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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집으로 가는 길/ 아스마엘 베아
‘전쟁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너무 낯선 전쟁을 알려주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동일시된다. 그만큼 인류는 전쟁과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고 전쟁을 통해서 스스로를 확장시켜갔다.
우리는 전쟁에 대해 잘 안다. 어떤 전쟁으로 어떠한 세력이 확장되었고 또 어떤 전쟁으로 어떠한 세력이 약화되었는지. 하지만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그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이 누군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희생됐는지. 항상 그렇다. 전쟁을 일으키는 소수의 지도자와 그것을 뒷감당하려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 국민들, 그리고 너와 나. 인류의 보편적 도덕의 상징인 살인을 하지 말라는 덕목은 전쟁 시엔 가장 외면해야하는 덕목이 된다. 전쟁 시에는 더 많이 죽여야 영웅이 된다. 이기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죽어버린 그들에게 아무리 그럴 듯한 칭호를 붙여줘도 죽음 앞엔 허망하다. 그리고 그 칭호조차 덜 죽은 그들만의 칭호에 불과하지 않던가? 패자는 구덕이의 먹이로 전락한다.
별 볼일 없는 정당성과 명분을 억지로 만들어 놓고 죽기 싫으면 죽여라고 강요하는 전쟁.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것이 전쟁인 것 같지만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 또한 전쟁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다수 국민의 동의에 의해 일어나기 보다는 극소수의 지도자가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지못해 총을 쥐고 적진을 향해 죽이러 혹은 죽으로 간다.
우리는 이야기 한다. 우리를 겁탈한 침략자들의 잔인함을. 그들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혐오를.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우리 역시 그렇게 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오히려 그 모든 병사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악한 인간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만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한 국가인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다룬 자전적 회고록이다. 어떻게 전쟁이 불쑥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래퍼를 꿈꾸던 순박한 소년이 어떻게 살인병기로 변해버렸는지, 왜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지를 용기를 내어 회상하고 있다. 그의 용기가 너무 고맙고 대견스럽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휴전 상태이다. 나 역시 군대를 다녀왔고 나의 주적이 누군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주민이 굶어 죽어가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마음 한 구석에선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주적이며 그들이 죽어가고 망해갈 수록 그만큼 우리를 향한 위협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내게 욕을 할 수 있나? 난 단지 전쟁을 하기 싫을 뿐이다.
작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다. 좌파 빨갱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 별칭에 걸 맞는 제안을 한다. GOP의 병사를 서로 철군시키자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개념 없는 제안인가? GOP가 어디인가? 전쟁이 발발할 시 가장 빨리 그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고지가 아닌가? 더 어이없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의 대답이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자. 충격적이지 않나? 우리는 당연히 북한이 우리를 먼저 쳐들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북한은 우리가 먼저 쳐들어 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GOP 철군을 제안할 때 거부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나?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 정말 우리에겐 축복인가? 여전히?
전쟁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 그 전쟁이 국익에 도움이 되고 결국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반대해야 한다. 만약 당신은 국익을 위해 당신 한 목숨 쉽게 버릴 수 있나? 그러지 못할 거면서 왜 남에게는 강요하고 당신은 외면하는가? 그리고 전쟁이 과연 뭔지를 알기나 하는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은 대부분 못사는 서민들이다. 돈이 급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미군들은 이라크 전을 치루면서 수 없이 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는 그런 미군 병사를 욕한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었을까? 이스마엘 베아가 처음부터 살인병기였을까?
전쟁의 현상에 초점을 모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전쟁 자체에 초점을 모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항상 현상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것도 얼마든지 다시금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 사슬을 차고 있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그것에 동의하고 있었음은 잊고 있다. 그리고 남 탓하기 바쁘다.
칼을 들고 누군가를 찌르고 총을 들고 누군가를 쏘는 것만이 살인인가?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데 외면하는 것도 살인이다. 누군가가 외로워 죽고 싶어 하고 있을 때 바쁘다며 그의 손을 뿌리치는 것도 살인이다. 지금 당장 죽지 않고 또다시 생명이 연장된다 해도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 그에게 살아있으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할 수 있나? 삶과 죽음 그 사이는 단 하나의 경계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스마엘 베아의 살인행위가 그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살인행위도 우리의 잘못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스마엘 베아가 겪은 세계와 우리가 겪는 세계는 너무 틀리지 않나? 이스마엘 베아의 정당성을 우리에게 부여하기에 우리는 너무 부끄럽지 않나?
이 책이 많이 읽히고 있다는 소식이 너무 반갑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을 읽은 당신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기회를 통해 어떠한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고 또는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전쟁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국사 교과서나 세계사 교과서에 적혀있는 문자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해 있는 그런 전쟁을.
추천강도 ★★★★(4.0점)
08.01.25 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