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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은 내 기획서가 쓰레기라고 말했지
박혁종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19년 4월
평점 :
15년 전쯤 거슬러 가 처음 직장에서 기안을 쓰던 때가 가끔 생각난다. 나의 첫 기안 제목과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고작 한 쪽의 기안을 장장 네 시간에 걸쳐 썼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도 어려웠는지 궁금하지만 당시에 어느 누구도 기안서를 쓰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결재를 올려야 하는 탓에 혼자서 끙끙대며 썼다. 잘쓴 건지 못쓴 건지도 모르고 고작 몇 줄 되지 않는 내 첫 기안은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해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해마다 사업기획서를 만들고 보고서를 쓴다. 가끔씩 제안서도 쓰고 사업 책임자로 홀로 기획서를 만든다. 분량이 많을 땐 몇 백 쪽에서부터 적을 땐 몇 십 쪽에 달하는 기획서를 쓰고, 발표자료도 만든다. 긴 시간 경험하면서 숙련된 덕분이라 여겨진다. 그 배경에는 홀로 책을 보고, 강의를 찾아다니며 들었던 나만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인고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도 상급자가 던져주는 일이나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문적이고 분업화 된 조직, 특히나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곳은 기획서를 쓸 일이 잘 없다. 대개 일년 내내 맡은 임무만 충실히 하면 되고, 기껏해야 보고서나 쓰면 될 것이다. 허나 나는 늘 '기획'이란 두 글자가 함께 했다. 지금도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희망하는 직무가 기획분야라고 한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나 들여다보면서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보내는 로망의 직무라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해보면 알거다. 기획은 결코 쉽지 않다. 여름엔 땀나게 겨울엔 추위와 싸우며 현장을 알고 익혀야 그것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기획이 나온다.
더군다나 기획은 글로 된 문서화를 해서 기획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설득이란 과정을 거쳐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이 책의 제목처럼 곧장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따지고 보면 승률이 그리 높지 않은 일이 기획업무라 해도 무관하다.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수시로 느끼고 상사의 욕과 자괴감을 인생의 벗처럼 살아야 하는 게 기획자의 숙명이라 하겠다.(물론 능력이 뛰어난 기획자는 다를 수 있을 거다.)
오랜 세월 다양한 기획을 하고 기획서로 표현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설득의 과정을 수십 차례 경험해도 기획은 아직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 만들어도 늘 부족함이 느껴지고 남이 만든 기획서는 참으로 잘나보인다. 그래서 틈틈이 나의 능력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또 이 책처럼 기획에 대한 참고서를 배경으로 더 나은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부장님은 내 기획서가 쓰레기라고 말했지>는 기획서를 쓰는 참고서다. 기획서의 구성과 꾸미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다. 나의 책장에 수십 권에 달하는 기획서 책들 중에 가장 최근에 읽게 된 책이라 그런지 가장 공감이 가는 책이다. 그간 기획에 대해 배우고 체득하며 느낀 많은 내용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일부 저자가 제안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약 80%의 기술된 내용은 기획을 함에 있어 나 역시 후배나 부하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기획의 기본기들이다. 사실 기획서는 기획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케터나 연구자들도 늘 기획을 할 수밖에 없다. 기획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현재 경영 방식에서는 거의 전무하다고 본다.
저자의 말처럼 기획서를 잘 쓰는 데는 왕도가 없다. 남이 쓴 기획서를 보고, 이 책과 같은 서적들을 참고해 자신만의 기획서를 많이 만들어 보는 게 정답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것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질타와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고수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기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부장님은 내 기획서가 쓰레기라고 말했지>를 추천해주고 싶다. 전체적인 내용이 간결하면서 핵심은 빼놓지 않고 있다. 도식화 된 부분도 많아서 이해를 함에 큰 무리가 없으리라 여겨진다. 한 번에 책을 다 읽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곁에 두고 틈틈이 참고서로 이용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