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그대로 못 박힌 듯 서 있는다. 송우현은 그런 그녀를 보고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그 여자는 옆으로 흐른 머리카락을 귀뒤로 쓸어넘기고 커피숍 문을 열었다.  

 "올 줄 알았어요." 

 그 여자는 쭈삣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뭐 마실래요? 내가 살께요." 

 그가 일어나자 그 여자도 벌떡 일어난다. 그 때 당황한 건 오직 그 여자 뿐이다.  

 "아니면 밥을 살까요?" 

 그제서야 그 여자도 시계를 본다.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끈다.  

 "뭐 먹고 싶어요?" 

 그 여자는 뭐라 말할 새도 없다.  

 "원래 말이 없어요?" 

 그 여자는 그를 올려다 보고 말없이 웃기만 한다.  

 "좋네요, 웃는 얼굴 보니까." 

 그도 같이 웃는다.  

 "성격...급하시죠?" 

 그 여자가 입을 연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도 웃는다.  

 "그냥...급하게 행동하시는 것 같아서..." 

 그 여자는 1분 이상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하는 그가 신기하다.  

 "맞아요. 나 성격 급해요. 그러니까 빨리 메뉴 정하세요. 밥 먹어야죠. " 

 그 여자는 다시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본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앞을 본다.  

 "저쪽에 돈가스랑 우동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네." 

 그 여자는 그에게 느끼는 호감을 애써 억눌렀다.  

 그 남자와 무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사막으로 가기는 무리란다. 조바심을 치는 그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외려 태연하다. 로마에 오면 로마 법에 따르라고 했던가. 그 남자도 쓴 웃음을 짓고 말아버린다.  

 "시원한 거좀 마실까?" 

 짐이 제안하자 모두 좋다고 한다. 봄베이에서 라자스탄 시내까지는 꽤 먼 거리를 온터라 모두 허기져 있었다. 늦은 점심도 그 시간까지 그들을 지탱해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짐과 스코티쉬 남자와 중국인 한 명과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먼저 샤워 할테야?" 

 짐이 일행에게 묻자 스코티쉬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남자는 침대에 짐을 풀어 갈아입을 옷과 다이어리를 꺼냈다.  

 "뭐야? 중국언가? 아니면 일본어?" 

 짐이 그 남자의 다이어리를 보더니 짓궂게 물었다.  

 "이 봐, 이건 내 다이어리라구." 

 그 남자도 장난을 받아친다. 곁에 있던 중국인이 웃는다. 찬이라는 성을 쓴다.  

 "매번 기록으로 남기나 보지?" 

 찬이 묻자 그 남자가 도리질을 한다.  

 "그냥... 여행 중에는 기록을 남겨두는 게 나중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아서..." 

 찬이 끄덕인다.  

 "이 봐, 빨리 나오라구. 대기자가 줄을 섰어!" 

 짐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스코티쉬가 무어라고 소리쳐댄다. 다들 낄낄 웃고 만다.  

 "배가 고파 . 빨리 뭘 좀 먹었으면 좋겠어." 

 찬의 말에 그 남자의 허기도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돈가스를 한 점씩 먹을 때마다 그의 시선을 느끼고 멈칫해야만 했다.  

 "...안 드세요?" 

 그 여자가 말하자 그는 웃기만 한다.  

 "자꾸 그렇게 보시면 저 체해요. 조금 있다 일도 해야 하는데..." 

 그 여자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미안해요. 그 쪽이 너무 맛없어 해서..." 

 머리 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네?"

 그 여자의 표정에 그는 외려 크게 웃어버린다.  

 "여기 맛있는 집 맞아요? 왜 그렇게 못 먹어요?" 

 아~. 그 뜻이었구나.... 그 여자도 그냥 웃어버린다.  

 "여기 맛있어요. 이 근처에서 밥 먹을 일 있으면 전 꼭 여기 오거든요." 

 그 여자가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짓는다.  

 "음~. 맛있는 거 맞네요. 그 쪽 표정에 속을 뻔 했잖아요." 

 그는 또 짓궂게 한 마디 하고는 앞에 놓인 우동과 돈가스를 빠르게 먹어버린다. 그 여자도 그제야 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그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블티 전문점으로 그를 안내했다.  

 "밥 사셨으니까 제가 차 한 잔 살께요. 아까 커피는 마셨을테고 주스 드세요. " 

 그 여자도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은 익숙한 듯 하다.  

 "버블티?" 

 컵의 내용물을 보더니 그가 의아해한다.  

 "차나 주스 속에 요 젤리같은 동그란게 들어있는 모습이 거품 나는 모습 같대서 그렇게들 부르는 것 같아요. "  

 그 여자가 빨대를 입에 물며 설명해준다.  

 "특이한 거 좋아하네요." 

 그도 한 모금 마신다.  

 "맛있으니까." 

 그 여자가 웃자 그도 따라 웃는다. 이제는 눈맞춤을 해도 어색하지 않다.  

 "전 컴퓨터 공학 전공하고 있어요. 그 쪽은?" 

 "저요? " 

 그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인다. 속일 것도 없다지만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는 일이라 무어라 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한다.  

 "전 학교는 안 다니구요..." 

 그 여자는 솔직히 말하기로 한다.  

 "시간제나 사이버로 학점은행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 

 말하면서 그 여자는 남자의 표정을 살핀다. 남자의 표정에서 미묘한 무언가가 잡힌다. 그럼 그렇지.... 

 "...과는요?" 

 "영문학이요." 

 그 여자는 담담히 말한다.  

 "왜 영문학을 하게 됬지요?" 

 그가 묻자 그 여자는 씹고 있던 버블을 꿀떡 삼킨다.  

 "원래 영어를 좋아했는데 좀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하게 됐어요." 

 그 여자는 안다. 아무리 자기가 최선을 다해 솔직해진다 해도 이 사람의 기준치에 자신이 맞을 리 없다는 것을.  

 "편의점 알바는 언제부터 했나요? " 

 "2년전 부터요" 

 "야간에?" 

 "네." 

 "왜요?" 

 이 사람의 질문은 거의 심문 수준이다. 그 여자는 서서히 이 사람과의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재수를 할까 해서  학비도 벌겸 시작했지요. 낮에는 공부하고....근데 대학에 가서도 내가 원하는 건 못 얻을 것 같아서 차라리 하고 싶은 걸 하자 싶어 계속 그 야간 알바를 하게 됐어요." 

 불편 스럽기는 해도 그 여자는 기왕에 말 나온거 다 얘기 하는게 좋을 성 싶다.  

 "하고 싶은 게 뭔데요?" 

 그가 집요하게 묻자 그 여자는 먼저 벽에 걸린 시계부터 봤다. 편의점에 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폭넓은 독서를 하는 것과 세계 여행을 하는 것. " 

 그 때, 그의 눈빛이 다시 미묘한 빛을 띄는 것을 그 여자는 보았다.  

 "독서와 여행이라...." 

 그가 다시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여자는 다시금 시계를 흘끔거린다.  

 "그동안 여행 다녀온 곳은 있나요?" 

 "그럼요." 

 단호한 그 여자의 말에 그는 잠시 말을 못한다.  

"어디어디?" 

 "필리핀 보루네오 섬이랑 일본 삿포로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것이 보이고 그의 눈빛 조차 빛났다.  그녀는 그의 그런 변화에 어리둥절했다.  

 "저 이제 가야겠어요. " 

 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팔을 잡는다. 아까 커피숍 이후에 두번 째 스킨십이다.  

 "전화 번호 줄래요? 난  그 쪽이랑 또 만나고 싶은데...." 

 그 여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른다.  그러다 결심한 듯 전화번호를 준다.   

 "편의점까지 데려다 줄께요." 

 이번에는 그가 그 여자의 손을 잡는다. 순간 당황한 그 여자가 손을 뺀다.  

 "아니에요....그냥 저 혼자 갈래요." 

 그가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만다.  

 "...그럼... 잘 가요. 전화 할게요. " 

 찻집 앞에서 둘은 헤어진다. 그 여자는 그의 다른 어떤 점보다 그의 피부가 닿았던 손의 느낌을 다시금 되새기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걷다 코너를  돌 때, 예상치 못한 바람이 그녀을 한번 뒤흔들고 간다.  바람에 날린 먼지 때문에 그 여자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서서히 눈을 뜬다. 다시 길을 걷던 그 여자는 방금 전의 바람을 통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익숙해, 이 냄새...' 

 그 여자는 순간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돌아본다.  

 '아니야...아직.... 아니야...'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바람 속에서 그 여자는 자신이 맡았던 그리운 어떤 것을 느꼈고 그 냄새는 방금 만나고 느꼈던 송우현에 대한 감정을 씻어내고 있었다.  

 그 남자와 무리는 노천 식당에 앉아 새빨갛게 구운 탄도리 치킨과 버터 난등을 시켜놓고 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먹성은 대단해서 이미 세 마리를 다 먹고도 두 마리를 더 시켜 나눠 먹고 있었고 큰 버터 난조차도 개인당 5장씩은 먹고 있는 듯했다.  

 "와우~ 이거 너무 먹는 거 아냐?" 

 그 남자가 말하자 모두들 '야~'를 연발한다.  

 "먹어두라구. 내일부터는 힘든 여정이 될 테니까." 

 짐이 난과 닭다리를 접시에 덜어 놓으며 그 남자에게 말했다. 가이드 조차 동의의 빛을 보인다.  

 식사가 끝난후 모두들 몇 사람이 모인 노점상으로 달려갔다.  

 "뭘 하려는 거야?" 

 그 남자가 묻자 짐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빤" 

 "뭐?" 

 "이걸 빤이라고 해. 인도인들의 기호식품이지. " 

 잎사귀에 밤톨같은 것을 넣어 감싼 것이다.  

 "이걸 먹으면 입이 빨갛게 돼." 

 정말 대부분 사람들의 입이 빨갛다.  

 "씹어볼테야?" 

 짐이 묻자 그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닥 청결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그들을 보다가 그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봄베이에서 본 인도인들보다 더 특이한 복장을 한 여자들이 그의 곁을 스쳐갔다. 그들을 하염없이 보던 그는 갑자기 몰려온 흙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찬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어..눈을 못 뜨겠어..." 

 눈을 비비적 대던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곧 흐린 상이 뚜렸이 보였다.  

 "괜찮은거야?" 

 짐이 묻자 얼빠진 얼굴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건 뭐지?....'

그 바람은 꼭....연금술사의 마지막, '파티마의 바람'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라고?....뭐가 아니란 거지?....' 

 그 남자의 마음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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