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나라의 앨리스 펭귄클래식 72
루이스 캐럴 지음, 이소연 옮김, 존 테니얼 그림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독서감상] 루이스 캐럴,『거울 나라의 앨리스』

- 당혹감을 해소하기



1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전개가 계속되는데도 소설(동화)은 그 상황들을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채 가볍게 지나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구조적인 틀에 의해 전개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큰 틀로 보면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거울 나라에서 앨리스는 퀸이 되기 위해 전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앨리스가 왜 퀸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전진과 거꾸로 사이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전혀 해명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말장난의 연속은 몽롱함을 유지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2

어쨌거나 이 동화는 ‘잠이 들고, 꿈을 꾸고, 잠을 깨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거울 나라는 바로 그 ‘꿈을 꾸는’ 세계의 일이지요.


3

꿈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절대적인 세계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 세계 자체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던질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질문을 던지며 회의를 갖게 된다면 꿈은 끝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그 세계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꿈은 끝이 납니다.


4

제가 꾼 두 가지 꿈을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세계를 견디지 못해 끝이 난 꿈입니다.

*

저는 한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처음엔 안락한 고향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익숙한 집들이였고 익숙한 골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저를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뭔가 조금씩 제가 생각했던 익숙함에 균열이 일었습니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계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계단이 있었고, 원래는 옥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붕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숨어 있었고 대신 고양이만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지친 저는 뜬금없이 올려진 계단의 끝자락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너편에 있던 정원 딸린 예쁜 집에 호랑이 3마리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갑자기 웬 호랑이라니.

저는 놀란 눈을 다독이며 계단을 내려가 그 집 앞으로 걸어갔습니다(다행히 문은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호랑이는 고양이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원집의 문 앞에서 그것들은 그저 귀여운 고양이 3마리였습니다. 갸우뚱한 눈을 추스르며 다시 멀어져 봤습니다. 고양이는 다시 점점 호랑이로 변해갔습니다. 순간 배회하며 봤던 많은 고양이들이 생각이나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배회에 계속 참여했던 내 곁의 고양이는 여전히 제 곁에 있었습니다. 정원집의 창문에서 겁에 질린 채 저를 바라보는(혹은 제 곁의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을 발견하는 순간 철렁히는 가슴에 힘입어 꿈에서 깼습니다.


5

두 번째 꿈입니다. 이번에는 질문을 던져 추방당한 이야기입니다.

*

즐거운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막연하게 교회 수련회에 와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계 교회 수련회의 끝은 항상 캠프파이어로 막을 내린 경험이 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부드러운 손들을 붙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밤이 너무 어두운데 하늘은 너무 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달이 두 개였던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그것이 충격이라기보다는 ‘어라?’에 가까웠고 막연하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겁고 익숙했던 세계가 갑자기 다소 낯선 세계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쁜 미소의 만류를 거절하고 조금 걸어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특히나 가까웠던 누나 한 명이 따라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제 손을 잡은 누나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뭔가 낯설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달이 원래 두 개인 것이 맞는지, 이 모임은 무슨 모임인 건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따위의 말을 했습니다. 누나는 이상한 생각을 한다면서 계속 놀러가자고 제 팔을 자신의 가슴에 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를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이 뭐였지? 그리고,

“누나는 누구세요?”

그 질문의 뒤로 캠프파이어 군중의 귀들이 밀려왔습니다. 캠프파이어의 세계는 균열이 났고, 군중들은 모두 벤치 뒤에서 저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망연자실해하며 잡아당기는 그들의 아귀 속에서 ‘이것은 꿈이다’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세계에서 추방되었습니다.


6

라캉은 인간이란 자기 인생에서 두 번 큰 ‘사기술’을 경험하고서야 ‘정상적인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거울 단계에서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나’의 토대를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 단계를 통해 자기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아버지’에 의한 위협적 개입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상성’은 자기기만을 통과하고 또 그것을 유지함으로서 가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보면서 느낀 그 당혹감은 그 ‘정상성’ 이전의 것을 상기시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자기기만 이전의 무엇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앨리스의 ‘거울나라’에서 제 꿈들이 떠올랐던 것도 그 둘이 같은 성격을 가진 세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시하게 여기는 ‘정상성’은 매일밤 우리가 꾸는 꿈속에서 매번 의심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면서 느낀 당혹감을 제 나름 추적해 봤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전혀 당혹감으로 다가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이 동화를 읽고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임에도 역시나 당혹감은커녕 즐거움을 느끼는 어른들, 그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네요. 그런데-어쩌면,

그들의 생각을 듣겠다는 저의 이 ‘생각’도 ‘정상성’의 강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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