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친 자국이 나 있던 부분은 발목 뼈 윗 쪽이었다. 그 아래의 부분은 부서져서 형체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설마, 이 뼈들을 다 맞춰 보려는 건 아니시겠죠?"

 정은수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진영은 뼛조각들을 주워 담았다. 스탠드 불빛에 그 뼈들을 내려놓고 돋보기로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핀셋으로 조각들을 들어내기 시작하자 정은수는 다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교수님 안 피곤하세요? 오늘도 그거 맞춘다고 잠 못 주무시면 닷새 째예요.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

"교수님?"

정은수의 재촉에 진영은 말없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 속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가서 커피나 좀 사올래? 나 아직 식전이니까 김밥도 괜찮아."

"어차피 사 와도 안 드실 거잖아요."

은수는 투정 섞인 말을 뱉으면서도 돈을 받았다.

"너 먹어 그럼."

뭐 늘 그런 식이었다. 진영은 한 번 연구에 빠져들면 잠도, 음식도, 인간관계도 전폐했다. 그러나 옆의 사람이 배를 곯거나 잠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꼴은 또 못 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퇴근이 좀 늦었으면 늦었지, 결코 배 고프거나 피곤해 본 적이 없던 은수였던지라 지금의 진영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그럼 제가 충무 김밥에 된장국 사올께요. 그건 저랑 같이 먹어요."

진영은 그저 뼈에만 온 신경을 쏟을 뿐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은수는 나가려다 문득 문 앞에서 진영의 뒷 모습을 돌아보았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군. 물 속에 빠져 있던 유골이 어떻게 발부분의 뼈만 부서진 거지?'

뼈 구조본을 두고 한 조각씩 맞춰 가던 진영은 무심결에 중얼 거렸다.

'귀신이 곡을 해... 귀...신....'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았다.

'하! 장난해, 권진영...'

진영은 일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없어... 그런 건 없어....'

진영은 또 도리도리 고개까지 흔들었다. 뼛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진영은 '귀신'이 아닌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만한 괜찮은 스토리를 생각하려고 애썼다. 

 '삼백년 전에 죽은 사람.... 그 사람은 여자.... 죽은 곳은 바다... 바다에는 왜?... 열녀?... 아님... 심청인가?...아님.... 수영하다 물 귀신... 아...'

 또 진영의 머리 뒤편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입만 방정이 아니야. 이느므 생각도 문제지...'

 진영은 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뭐 하세요?"

진영은 순간 소스라쳐서 핀셋으로 들었던 뼛조각을 떨어뜨렸다. 바닥으로.

"...교수님?"

진영은 로봇처럼 뻣뻣이 고개만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정은수.

"김밥 사왔어요."

서서히 일그러지는 진영의 표정에 은수는 웃음기를 거두고 눈만 크게 떴다.

"정은수! 뼈!"

그 말에 은수도 손에서 김밥 봉지를 떨어뜨렸다. 바닥으로.

진영은 더 놀라서 얼른 밑으로 꿇어앉아 바닥을 훑었다. 된장국이 쏟아져 흐르고 있었으나. 다행히 뼛조각은 국물의 영향력(?) 밖이었다. 은수는 얼른 봉지를 거두고 된장국이 더 쏟아지지 않게 주워  들었다.

 "... 뭐야?"

뼛조각을 손에 들고, 국물이 뚝뚝 흐르는 봉지를 들고 진영과 은수는 서로의 얼굴만 멍청히 보았다. 

"...김밥이요..."

진영은 그의 손에 든 봉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은수를 올려다 보았다.

"푸훗!" 

그렇게 웃음보가 터진 두 사람은 한참을 숨도 못 쉬고 웃었다.

"김밥 드세요."

조금씩 진정이 되자 은수가 말했다.

"뭐, 된장국 말은 김밥?"

진영의 말에 두 사람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 그래, 먹자."

 휴지며 물티슈등으로 바닥을 닦고 정리한 뒤 은수는 김밥이며 반 정도 남은 국물을 진영에게 내밀었다.

"근데, 교수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다가 놀라신 거예요?"

"응?"

오징어 무침이랑 무김치 등을 싸서 김밥을 입에 넣은 직후였다.

"교수님, 저 오기 전에 뭔가 깊이 생각하셨잖아요."

진영은 입에 든 내용물을 얼른 씹었다. 은수는 그런 그에게 국물을 권했다.

"내가 생각을 했다고?"

은수도 입을 오물거리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뼈만 보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집중하실 때랑 생각하실 때랑 눈빛이 달라요."

진영은 다시 김밥과 무김치를 함께 들어 입에 넣었다.

"아무 생각 안 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해 주세요."

진영은 다시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생각하는지 집중하는지 뭘 그렇게 알려고 그래?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진영의 말에 은수는 크게 웃었다.

"이제 아셨어요? 저 교수님 사랑하잖아요."

그 말에 진영은 사래에 들려 컥컥 거렸다.

"농담이에요, 농담~"

은수는 진영의 등을 두드리며 또 헤헤 웃었다.

"농담을 진담처럼 하냐 왜? 자꾸 그러면 오해한다."

 진영은 말없이 다시 김밥을 먹었다.

"... 여기 김밥 맛있죠?"

은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피곤하고 허기졌던 진영도 바짝 힘이 나고 머리도 회전하는 것 같았다. 맞추다 만 뼛조각을 돌아보던 진영이 은수에게 물었다.

"저거... 왜 그런 것 같아?"

은수는 진영의 시선을 따라 그 뼛조각을 보았다.

"글쎄요..."

진영은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여자이고, 바다에 빠졌다...왜?"

은수는 진영의 모습을 따라 팔짱을 끼고 같은 톤으로 목소리를 깔았다.

"그렇다면, 열녀나 심청이 아닐까요?"

"응?"

"그렇잖아요. 바다에 빠지는 여자 치고 정조를 지키려고 노심초사해서 자살하는 열녀나 공양미 삼백석에 제물이 되는 심청이 빼고 다른 게 뭐 있겠어요?"

진영은 은수의 말에 다시 뼈를 돌아보았다.

"그래...그럼..."

진영은 다시 은수에게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그럼, 저 칼에 쓸린 자국 같은 건 뭘까?"

은수는 그런 진영을 보다가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정적이 돌았다. 뼈들에 시선이 고정된 진영은 은수의 시선이 깊어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정 조교, 나 커피 한잔 타주고 집에 가라."

 진영은 다시 뼈 앞에 섰다.

"정말 오늘도 밤 새시려구요?"

은수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진영은 장갑을 꼈다.

"그러다 탈 나세요."

"커피 멀었니?"

돌아보지도 않고 뱉는 진영의 말에 은수는 또 어깨를 으쓱하고 나갔다.

'열녀일까? 심청일까?'

진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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