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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평점 :
[독후감] 강신주,『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동녘, 2010.
- 강신주라는 다리와 대중의 인문학 읽기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시와 철학일 겁니다. 시와 철학은, 오르기만 하면 그래서 그 고도감에 적응하기만 하면, 시인과 철학자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빼어난 산과도 같습니다.(5)
산이나 책은 모두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너무 친숙해서 되돌아보지 못한 우리 삶을 조망하기에 적당한 거리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내려오기 위해서라는 사실, 마찬가지로 시집이나 철학책을 읽는 것도 삶을 건강하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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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가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학의 인문학과들이 통·폐합되고, ‘고전은 너무나 유명해서모두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아 의미 있는 저서’라는 규정이 유머가 되어 통용됩니다. 시는 물론이거니와 소설조차도 여간해서는 1만부 이상 나가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국이 낳은 한 명의 인문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강신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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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시민단체를 창립하는 일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시민단체의 근간이 되어야 할 ‘시민’이 단체와 점점 괴리되어 외부에서 물질적 지원만하는 타자로 전락한 상황과 관련합니다. 시민단체는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기 보단 국가의 지원금에 기댄 안정적 기구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 지향 속에 시민은 자꾸만 외부로 밀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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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힘은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낸데 있습니다. 그것은 대중의 고민을 고민하는 일이고 동시에 인문학의 현재적 역할을 정초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나와 너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지향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인문학적 질문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죠. 어쩌면 인문학은 그동안 윤리의 울타리를 쌓고, 이 질문을 독점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대중을 물질의 노예로 손쉽게 규정하고 타자화시켰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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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민단체에서 맡은 일은 ‘연구’부분입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꼭지로 분류 가능한데 ①그 동안의 시민단체(혹은 NGO) 활동의 의의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다시 시민을 근간으로 한 단체의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오늘날 필요한 시민단체의 상相 만들기). 그리고 ②는 사회학 이론/논의를 쉽게 풀어내는 일입니다. 많은 석학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고 그 나름의 입장과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연구자들 안에서만 유통되는 일종의 ‘기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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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혼자만 알면 무슨 소용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읽고 나누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나름의 노력들도 해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민단체라는 좀 더 구체적인 형태의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엄밀한 연구의 길을 천착하는 분들도 물론 있어야겠지만 그 논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리도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강신주의 활동(많은 비판이 있지만-나이브한 현실적용)을 긍정하는 것도 저의 지향과 겹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부실한 공부가 제대로 된 가교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함께 해 간다면 의미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게다가 ‘무지한 스승이 더 낫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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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형태의 단체가 될지 아직은 구상 중에 있지만,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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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
- 독후감인데 책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어서 몇 마디 붙입니다.
우선 이 책의 장점은 만만치 않은 시와 철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시인과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각기 다른 시각들을 제시해줍니다. 또한 더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코너를 통해 깊은 만남을 원하는 독자를 위한 창구도 마련해 놓았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 또한 있습니다. 이 책은 어쨌거나 대중강연의 원고를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강연이 갖고 있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즉 짧은 시간에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비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반복적인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논의 수준의 편차가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중을 고려한 가벼운 발걸음은 철학자들 간의 차이를 상당부분 상쇄시켜 뭔가 반복적인 느낌의 독서가 되는 것도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