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 - 개인의 운명과 세상의 방향을 결정지을 10가지 제언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권기대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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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19년 중국 후베이성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2020년 전 세계를 휩쓸었다. 2021년 현재까지도 그 위력은 진정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바이러스를 '코로나19(COVID-19)'으로 명명했다. 전염병의 세계적 창궐은 '팬데믹(pandemic)'이란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단어를 알게 해주었다.

2020년 수많은 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앞다투어 코로나19 이후를 예견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존속할 수 있을 테고, 설사 우리가 이것을 박멸한다고 해도 장차 다른 질병이 창궐하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 이후(post-pandemic)'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데믹 이후 세계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의 '빨리 감기' 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빨리 감기'하면, 그 안의 사건들이 더는 자연스럽게 진척되지 않고, 그 결과는 파괴적일 수 있고 심한 경우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작은 변화가 커다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그마한 부품 하나가 고장 나고 그 부하가 다른 부품으로 이전되어 그것까지 고장 나면, 연쇄작용이 일어나 잔물결 하나가 요란한 파도로 둔갑하듯이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것을 '종속 고장(cascading failure)'이라 부른다. 10년에 한 번꼴로 갑작스럽고 어마어마한 전염병의 창궐은 온 세상을 연쇄효과로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더 생길 것이다. 의식적인 계획의 산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롯이 우발적인 것도 아니다. 닥쳐올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그 체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0가지 제언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의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팬데믹 이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합의안 10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안전밸트를 단단히 매어야 할 때〉. 박쥐, 사향고양이, 천산갑과 같은 야생동물로 인한 역병의 창궐을 우려하며 불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육류 소비를 줄인 좀 더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한다. 무엇보다 모든 나라가 강력한 공공 보건 체제를 갖추고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협력하길 권한다.

둘째, 〈중요한 건 정부의 크기가 아니라 능력이다〉. 미국 주도의 대응을 우려한다. 되레 이번 팬데믹에 훌륭하게 대처한 나라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적용한 나라였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다른 모든 나라를 앞설지 모르지만, 보통 미국 사람의 삶은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나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조금씩 뒤떨어질 것이라 말한다. 세계는 수십 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했다. 그러나 이젠 미국이 세계로부터 배워야 할 차례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배워야 할 과제는 정부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라, 훌륭한 정부란 무엇이냐를 배워야 한다.

셋째, 〈시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시장과 기술의 변화로 이루어진 활짝 열린 세상은 무섭다. 한 가지 해결책은 그런 세상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신흥국들이 성장하는 것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술의 진보를 방해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팬데믹에 대한 공포와 보호주의 같은 새로운 추세는 인구 감소라든지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mation)' 같은 더 깊숙한 구조적 변화를 악화시킬 것이다.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당분간 성장이 계속 저조할 것으로 예측된다. 규제를 목표에 맞추어 적절하게 조절하기만 한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과세 정책도 그 혜택이 노동자들에게 더 돌아가고 자본가들에겐 덜 돌아가도록 조정할 수 있을 터이다. 과학과 기술에 큰 투자를 하고,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를 최소화하고 최상의 교육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정부 계획의 재편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실행해야 한다.

넷째,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 전문가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세계는 굉장히 복잡해졌다. 우리는 정문가가 덜 필요하기는커녕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엘리트가 될 수밖에 없고, 보유한 지식으로 인해 권위와 권력을 차지하는 집단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엘리트들도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욕구를 항상 염두해 둘 것인가에 대하여 궁리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사람들의 희망이야말로 권위를 부여하는 궁극의 원천이니까.

다섯째, 〈삶은 디지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기술혁명이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와 있음을 보여 주었다. 디지털 라이프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고, 진짜 세계의 형편없는 복제품으로 느껴질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생산성은 개선되어 우리 모두를 도와줄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체공학 혁명을 둘러싼 여러 규칙을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너무나 많은 것을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고 끝내는 컴퓨터를 친구로 생각하며 그들 없이는 아무런 기능도 수행할 수 없게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계가 데이터 계산과 해답 제시에 더 스마트해질수록, 추론 능력을 넘어서서 우리가 독특하게 인간적인 점은 무엇인지 더욱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디지털 라이프를 향한 움직임은 폭넓고 빠르고 생생하다. 그러나 그것의 가장 심오한 결과는 어쩌면 우리가 우리 내면의 가장 인간적인 것을 보듬어 아끼도록 만든다는 점이 아닐까?

여섯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행복과 의미의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politika)』은 첫 페이지에서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속성을 지녔다고 선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오로지 도시에서만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 형태가 갖추어지는바, 인간을 충분히 완성된 성인으로 키우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이 바로 도시라는 얘기다. 인간은 도시를 창조하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재앙과 맞닥뜨리고도 우리의 도시가 성정하고 견디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참여와 협동과 경쟁에 이끌리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일곱째,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터〉. 전염병이 만들어 낸 가장 현저한 불평등은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사이에 드러난다. 우리가 (가능성이 매우 큰 일이지만) 또 다른 팬데믹과 맞닥뜨린다면, 우리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의 본질적인 형태여야 한다. 불평등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여덟째,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세계화의 깊은 흐름은 그것을 과거의 버전과 상당히 다르게 만들고 있다. 투자는 세계 전역을 아우르며 흐른다. 한 무리의 국가들이 제조한 상품들이 다른 무리의 국가들에서 홍보되고 판매되고 서비스된다. 정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전 세계를 휘감는다. 세계 교역과 여행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정점을 회복하는 데 육십여 년이 걸렸다. 최후의 위대한 세계화 시대를 무력화한 것은 경제적 혹은 기술적 반동이 아니라 정치였다.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韻)을 맞추어 흘러간다. 신흥 강대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기존 패권국의 불안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목격한다. 중국이 떠오르고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냉혹한 현실정치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홉째, 〈온 세상이 양극화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이나 강대국은 둘인 세상이다. G2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다. 과거 양극체제의 중심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소련은 군사력은 미국과 동등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뒤떨어졌다. 중국은 반대로 군사력에서는 뒤질지라도 경제,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대등하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로 알려진 틀 안에서 전 지구적 상호 교류가 일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확립한 이 틀의 두드러진 특성은 교역과 경제의 개방성, 유엔 같은 국제기구, 국제적인 행위를 규제하고 협력으로써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규칙과 규범 같은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가 아무리 긴장이 넘치더라도 그것은 이 끈질기고 강력한 '다자간 세계' 속에 담겨 있을 것이다. 양극체제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냉전은 선택의 문제다.

열번째, 〈때론 최고의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자다〉. 우리 시대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불완전하고 결점도 많다. 그것은 인간이 채택했던 과거의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들었다. 자유주의의 기저에 깔린 이상주의는 단순하고도 실용적이다. 국가들이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그들의 국민은 더 장수하고, 더 부유하며,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그들이 경제 면에서 서로서로 엮이게 된다면, 모두에게 한층 더 득이 될 것이다. 협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황된 꿈이 아니다.

지구적 협력 약속

대부분의 시대에 역사는 대체로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전진하고,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팬데믹이나 기후변화나 사이버 전쟁 등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밖으로(더 많고 더 긴밀한 협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한 나라가 전 세계의 틀을 짤 수가 없다. 혼란과 냉전이냐 아니면 협력이냐 두 가지 가능성뿐이다.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은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이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주권 국가들 사이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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