니의 어색한 노동법 강의가 시작되었다.(···) 헌법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고귀해. 그리고 노동법에 따르면 우리에겐 정당한 권리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처럼 상냥하고 낭랑했다. 이 법을 위해 죽은 사람이 있어. 154~155

그곳에서 당신은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렸다. 과거 여공이었고 노조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당신을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더러운 빨갱이년.(···) 일상적인 그 환한 조명 아래, 당신이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170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던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206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212

 

 

<4>


익혔던 교육들은 가고, 한 소년이 온다. 나에게 온 소년이, 당신에게도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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