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해 전에 마지막으로 썼던 자기소개서 파일은 아 직 남아 있다. 읽어보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편집자로서 밟아온 어쭙잖은 궤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러 출판사의 이름과 그곳에서 만들었던 책, 만났던 사람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미래의 목표와 계획 따위가 나름대로 단정하게, 하지만 무미건조하게 기술되어 있다. 항상 내 편이었던 것만은 아닌 시간들에 대한 회한도 얼마간 묻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희망만은 엿보인다. '나는 일하고 싶다'라는 희망. 이 자기소개서도 언젠가는 찾을 수 없어질 것이다._본문 중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기 위해 정신과에서 진단용 검사를 했던 때를 기억한다. 의사는 나에게 사람을 그려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남자, 그다음에는 여자를 그렸다. 그는 내가 그린 사람들이 누군지 물었고, 나는 둘 다 나라고 답했다. 의사는 이들이 미래에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멍하니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사라져요./(기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