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후, 수현은 집에만 있었다. 민영이 오던 아침 6시 반이면 꼭 눈을 떴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민영은 오지 않았다. 수현은 물을 끓여서 국화향을 우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마실 수 없었다. 한 모금을 마시면 목이 메였다. 민영이 스텝을 통해 건넨 후리지아는 시들어서 이제는 꽃잎이 거의 떨어져 있었다. 수현은 피아노 뚜껑조차 열지 못했다. 자신의 집 여기저기, 민영의 손이 닿았던 곳마다 그녀의 흔적이 느껴져 싸아 해지는 기분을 어쩌지 못했다.

 오후 세 시. 수현의 마음 속의 서운한 감정이 분노로 굳어갔다. 그도 알고 있었다. 민영이 잘못한 게 있어서가 아니란 걸. 그렇지만 그 분노가 정확히 민영을 조준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에 대한 것인지, 수현은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의 전화는 끊겨 있었다. 아무리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수현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꽃예담 어린이집 입니다. '

 "......네.... 혹시 거기...... 주민영 선생님 계신가요?"

 '아, 퇴사 하셨는데요...' 

수현은 듣고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달 전에 그녀는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불과 2주일 전만 해도 수현은 민영을 만났었다. 민영은 그 이전에 그만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그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 때 돌아보니 민영의 집조차 모르고 있던 자신에게 수현은 마음이 더욱 상했다. 수현은 일어났다. 

 

 "안녕 하세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교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예... "

 수현은 다시 꾸벅 인사하고 민영의 행방에 대해 물어본다.

 "아~. 주민영 선생님이요. 지난 달에 해외로 나가신다고 여기 그만 두셨어요."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있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해외라니요... 어디로..."

 수현이 말을 잇지 못할 때, 한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교사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로 얼른 뛰어갔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구요. 더 자세한 건 안에 원장님께 여쭤 보세요."

수현은  그 말에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영 선생님과는 어떻게 되시죠?"

 신상 정보를 함부로 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수현은 뭐라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다시 물어보는 원장에게 수현은 더욱더 할 말이 없었다.

 "그 선생님과 그 어떤 관계도 아니시면 신상 정보를 함부로 줄 수 없습니다. "

 수현은 그저 앉아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잠깐 사귀었어요..."

 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사귀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끝일 줄 알았는데... "

 원장은 앞으로 몸을 조금 숙였다.

 "그런데요?"

 수현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 연락이 닿지 않는 지금... 돌아보니 제가 민영이한테 해 준 것이 없더군요."

 원장은 숙였던 몸을 당겨 꼿꼿이 앉았다.

 "아직...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데... 민영이가 사라졌어요. "

 원장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요... 주민영 선생님은 이 곳 어린이집에서 꽤 오랫동안 일하신 베테랑 선생님이시죠. 자기 가치관도 뚜렷하시구요."

 원장은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더니 수현에게 건넸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해외 봉사를 준비 하셨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시죠. 그 안에 연락이 되시길 빕니다. "

 수현은 메모지를 받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일어섰다.

 "정수현씨."

 원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주민영 선생님께 꼭 알려주세요. 저희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을 언제라도 다시 환영하겠다구요."

 

 수현은 적힌 대로 민영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의 집은 수현의 집과 두 블럭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이웃들은 그녀가 혼자 살았다고 전했다. 요새 세상에 보기 드문 처녀라고, 주말에도 혼자 있으면 빨래하고 청소하고 음식해서 이웃들과 나눌 줄도 알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집의 세간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고, 그녀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었다. 수현은 또 한번 찬 바람이 그의 가슴을 쓸어내 가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온 수현은 소파에 털석 앉아 버렸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몇 번을 다시 걸어도 같은 답만 계속 들렸다. 그 자리에 못 박은 듯 앉아있던 수현은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전화기와 배터리가 부딪혀서 분리됐다. 벌떡 일어나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국화차 잔 마저 집어던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부숴 버렸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소파마저 뒤집어 보려다 넘어져 깨진 컵에 손을 베었다. 빨간 피가 '뚝, 뚝'소리를 내며 흘렀다. 그렇게 무심한 듯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 새 피는 멎어있었다. 가슴이 저며와 통증마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누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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