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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인 더 레인
가스 스타인 지음, 공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벌레도 동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니 멀리서 지켜보는 게 전부다. 어릴 땐 그러지 않았는데 성장하면서 점점 바뀐 것 같다. 곤충이든 동물이든 책이나 티비를 통하는 게 나에겐 딱 어울리는 만남의 방법이다. 그 이상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을 꼽으라면 '개'를 떠올린다. 반려동물 1천만의 시대다. 동물들의 권리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먹기 위해 기른 동물들도 주변 동물들이 앞에서 보일 땐 도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임은 틀림없다. 여튼 평소 그리 동물을 가깝게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레이싱 인 더 레인》은 개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 《레이싱 인 더 레인》은 '엔조'라는 개가 화자다. 인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형 개인 엔조이지만 표현할 방법이 없어 늘 안타까워 한다. 말하지 못하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엔조는 자신에게 혀와 엄지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엔조는 레이싱 드라이버인 데니의 개다. 데니를 좋아해서인지 원래 그런지는 모르지만 레이싱 티비 프로그램 시청을 좋아한다. 데니와 엔조 사이에 이브가 끼어들어 질투도 하지만 서서히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고 그들의 딸 조위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날 이브가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엔조는 동물적 감각으로 알지만 데니에게 알려주지 못한다. 이브는 결국 죽게 되고 데니는 딸 조위의 양육권 마저 딸의 외조부와 외조모 부부에게 빼앗긴다. 설상가상 호의로 시작된 만남이 성범죄자로 형사 고소까지 당하는 일을 겪게 되며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절망적인 건 데니뿐 아니다. 삶에 의지가 되어준 엔조 역시 좋지 못하다. 늙어가는 것과 선천적인 골반 문제로 해를 거듭할 수록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둘은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이겨낸다.
평범해 보이는 데니와 엔조의 삶이 흡사 나의 삶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억울하고 분한 일들, 나쁜 일은 피해가면 좋으련만 늘 올 때 더해서 온다. 절망의 시기에 삶을 포기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때쯤이면 실낱 같은 희망이 어느새 찾아와 새로운 시작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책 제목처럼 빗속을 달릴 때는 늘 두렵고 더 힘을 주어 살게 된다. 하지만 데니는 레이싱 드라이버로 그때 만큼 더욱 힘을 빼고 부드럽게 운전을 한다. 악천후의 어려운 시기라면 힘을 빼고 자신의 삶을 운전해야 할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