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은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교수님들이랑 다른 조교 및 학생까지 모두 보는 데서 무로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거예요, 권교수님이?"

말해놓고도 웃겼는지, 이제는 소리내서 웃는 그였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런 데모를?"

희곤도 한숨을 포옥 쉬었다.

"영상이나 그래픽도 있잖아요... 그런데..."

재원은 말없이 웃음을 거두고 희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무로 한 데모가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인상에 남긴 건 괄목할 만하죠. "

재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마녀에요? 무로 데모를 했으면 좀더 귀여운 닉네임도 있었을텐데..."

"그게 제일 멋있는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희곤은 목이 타는지 다 식어버린 차를 꿀꺽 꿀꺽 모두 마셔버렸다.

"무 시뮬레이션으로 그렇게 웃겨놓고는, 그게 말놀이겸 정말로 역사적으로 근거있는 이야기라는 걸 밝혀내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느끼게 했던 거죠, 권교수님이." "어떻게요?"

"무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람의 발이 날카로운 칼 위에 올라가 어떻게 뼈와 살을 뚫는지만이 아니었어요."

재원은 희곤의 말에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느꼈다.

" '무'는 '무녀'의 첫 소리. 날카로운 칼, 그러니까 '작두'같은 곳에 오르는 '무녀'가 그 뼈의 주인이고, 물 속에 어쩌다 빠지게 되었는지를 납득시키려 스토리를 가져온 거죠.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중에서..."

그랬다. 현직에 있을 때 진영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수집하고 조립하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증적 분석과 함께 하나의 납득할만한 스토리로 만들어내게 하는 과제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연구조차 그리 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황과 상징을 연출해놓고 그에 대한 완벽한 증거로 교수님의 연구에 푹 빠지게 하는 힘. 마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죠."

재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때는 청순한 듯 보이는 처녀가 달이 없는 밤이 되면, 아니 어떤 일로 분노하게 되면 청순한 모습과는 정 반대의 마녀가 된다는 점이 권교수님의 그 '무녀'사건으로 더 확실히 새겨진 거죠."

재원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나니 놀라운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 다 끝났냐?"

희곤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진영이 짚더미를 한 아름 안고서 눈에 힘을 주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교수님 오셨어요?"

재원도 엉겁결에 같이 일어났다. 

"노루 먹일 짚가리에요."

 진영은 짚더미를 재원에게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재원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짚더미를 받는 모습에 희곤은 씨익 웃었다.

"웃어?"

진영의 기습 질문에 희곤은 얼른 웃음기를 거뒀다.

"넌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한 차례 퍼부으려다가, 진영은 옆의 재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희곤의 귀를 잡았다.

"아, 아! 아퍼요, 교수님!"

희곤이 오만상을 찌푸리자,

"아프라고 잡은 거야!"

라며 진영은 역정부터 냈다.

"따라와!"

진영은 한 손으로 희곤의 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두 사람이 다마신 머그잔을 집고는 재원에게 눈짓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진영보다 체구가 큰 희곤이었음에도, 그는 그녀에게 거의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재원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다가, 짚더미를 안은 채 돌아섰다. 짚더미에서 풍기는 잘 마른 냄새가 좋았다.

"푸훗....풋... 푸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음이 터졌다. 뱃 속 깊숙한 곳에서 솟는 이제 막 솟는 샘물같은 웃음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런 웃음이었다. 오래 잊고 지냈던 그런 웃음을, 재원은 오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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