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뒤척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악몽같은 꿈에 또 깨고, 몇 번 더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 앉았다.

이제 아침이면 그동안의 조사에 대한 브리핑이 있다.

진영은 기왕에 깨버린 잠이니 브리핑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 전에,"

진영은 누구도 같이 있지 않았으나, 큰 소리로 자신에게 말했다. 

"샤워가 필요해."

 

 물을 맞고 있으니, 그나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진영은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모든 사실들이 머릿 속에서 맴을 돌았다.

함께 조합된 뼈들,  어쩌다 풍화를 맞게 됐는지 등의 근거 추론.

진영은 그 모든 과정과 사실을 머릿속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해.'

따뜻한 물을 얼굴로 내리받으며 진영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브리핑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매 순간, 긴장이 극에 달할 때 진영은 그렇게 어머니의 응원을 받곤했다.

매사가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가지신 어머니의 기운이 한겨울 찬바람에 흔들리는 가시나무 같던 진영의 마음을 그렇게 가라앉혀주는 것 같았다.

"또 긴장이 되서 그래?"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아니요. 뭐.... 어머니 몸도 안 좋으시다셔서..."

어머니는 가볍게 웃으셨다.

"이게 어디 하루 이틀만에 끝날 일인가? 유병장수라고 병이 있어도 관리하면 오래 사는 세상인데 뭐."

"아니, 그래두....."

어머니는 또 가볍게 웃으셨다.

진영도 말없이 그렇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잘 해 우리 딸."

어머니의 말에 진영은 체하고 내려가지 않았던 체증들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어머니.."

 

 함박사는 그녀의 소견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진영은 ppt로 맨처음 유골을 찾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이 유골은 오랜 시간 퇴적된 지층에 묻혀있다가 최근이라고 추정되는 바닷속 지형변화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진영의 설명과 함께 ppt속의 땅 속 지층 그래픽이 지진에 갈라져 하나는 가라앉고 하나는 위로 올리워졌다.

그리고 깊이 묻혀 있던 사람 모양의 뼈가 지층이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딸려 올라오는 모습이 이어졌다.

조교 정한수의 작품이다.

한수는 이런 시뮬레이션에 능통한 실력자였다.

다음 장면은 각 부분별로 모아져 조립되어진 뼈 사진이었다.

"우리는 그 땅에서 출토된 유골로 조립을 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모든 뼈들은 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 다음 사진은 그 유골에 살을 입힌 부분이다.

"퇴적층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뼈의 수축과 손상이 심해 뼈주인의 세부사항을 아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진영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시뮬레이션 속 뼈에 살이 다 붙어서야 입을 열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뼈 주인은, 이 사람이 살았던 300여년 전 대략 30대 가량의 여성으로, 모든 2차 성징을 마치고, 성숙 단계에서 퇴행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이라는 추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살갗이 얹힌 뼈 시뮬레이션에 진영이 레이저를 쏘자, 레이저를 맞은 그 부분에만 뼈가 드러났다.

"보통 십대 소녀들의 경우, 골반이 작고, 하체의 뼈가 이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이 여성은 다소 팽창되어 보이는 골반과 두드러진 허벅지를 가진 것이라 여겨지는 넙적다리 뼈모양 등은, 아마도 이 여성이 살아생전에 출산을 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브리핑을 듣던 교수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정강이부터 발바닥 부분까지의 뼈에 길게 난 금은 왜 생긴 겁니까?"

진영은 그의 질문에 인심좋은 미소를 띄었다.

"글쎄요, 제가 그 상황을 못 봐서요."

앞에 앉은 교수 몇이 피식 웃었다.

물론 질문을 던진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그 부분이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저는 그 상황을 못봐서 뭐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진영의 얼굴에는 조금씩 진지한 빛이 돌아왔다.

"지금부터, 저 발부터의 뼈에 긴 금이 간 이유를 데모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영의 얼굴에는 자못 비장한 빛마저 돌았고,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마저 침을 꿀꺽 삼켰다. 맨 앞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함박사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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