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바다는 평온했다.

그 여린 소녀들의 몸을 단박에 삼켜버렸으면서 바다는 그렇게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노인은 바위 터럭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담뱃잎을 넣었다.

‘세상이 망조가 난겨.’

불을 지핀 곰방대를 한 모금 빨고는, 노인은 연기를 바다쪽으로 불었다.

‘뱃사람이 언젯적부터 무당 말을 들었당가?’

노인은 다시 한 모금을 빨고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뱉을 뿐이었다.

담배 연기는 바다쪽으로 날아가는 듯 싶더니 아래 쪽으로 퍼졌다.

노인은 바다와 멀찍이 앉은 그 곳에서 이제 막 벌어지는 제사를 지켜보았다.

오늘 바다로 갈 소녀는 올해 막 13살이 된 노인의 손녀였다.

 

3D로 드러난 뼈의 외형은 여지없는 여자의 몸이었다.

진영은 자기 눈 앞에 펼쳐진 외형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오른 쪽 정강이 뼈에서 발목 부분까지 좀 확대해 볼래?”

뼈에 눈을 떼지 않고 진영이 말하자, 은수는 조종기로 다리뼈를 확대했다.

정강이 뼈에는 패이듯 찍힌 자국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얼핏 보면 모를 금이 정강이 뼈에서부터 발목까지 보였다.

“정 조교, 오른쪽 말고 왼쪽도 좀 보여줄래?”

3D 영상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 싶더니, 왼쪽 다리뼈가 확대되었다.

왼쪽 다리를 찬찬히 뜯어보던 진영은 한쪽 고개를 살짝 틀었다.

“정강이 쪽 조금만 더 확대해볼래?”

진영은 3D가 진짜 뼈이기나 한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댔다.

“왜 그러세요?”

은수가 묻는 말에 진영은 뚫어지게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말 시키지 말라는 신호였다.

은수는 저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영은 다시 한 쪽 고개를 틀었다.

“전체 좀 보여줘.”

자리를 옮기며 진영이 말했다.

발바닥 부분까지 꼼꼼이 살핀 진영은 그제야 사전에 작성해둔 차트를 보았다.

“정조교.”

은수는 흠칫 놀란 눈으로 진영을 보았다.

“너 또 무슨 상상하니?”

“네?”

“아까부터 불렀는데, 반응이 없어서.”

은수는 진영의 말에 눈만 꿈벅댄다.

“하이튼, 겁은 많아 가지고...”

진영이 혀를 차자, 은수는 그제야 씩 웃어버린다.

“그런데, 전 왜 불렀는데요?”

은수가 묻자 진영이 ‘응?’한다.

“저 불렀다면서요. 제가 정신 놓고 있을 때.”

은수는 끝의 말 부분에서 또 큭큭 웃어버린다.

진영은 말없이 영상과 뼈에 번갈아 시선을 줄 뿐이다.

“이 사람... 300년전 여자 치곤 키가 좀 크지 않아?”

은수가 3D영상 아래에 얌전히 누운 뼈들을 내려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쪼그라들고 건조해진 걸 감안한다 해도,”

은수는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160 안 될 듯 한데요.”

“그러니까. 영양 상태나 환경적으로 대부분 여성들 평균키가 150이 안 됬을 텐데, 이 여자는 좀 크다는 거지.”

은수는 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바다에 빠져 죽은 시체. 오랜 세월동안 풍화된 뼈.”

진영은 한 호흡을 쉬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리공주나 심청같은 앳된 여자가 아니라는 거야.”

은수는 다시 뼈를 내려다 보았다.

“뭐, 어차피 탄소 측정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진영은 차트를 내려놓고 손에서 장갑을 뺐다.

오래 집중한 탓에 머리가 아파왔다.

잠깐 눈을 붙인 걸 빼면, 진영이 잠을 못잔 지 닷새째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가운까지 벗어서 은수에게 정리를 부탁하는 진영의 얼굴에 진한 피로가 겹쳤다.

 

 북소리.

 빨간, 노란, 파란 천들.

 전혀 생소한 사람들의 얼굴, 얼굴.

그리고 소녀의 얼굴.

소녀는 떨고 있었다.

우악스러운 남자들의 손길에 소녀는 이제 곧 바다로 떨어질 운명이었다.

소녀는 절박해보였다.

소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들을 수 없었다.

들리지 않았다.

안 돼-.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고.

 

순간 눈을 떴다.

땀인지 눈물인지가 얼굴과 목을 적셔놓았다.

진영은 미동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꿈은 조각조각 끊어졌다.

 안타깝고 무서운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진영은 그대로 무릎을 감싸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피로도 누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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