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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이 운전하는 동안, 고라니와 함께 탄 그는 말이 없었다. 진영도 읍내 횟집에서 만났던 그들로 인해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결국 둘 사이의 침묵을 깬 건 그였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기는 한데..."

 "네?"

 진영이 되묻자 그가 고라니를 가리켰다.

 "괜찮아요? 다친 놈이랑 같이 탔는데..."

 진영은 뭐라 할 말이 없어 씨익 웃어줄 뿐이다.

 "제가 말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 참...뭐라 할 말이 없네요..."

진영은  이 사람 혼자 애 쓰는 건가 싶어 억지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혼자 여행 오기에 적당한 곳은 아닐 듯 싶은데..."

 정말 그랬다. 단체로 단합대회 오는 학생이나 가족 단위의 휴가라면 모를까 혼자와서 즐기기에는 산세가 험하고 이동 거리가 협소했다. 더구나 버스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아, 여행 때문에 온 건 사실 아니구요. 누구 좀 만나려구요..."

 진영은 말없이 차창만 응시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또 침묵이 이어지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무서운 이야기..."

진영은 백미러로  그의 얼굴을 흘끗 보고 말 뿐이다. 그는 그냥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어느 날 밤이었어요. 지금처럼 달도 뜨지 않은 칠흑같은 밤이었죠.

 읍내에서 일을 마치고 차로 30분은 걸리는 자기 집으로 가던 노부부가 있었죠.

 "졸지말어. 임자 졸면 나도 졸어."

 평소에도 약주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가 저녁 무렵 일 끝나고 식사하던 자리에서 반주를 했던 터에 술을 깨고 오느라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이었죠. 평소에는 술을 잘 안하셨던 할머니도 그날은 딱 한잔 반주삼아 마신 게 깨지 않아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어요.

 "에이구~. 아까 덥석 받는 게 아니었는데..."

 눈도 침침 하셨던 할아버지가 평소보다 차를 더 더디게 몰고 있었던 그 때, 할아버지는 누군가가 앞에서 팔을 흔드는 것을 보았어요.

 "으응? 웬 사람이야~?"

 할아버지는 손을 흔드는 그 사람 앞에 섰어요. 청년이었죠.

 " 제가 저 쪽 고개넘어 마을까지 가야하는데 버스가 끊겨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어둡고 위험해서 더 갈 수가 없어요. 죄송한데요, 저기 고개 넘어 마을까지만 좀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청년의 간곡한 부탁에 할아버지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지요. 할아버지는 졸고 있는 할머니보다 더 좋은 말동무가 생겼다면서 청년이 합승한 걸 좋아하셨어요. 청년은 할아버지가 물어보는 대로 열심히 대답하고 또 얘기해 주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 옆에서 졸고 계시던 할머니가 중간 중간 깨시더니 자꾸 뒷좌석을 보고 또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시는 거였어요. 할아버지가 청년의 얘기를 귀기울여 들으실 때는 할머니도 잠자코 계시다가 또 잠이 들고, 이따금씩 할아버지가 청년의 말에 맞장구를 치시면 깨셔서 뒷좌석을 보시고 또 할아버지를 보시고...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가 신경 쓰였지만, 청년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듣다가 잊어버리셔서 할머니께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으셨지요. 드디어 고개 넘어 마을에 도착해서 청년은 차에서 내렸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지요.

 "내가 덕분에 재미나게 왔지 뭐.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거야?"

 할아버지의 말에 청년은 손가락으로 두 집 너머 불이 켜진 집을 가리켰어요. 

 "저기가 저희 부모님 집이에요. 아버님 생신이셔서 오늘 굳이 와야 했거든요.."

 "아이고~ 효자로구만 그래."

 청년이 웃으면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자 할아버지는 더 기분이 좋으셨어요. 그렇게 청년이 가고 할아버지가 다시 출발을 할 때쯤 술도 잠도 다 깨신 할머니가 물어보셨죠.

 "지금까지 누구한테 그렇게 이야기 하셨던 거예요?"

 할아버지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할머니를 보셨어요.

 "아까 저기 저 집에 간다는 청년 하나 태워다 줬잖아."

 할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또 물으셨죠?

"네? 누가요? 저 말고 차에 탄 사람이 또 있었다구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너무 졸았다고 생각하셨죠.

 "이 할망구가 암만 잠에 취해도 그렇지. 어떻게 차에 탔다가 내린 사람을 알아채지도 못하나?"

 할아버지의 역정에 할머니는 다시 아무 말씀도 할 수 없으셨어요.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두 분은 집에 도착하셨죠.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서부터예요. 다음 날, 읍내로 일하러 나가시기 전 할아버지는 세차를 하셨어요. 차 안도 청소를 하셨었는데, 청년이 앉았던 뒷 좌석에 지갑이 떨어진 걸 본 거지요. 지갑에는 동서울에서 읍내 터미널까지 오는 버스표 영수증이 있었는데, 그 전 해 어제 날짜였어요. 그리고 그 청년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는데, 청년의 이름은 '김 용식'이었죠.

"젊은 사람이 지갑도 놓고 다니고... 분주한 모양이구만..."

 할아버지는 읍내로 나가기 전 그 청년의 집으로 가서 지갑을 돌려주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할머니를 재촉해 아침을 일찍 차려먹고 그 동네도 들를 겸 일찍 출발했지요.

 동네에 들어서서 그 청년이 가리킨 곳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못 찾겠어서 할아버지는 근처 가겟집으로 들어갔어요.

"용식이요?"

가겟집 주인은 눈만 동그랗게 떴지요.

"용식이는... 왜요?" 

할아버지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지갑을 흔들었어요.

"아, 내 차에 지감을 두고 갔어요. 주민증도 들었는데..."

가겟집 아저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던 걸 할아버지는 알아채시지 못했죠. 아저씨는 그 용식이라는 청년의 집을 얼른 가르쳐 주었죠.  노부부가 그 집으로 걸어갈 때, 흠칫 뒤돌아본 할머니는 가게 주인이 바깥으로 소금을 뿌리는 걸 봤어요.

 그 용식이라는 청년의 집에는 어머니란 분만 계셨어요. 할아버지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지갑을 내밀자, 어머니란 분과 그 주변에 계셨던 동네 아줌마들이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노부부는  심장이 멎을 만한 사실을 알게 됬죠. 용식이는 그 집 아들인데 작년 그 날, 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마을로 들어오다가 낙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자기의 생일이었던 그날 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아버지도 평소 지병이었던 심장병으로 즉사해서 그의 생일이 그의 기일이 되었다는 것을요..."

 

 그는 이야기를 마친 뒤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진영의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났다.

 '얘 도데체 뭐야...?'

 아까부터 게의치 않았던 고라니의 피비린내며 그의 날선 턱이 순간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흘끗 본 그의 손이 마디가 굵고 고라니 피로 인해 얼룩덜룩한 것을 깨닫고는 뒷 골부터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

 어쩔 수 없다. 진영도 무서울 때는 엄마부터 찾았다. 그 나이를 먹도록...

 다행히... 산장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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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라이트가 밝혀주는 길이 아니면 보이지도 않아 운전이 힘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젠장, 거기 가는 게 아니었어."

진영은 낮의 일을 떠올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권 교수님, 우리가 드리는 제의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받아들이시지요."

 느지막한 오후, 서울에서 도착한 그들로부터 읍내 횟집으로 불려간 진영에게 그들은 단순한 밥 이상의 요구사항을 내밀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그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의 어머님이 투병중이셔서 제가 자리를 뜨면 안되는 상황이구요."

 진영의 단호한 말투에도 그들은 완고했다.

 "그래서 저희가 팀을 교수님 계신 곳으로 보낸다 하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조사팀들이니 실전은 그들에게 맡기고 교수님은 자문만 해주시면 됩니다."

목이 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고의 조사팀들이라면 굳이 제 자문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계산서를 들고 일어나는 그들은 진영의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아무튼... 조사팀은 이미 여기로 오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교수님이 지금 경영하시는 펜션에 방도 많을 거 아닙니까. 손님 치른다 생각하시고, 일단 그 팀을 만나보기나 하십시오."

 

 그 날은 달도 뜨지 않았다. 진영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구불구불한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했다.

느지막한 저녁 약속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라 약해진 마음에 달려갔던 것이 이렇게 늦어 버린 것이다. 착잡한 마음을 추수리던 그 때,

 끼이이익-.

 순간적으로 감았던 눈을 떴다. 사이드 미러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컴컴해서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놀라, 그가 바로 옆까지 와서 차창을 두드렸슴에도 진영은 창을 내릴 생각도 못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버스가 끊겼다길래 걸어가면 될 줄 알고 아까부터 걸었거든요."

 그의 얼굴은 조금 지친 듯 보였다.

"혹시, 산성 펜션이란 곳까지 아시면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네? 어디요?"

진영이 재차 묻자 그가 다시 말했다.

"산. 성. 펜. 션 이요...아시는 데인가요?"

"...네."

진영의 말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래요? 그럼 태워 주실 수 있으시죠?"

진영이 뭐라 말도 하기 전에 그는 자리를 떴다.

"죄송하지만, 차 뒷자석에 얘 좀 태울께요."

진영은 순간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고라니였다. 피투성이였는데, 응급처치를 했는지 나뭇가지로 부목을 대고 옷가지로 감싸놓았다. 그는 당황한 진영은 보지도 않은 체 뒷 자석에 고라니를 뉘였고, 자기는 조수석에 탔다. 진영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던 지라 그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걸어가는데 차 오는 소리가 들려서 히치를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차, 속력을 마구 내더니 그 때 산을 타고 내려오던 저 애를 들이받고 가지 뭐예요? 전 너무 놀라서..."

그는 뒷 좌석의 고라니를 측은한 눈길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런데...산성 펜션은 정말 아시는 곳 맞으시죠? 제가 길 잘못 든 것도 아니죠?"

진영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산성 펜션은 진영의 펜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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