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우리는 반성적으로 우리의 왜곡을 결코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는 순수하고 독립적인 현실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심오하고 훨씬 더 근본적이다. 즉, 우리 자신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현실은 주체인 "우리에게 의존할 때라야만" 나타나거나 가시화된다. 그것은 존재가 우리에 의해 야기되고 구성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 자체가 갖고 있는 내재적 부정성/모순이 이런 현실의 부분으로서 주체의 형식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사물들과는 달리) 주체는 현실의 모순의 객관적인 구현이다. 이점이야말로 라캉 유물론의 핵심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 자신은 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에 의해서 주체로서 결정된다. 하지만 주체의 위치 혹은 주체화는 사물들이 나를 결정하는 구체적이고 특이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나를 결정하는 바로 그 사물들에 연루된 역설/모순의 주체화이기도 하다. - P235

사랑(의 조우)은 단순히 모든 것이 꼭 맞는 장소에 들어간다[필연적이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조우는 서로 다른 두 병증 사이의 우연한 만남에 관한 것도, "서로에게 작동하는" 것을 조우하기에 충분히 운이 좋은 두 개별자들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사랑은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한다. 그것은 욕망의 원인이 연인에게 굴복하고 연인과 동시발생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의 정동은 놀라움surprise이다--단순히 열병이 아닌 오직 이 놀라움, 이것이 사랑 고유의 기호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 형상의 기호인 것이다. 그것은 "그게 너였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그것이라니 정말 놀라워!", 혹은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더 단순한 공식인 "너가 너라니 정말 놀라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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