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의 고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5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갈릴레오의 고뇌(ガリレオの苦悩)』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쓴 소설로 '갈릴레오'라 불리는 물리학자 유가와가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해결한다. 탐정이라 불릴 만하다. 갈릴레오 시리즈 작품은 『탐정 갈릴레오(2008)』부터 『예지몽(2009)』, 『용의자 X의 헌신(2006)』, 『성녀의 구제(2011)』, 『한여름의 방정식(2018)』으로 되어 있다.

이번 작품에는 다섯 가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첫째, 떨어지다. 둘째, 조준하다. 셋째, 잠그다. 넷째, 가리키다. 다섯째, 교란하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보다 흥미로운 건 갈릴레오로 불리는 유가와가 범행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물리학자답게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모습은 독자의 무호흡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동일한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현실 가능한 실험들이라 본다. 이런 점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를 선택하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떨어지다

구사나기와 가오루는 에지마 치나쓰의 투신자살에 대해 수사를 한다. 에지마의 투신에 오카자키가 관여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수사하지만 투신 방법을 찾지 못한다. 가오루는 유가와를 찾아가 사건 내용을 알려주고 도움을 청한다.

「떨어지다」의 소재는 불륜이다. 갈릴레오 시리즈뿐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부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남녀의 사랑이 소재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각자가 싱글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입장이 바뀌는 건 순간이다. 둘 중 어느 한쪽만 입장이 달라지면 불륜의 환경에 처한다. 당사자들 역시 그런 입장과 환경이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들이 유지하고 있는 관계를 운명적 혹은 필연적 '사랑'이라는 허울로 포장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대치되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갈등을 겪지만 진정한 사랑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라는 입장이 공존할 수 있고, 당사자들은 자신들도 드라마 주인공의 입장이라는 걸로 위안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릴을 즐기기 때문이다. 잘못인 줄 알지만 그것을 들키지 않고 유지할 때 느끼는 짜릿함은 어떤 것보다 중독적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라는 말처럼 어릴 적 작은 도벽이 점점 큰 손이 되면서 범죄자 대부분이 이런 감정에 중독이 된다. 불륜의 당사자들도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보편적인 건 이 두 가지일 것 같다.

일부일처의 제도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불륜이 용인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탈은 인간의 본능 아니겠나. 그래서 틈틈이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훔쳐보기를 하고 그에 따른 쾌감을 대리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불륜의 끝은 대개 좋지 못하다. 진정한 사랑으로 꽃을 피우는 건 몇이나 될까? 알려지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까? 한때는 사랑했고, 지금은 그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사랑해서는 안 될 그런 사람이 사랑스럽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조준하다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에 유가와의 스승 도모나가 유키마사와 그의 아들 구니히로 그리고 양녀 나미에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유키마사는 유가와를 비롯해 그의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작은 파티를 한다. 파티를 연 그날 저녁 유키마사의 별채에 불이 나고 그 안에서 구니히로의 사체가 발견된다. 일본도에 찔린 듯한 사체는 타살을 의심하게 되고 유가와는 경찰과 더불어 진실을 파헤쳐 범인을 찾아낸다.

이번 에피소드는 '가족'이란 소재이다. 이혼하면서 전처와 사이에서 생겼던 아들이 있다. 30년가량 얼굴도 모른 채 떨어져 지내던 아들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금전적 지원을 요구하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간 떨어져 지냈던 세월 동안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도 있겠지만, 되레 남보다 못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겠나. 더구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보다는 후처와 나를 살갑게 챙겨주는 사람이 더욱 애틋한 건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핵가족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는 1~2인 세대가 전 세대에서 절반에 육박할 만큼 커지고 있다.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가졌던 기존 가족이란 의미와 더불어 이제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재정립의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잠그다

유가와 마나부는 후지무라 신이치가 운영하는 펜션으로 초대를 받아 가게 된다. 열흘 전 펜션에서 투숙객의 사망 사건이 있었고 투숙객이 머물렀던 방은 밀실이었다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유가와가 초대됐다.

하지만 정작 유가와를 초대한 후지무라는 사건에 대해 세세하게 캐묻는 유가와를 피하고 자신의 착각이라며 사건을 감추려 하는 듯하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그 잘못을 덮어주고 눈감아 주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잘못에 대해 알려주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맞을까? 전자를 선택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수는 있지만 늘 죄에 대한 불안감에 살아갈 것이다. 후자를 선택하면 죗값을 치르는 동안은 곁에 둘 수는 없다. 헤어짐이란 슬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대개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나 타인을 속이는 행위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하얀 거짓말'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평생을 살아가며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이는 없을 거다. 상황과 입장 그것에 대처하는 거짓의 경중에 따라 우리는 그것이 죄의 유무를 구분하고 적용한다. 그래서 이러한 잣대를 자신 혹은 주변의 이들에게까지 빗댄다. 다만 이때 변수가 발생한다. 사랑이란 감정이다. 이 감정은 모든 걸 감싸준다. 잘못까지도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이해하고 최면을 가한다. 문제는 그건 당사자와 사랑하는 자신에게만 적용 가능한 것이다. 일반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란 거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어떤 상황에서나 보편적이고 공평한 기준을 법이란 것으로 만들어 적용한다.

당장 잘못을 이성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감싸주지 않을 수 있냐고, 보듬어주지 않는 것이 어떻게 사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마도 죗값을 치르게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정의가 아니겠나.


가리키다

노히라 가세코는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떠나고 홀로 집을 지키다 사망했다.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외부인의 침입에 의한 타살로 추정한다. 사건과 함께 이 집에서는 숨겨놓은 10㎏의 금덩이와 집을 지키는 큰 개마저 사라지고 없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건 사건 당일 담 너머로 지켜보던 보험 설계사 마세 기미코이다. 피해자의 집에서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그녀는 딸 마세 하즈키와 둘이 살고 있다. 마세 하즈키는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받은 수정으로 다우징을 한다. 다우징(dowsing)은 나무나 금속 막대를 가지고 땅속의 광물이나 수맥을 찾는 방법을 말한다. 마세 하즈키는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의심이 되고 개의 사체를 찾는 데 다우징을 해서 찾으러 나선다.

아버지가 자살한 후로 어렵게 살아가는 모녀에게 자상한 엄마의 남자친구는 아버지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신을 키워주고 있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은 사건의 용의자로 강하게 추측되는 엄마의 남자친구를 보호를 해주고픈 마음이 생겨난다. 용의자 혹은 피의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거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렇게 이성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잘못을 저질러도 한순간의 위기만 모면하면 다 좋아질 거라는 불확실한 믿음에 큰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의도된 거짓말이 아닐지라도 그 결과가 낳는 부정은 결국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란하다

어느날 경찰에 협박편지가 도착한다. 자칭 '악마의 손'이라 부른다. 그는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면서도 직접적 외상이 없는 탓에 경찰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를 모른다. 협박의 궁극적 대상은 유가와 마나부이다. 유가와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쓰기로 한다.

어디선가 영화로 본 것 같은 내용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내용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 제목을 기억하진 못해도 아마 본 적이 있을 거 같다.

이 작품은 한때 과학자로 성공을 꿈꾸었던 이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느낀 수치심으로 인해 꿈을 접게 되고, 그런 자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판단된 유가와를 원흉이라고 책임전가를 하며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감도 가질 수 있고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감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기도 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등의 선한 영향력이 되어 준다. 하지만 자만심은 과도한 자기 최면에 의해 안하무인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지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등의 악영향에 원인이 된다.

소설 속 범인은 과도한 집착과 열등감, 자만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격리를 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견도 수렴해야 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에는 제재가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