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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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우리는 잊고 있다. 망각하고 있다. 세대간의 소통이 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해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있고 북으로는 주적이라는 북한이 서있고 그래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의 쪼개진 땅에서 그냥 그래 산다.

이 책은 북한의 현주소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지금도 북한은 굶어죽어가고 있고 얼마 전 홍수로 또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북한을 우리민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북한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좌파라 말한다. 그리고 북한이 어서 망해주기를 기다린다. 다들 죽어버리기를 바란다. 여전히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지배 속에 머물고 있다.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북한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단 한마디 우리의 주적이다. 그 뿐이다. 그 속에 인간, 북한인은 없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오랑캐에게 무릎 꿇은 것만이 치욕인가? 서구의 자본주의 아래 지배되어진 어쩔 수없는 이라는 이름의 자의적인 복종이 더 치욕인 것 아닌가?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 굴욕을 되물려주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 덕에 우린 그런 굴욕은 모르게 된다. 왜 이주 노동자를 때리는가? 과거에 우리도 그렇게 맞았었기에? 우리보다 돈 많은 자는 우리보다 잘 사는 자인가? 잘 산다는 게 왜 돈 많다는 의미가 되는가? 오호라 자신의 자의적 행동이라 믿는 그 타의적 배경을 알지 못하니 왜 이렇게 살아야는지 도통 알쏭달쏭해진다.

분명 그 말을 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자기의 노력 여하에 인생의 성공이 달렸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밟고 설 수 밖에 없다. 성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믿고 있으니깐.

-생존의 의미

마지 못해 사는 사람들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생존의 이유 따위를 생각하기 보단 습관으로 형성된 삶의 연속이 자신을 이끌어가고
한국은 어느새 하루에 33.5명이 자살을 하는 세계 최고의 자살국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잘 산다고.

명품으로 치장하고 최적화된 미의 형상에 맞추어 칼질을 하고
웃으며 뒤를 케내는 지혜를 발휘하여 몸 값을 불려가고
그러면서 외롭다고 자살하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가장은 한다고 하지만 결국 술을 먹고 와서 마누라를 패고
마누라는 그런 그를 한 때 사랑했던 자신마저 미워하고
자식들은 그런 가정을 명량하게 학교에 보고하고
그러면서 외롭다고 자살하고

-예수

자신의 빰을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 빰도 내어주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기억하는 신자는 없고
우수한 종족의 우수한 종교가 되어버린 그들은 예수를 그럴듯하게 이용하고
지금껏 자신이 해온 것은 잊은채 참다 폭발한 그들을 향해 자신은 피해자인척하며 밟아주고 
그렇게 괴상한 재판은 결국 괴상한 원인과 결과를 낳고
그리고 아멘.

-세계 경영과 자본주의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소수의 지도자가 있고 다수의 대중이 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결국 대중이 힘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대중이 존재하지 않으면 지도자는 의미가 없다. 잘못 세워 놓은 건물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도자가 만든 것이다. 그러면 그런 지도자를 뭐라고 해야하지 않나? 왜 우리는 그런 것은 잊고 오로지 그 잘못된 건물에 스스로를 맞춰가는가? 그 건물이 적으면 우리는 서로를 밟고 발버둥을 치고. 그러니 대중은 기만 당하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주 노동자를 괴롭히는가? 그들이 사악한 사람들이라서? 멍청해서? 그들의 처절한 삶이 전염될까봐? 가뜩이나 일자리가 없는데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가서?

그들은 3D업종에 종사한다. 우리는 그일을 안한다. 누구보다 나는 잘난 사람이니깐. 그리고 그래야하는거니깐.

우주에서 본 지구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외계인들은 지구를 방문한다. 그러나 정작 착륙은 하지 않는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를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난도질하며 별 이유없이 서로를 죽인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가 착한 사람이 된다. 착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화해

지긋지긋하다. 그만해도 될텐데. 결코 싸움엔 끝이란건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끝을 얘기해줄 뿐이다. 그런데 그 싸움은 도대체가 누가 하는거냐? 누가 시키는 거냐? 너는 지금도 싸우고 있지만 왜 싸우는지 알고나 싸우는 거냐?

행복이란 건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싸움의 승리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닌건데
우리는 홀린듯 죽을 때까지 싸운다.

*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참 마음에 든다. 황석영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젊은이들에게도 읽히고 또 많이 팔리고 있다. 향단에선 그런 황석영을 비판한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책을 내놓고는 팔리는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예술이란 항상 작품성과 오락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락성이 높아졌다고 즉, 팔린다고 작품성은 낮아졌다고 치부하는 건 억지다. 그러면 오락성이 없는 작품이 가장 작품성이 높은 작품이란 말인가? 그것은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가장 힘든건 그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다. 이 작품은 결코 작품성이 낮지 않다. 짜임새 있는 구성이 작품의 계기성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시대성과 본질성 또한 공존한다. 물론 이전의 작품에 비해 쉬운 작품이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고 그것이 가벼운 작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솔직해지지 않으려는걸까? 단순한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나?
실은 진리는 단순하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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