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에 대한 기억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 속의 아버지들은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책들만 읽은 건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자문도 해봅니다만 그렇진 않습니다. 왜 다들 자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던 걸까요? 이 책에서도 고독사한 혜진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가정과 자식들을 등한시하고, 늙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자식들과 연을 끊는 독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 그리고 우울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생(生)과 사(死)라는 진리가 적용됩니다.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죠. 다만 생으로 맺어진 인연이 언제 헤어짐이란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는 겁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듯이 '잘 살고 있겠지' 하며 지내던 가족의 뜻하지 않은 부고는 무척이나 충격적입니다. 준비되어 있다면 정신적으로 그 충격을 완화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대개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내 가족이 아니라 지인 혹은 제3자의 부고만으로도 슬픔을 느끼는 게 우리 아닌가요? 그러니 오죽할까요? 밉던 곱던 피붙이로 살아가던 이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상실감에서 시작된 무기력은 깊은 우울로 진화합니다. 우울은 한번 빠져들면 회복하는 데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심각한 경우엔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이 책의 제목처럼 '기분이 없는 기분'이란 말이 참으로 공감되는 것도 저 또한 한때는 이런 우울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복

주인공 혜진은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습니다. 약을 먹어가며 다시 현실 속으로 자신을 돌려놓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우울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다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과거에는 이런 우울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쉽사리 치부해 버렸습니다. 사춘기처럼 성장통이라 여기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며 치유가 필요한 질병이라 봅니다. 기분이 없는 기분이 느껴진다면 나만의 고통으로 참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