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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루벤스 "한복 입은 남자"를 다시 보다.
1993년, 한창 대입 준비를 해야할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업시간에 교과서와 함께 소설을 펴 놓고 있었다. 교과서 보다 내 눈을 사로잡았던 책들은 김진명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오세영님의《베니스의 개성상인》이었다. 당시는 라디오를 통해 밤10시쯤이면 각 출판사에서 신간에 대한 라디오 광고를 듣는 것도 재미가 있을 때였다. 특히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나도 역사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꿈을 짧게 나마 꾸게한 책이었다.
《한복 입은 남자》의 겉표지를 보면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를 볼 수 있다. 1993년 읽었던 《베니스의 개성상인》과 같은 소재로 쓴 책이란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읽고 이와 비슷한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책도 읽을 정도로 꽤나 역사적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래서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도 오세영님의 열혈팬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단연코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로 손꼽기도 핟다. 그래서 표지에서 만난 "한복 입은 남자"는 20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같은 소재, 다른 시각(視角)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를 소재로 만들어 진 소설이다. 이상훈 작가는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보다는 '장영실'이라는 조선 세종 때에 우리에게 측우기와 물시계 등을 개발한 인물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과거에 읽었던 송상(개성상인)으로서의 '안토니오 꼬레아'는 잊고 새로운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536쪽 방대한 양, 하지만 강한 흡입력!
536쪽의 소설치고는 제법 두툼한 양이다. 일반적인 책들이 300쪽 내외인 걸 비교한다면 두 권으로 분철해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겉으로 보이는 책의 두께로만으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책 한 권을 읽는 데 적어도 일주일 정도 소요되는 내가 나흘만에 읽었다는 건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를 주며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모형을 보면서 시작된 안토니오 꼬레아 후손과의 우연한 만남과 장영실의 과거로 이어주는 그의 후손이 건내주는 비망록. 그리고 비망록을 번역해 가면서 알게 되는 장영실의 사랑과 고난이 담긴 인생. 동·서양을 넘나드는 전개는 이 책의 매력이라 단연 손꼽을 수 있겠다.
틀린 역사일지라도 알릴 수 없는 불편한 진실
소설인 만큼 픽션이 가미된 것이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꽤 많은 중세 유럽의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토스카넬리,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주인공들이다. 장영실은 토스카넬리와는 친구로 지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이 소설은 만들어졌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게 되지만 현존하는 역사학자들의 부정으로 틀린 역사를 진실로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보게 된다. 참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부분인 듯 하다.
장영실이 그의 재능으로 세종(世宗)과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노비의 신분에서부터 평민이 되고 조선을 넘어 명나라와 아프리카,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어느덧 계급화 되고 계층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교해 보게 된다. 한편으로 장영실과 같이 천재적 재능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신분 상승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운 좋게도 쌤앤파커스에서 시행한 사전 리뷰단에 선정되어 종이책으로 출간되기도 전에 이 책을 만났다. 한동안 소설은 멀리 했던 편중된 독서를 이번 기회로 조금은 해소했다고 생각한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 앉아 즐거운 역사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아마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가슴에 담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