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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독서감상] 김애란,『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 ‘유유자적한 화자’를 앞세워 ‘쿨’한 감동을 주는 소설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자 많은 매체에서 2011년 최고의 한국소설로도 꼽힌『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었습니다.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깊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그냥, 그냥, 그랬습니다.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냈기 때문에, 저는 아쉬웠던 점들을 꼽아보고자 합니다.
1. 덜 매력적인 화자
- 저는 조로증을 앓는 작중 화자가 너무 착하고, 인생을 달관한 태도를 보여서 오히려 매력이 떨어졌습니다.
김애란은 본 소설을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라고 명명했는데요.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의 설정과 그에 따른 의미화가 본 소설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어린 부모’에 비해 ‘늙은 자식’이 너무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고, 그래서 양자 간에 ‘어떤 긴장’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조장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어떤 긴장’은 작중화자가 좀 더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그리고 삶과 죽음 앞에 고군분투 할 때 발생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오욕칠정’1)으로부터 이미 달관된 영혼의 소유자였던 화자는 ‘어른 부모’에 비해 너무 인간적이지가 않아서, 인간적으로 너무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에 쳐해 있었지만 인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설정이 일종의 ‘쿨’한 감성을 소설 전반에 까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깊숙하게 찌르며 다가오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이야기의 의미화에 대하여.
- 저는 본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이서하의 반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귀병을 앓고 있던 화자에게 이서하는 완전히 새로운 외부와의 접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사기’임이 드러났음에도 소설은 그 사건을 그다지 의미화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PD 아저씨의 추정처럼 단지 소설지망생이 ‘미친 장난’을 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화자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년 아저씨 이서하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그의 태도와 너무나 손쉽게 ‘사기’를 넘어서는(얼마 간 게임 중독에 빠진다는 설정도 너무나 진부하고) 그의 모습에서 다시금 ‘소멸 된 오욕칠정’을 봅니다.
이서하의 반전은 독자에게 ‘깜놀’을 선사하지만, 어떤 의미의 자장을 선사함으로서 소설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가장 핵심적인 플롯인데도, 전체 서사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혼합되어 의미의 자장과 파격을 주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 그리고 어머니와 PD 아저씨와의 은근한 섬씽을 그리기도 하지만, 이것도 그저 수상한 기류에 그치고 전체 서사와 별 상관없이 정리됩니다. 장씨 아저씨와 소주를 마시며 삶의 마지막 제의를 치르는 것도 전체 서사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의미화 되어간다기보다는, 그냥 소설적 장치로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치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남기는 소설이 지나치게 몽환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를 임신하게 된 것을 부모가 숨기고 있었고(둘째 애가 등장하는 맥락에서의 인과성도 부족하고, 그것을 숨기는 부모를 이해하고 모르는 척 하는 화자도 왜 그래야 했는지, 그리고 하필 마지막에서야 알고 있음을 고백했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매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또, 다 이해하고 마는 화자의 태도에서 발견되는 ‘정신승리’는 전체 서사와 또 어떤 맥을 가지고 의미화되고 있는지도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설정자체가 ‘어린 부모’와는 다른 ‘늙은 자식’이었고, 그래서 ‘애’이고, ‘자식’이지만 모든 것에 있어 ‘유유자적’한 캐릭터였다고 당위를 요구한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그냥 저냥 고개를 끄덕여야겠지요.
사실 김애란은 그 명성에 비해 제가 아직은 그렇게 감명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하는 저의 취향 때문에 본 소설은 좀 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인데, 결과적으로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통해 감동을 받고 위안을 받았다고 하니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 같긴 합니다. 다음번에는 저도 그 ‘감동’과 ‘위안’을 받은 ‘많은 분들’ 속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사람의 다섯 가지 욕심와 일곱가지 감정.(오욕:재물욕(財物慾)·명예욕(名譽慾)·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색욕(色慾), 칠정:㉠.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 ㉡. 희·노·우(憂)·사(思)·비(悲)·경(驚)·공(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