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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유토피아 실험>은 저자 딜런 에번스가 직접 문명의 종말 이후를 예상하며 실험한 내용을 담은 글이다. 나도 그러하지만 문명이나 인류의 종말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그래서 영화의 소재로도 더러 쓰인다. 대개의 사람들이 닥치지 않았지만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온다면 하고 염려의 고민을 살짝해보는 주제가 바로 이것 아닐까.
저자는 영국에서 로봇을 연구하는 교수였다. 2006년 문명 붕괴 이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실험하겠다며 '유토피아 실험'을 계획하고 교수직을 사임한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서 실제로 감행한 유토피아 실험은 그에게 정신질환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이 책으로 유토피아 실험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가설을 먼저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계 문명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위기(피크 오일)로 우리 생애 동안 붕괴될 것이다. 문명이 붕괴되며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죽음을 맞겠지만 일부는 살아남는다. 문명은 재건되지 못할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야생으로 탈출해 부족을 이루고 생존 기술을 익힌다. 이 과정은 재야생화 또는 탈산업화 또는 신부족혁명이라 불린다. 재야생화가 되면 삶의 질은 붕괴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이 가설의 요지는 재야생화 즉, 자연으로 돌아가면 삶이 나아진다는 데 있다.
헌데 유토피아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실험을 계획한 이가 있다는 데 놀라움과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무척 궁금했다. 허나 저자가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책의 앞부분에서 실망감이 느껴졌다. 회고하는 내용이니 그럴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실험이 왜 실패했을까 하는 부분이다. 책 후반부에도 언급이 되었지만 실험자인 저자는 실험 자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야 함에 있어 실험기간이 18개월로 짧았다. 더구나 2~3주의 짧은 시간만 왔다가는 이들까지 있으니 제대로 된 실험이 될리 만무하다. 리더십의 부재도 큰 문제였다. 실험자가 피실험자를 장악하고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정신병이 생기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획 단계부터 잘못 되어다고 본다. 책 속에 당시 가설과 연구계획까지 모두 담지 못했거나 담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성급한 단정은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본다면 저자는 무척이나 안이하게 실험을 진행했다고 느껴진다. 그저 심리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게 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란 생각처럼 말이다.
현재의 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당장 생존의 극한에 도달한다고 하여도 생존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거나 도구, 기술 등이 부재하다면 생존기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에서도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별도의 생존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을 갖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된다. 더구나 편리해진 현실에 젖어든 우리에게 선사시대와 같은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 그러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유토피아 실험에서처럼 인류는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금세 적응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저자는 실패한 자신의 실험을 말하려고 책을 쓴 건 아닐 거라 본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 그리고 현재 인류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여겨진다. 당장 문명의 붕괴가 일어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홀하고 무관심한 것들을 다시금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