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을 더 가까운 관계로 먼저 확장할지, 모든 사람과 더 평등하게 나눌지를 좌우하는 도덕적 배려의 범위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문화 차이에 따른 이런 양상을 집단주의와 보편주의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 일본, 한국 같은 집단주의 사회는 주로 가족을 중심으로 도덕적 배려의 범위가 형성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친교 범위가 비교적 좁지만 내부 유대가 굉장히 끈끈하고 서로 무척 의지하며 살아간다. 보편주의 사회, 이를테면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더 먼 관계를 포함하는 커다란 사회관계망을 쌓곤 하지만 가까운 가족에게 느끼는 도덕적 의무는 그만큼 더 약하게 느낀다. 지구 내에서도 각기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살아가면서 각기 느끼는 협력의 정도와 감동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인류에게는 생존을 위한 수많은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수도 없기에 우리는 협력을 한다. 다행히 인간에게 주어진 상호의존의 본능이 협력이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수 세기에 걸쳐 인류가 진화해왔던 것도 협력에 따른 것이다. 다만 가끔은 협력이 더 크고 복잡한 집단이 진화하도록 돕기는커녕 오히려 가로막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구성원들이 협력을 통해 우수한 결과와 멋진 성과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실제로 직장이란 조직 속에서 개인의 역할만으로 성과가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부서나 팀이란 세부 조직을 구성해서 운영하는 것이 바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협력 수단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조직 전체에 손실을 입히는 파업이나 태업과 같은 행위도 피할 수 없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협력의 유전자를 어떻게 이용할지 한 번쯤 고민해 볼 시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