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극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3
마틴 에슬린 지음, 김미혜 옮김 / 한길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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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나는 자신들의 몸뚱이 외에는 어떤 다른 아름다움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사랑한다(-)

 

 

  (-) 르프랑은 (-) 자신의 불운을 스스로 선택한다. (-)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그는 나포(拿捕)자가 된 것이다. 거울 방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그는 자기 이미지의 투영상 때문에 길을 잘못 드는 것이다. (-)

 

 

  그러나 여기 위에서 공연되는 극을 보면서도 여러분들이 조용히 기분 좋게 의자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이 극이 당신들의 귀한 삶 속에 침투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당신네들에게서 배운,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예의를 갖출 것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 역시 코미디언이니까요.

 

 

  (-) 한 가족-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저녁식탁에 앉아 있다.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에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물어본다. 그런데 대답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질문 받은 사람들에게서 답을 기다리지 않고 질문을 계속한다. "넌 오늘 아침 무얼 했냐? 학교에 갔죠. 그럼 당신은? 장 보러 갔어요. 무얼 샀소? 채소를 샀는데 어제보다 비쌌고 고기는 어제보다 쌌어요. 그거 잘됐군. 계산은 같으니까. 그리고 넌, 선생님이 무어라 하시던? 제 실력이 좋아지고 있대요."

  (-) 누군가 문밖에 있다. 아버지가 문을 연다. 키가 아주 큰 남자가 밖에 서 있다. 그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고 그의 시체를 가져간다. 알 수 없는 여자가 어머니에게 창밖을 내다보라고 한다. 밖에는 온통 시체들이 널려 있다. 아버지의 시체도 그 속에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는 시체들 가운데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온다. (-)

 

 

  타르디외의 초기작품들 중 (-) 「열쇠 구멍」(La Serrure)에서는 (-) 한 유곽에서 어떤 고객이 욕망을 채우려고 기다린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나치게 큰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그는 황홀경에 차 자기가 보는 것을 묘사한다. 그 처녀는 옷을 차례차례 벗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발가벗은 후에도 계속 벗는다. 그녀는 두 뺨, 두 눈, 신체의 다른 부분들도 벗어놓아 드디어 앙상한 갈비뼈만 남는다. (-)

 

 

  (-) 보리스 비앙(1920~59)의 부조리극에 속하는 유일한 작품은 (-) 이오네스코의 영향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 작품은 (-)「제국의 건설자」(-)로, (-) 전 3막은 우리에게 무언지 알 수 없는 끔찍한 소음에서 도망치는 한 가족을 보여준다. 그 가족은 소음을 피하려고 점점 더 높은 층으로, 점점 더 작은 집으로 옮겨간다. 1막에선 아버지, 어머니, 딸 제노비, 그리고 하녀 크뤼슈가 방 두 칸짜리 집을 정돈하는 중이다. 2막에서 그들은 어느새 한 층 더 높은 곳의 방 한 칸짜리 집에 살고 있다. 하녀가 나간다. 베란다로 나간 딸은 왠지 모르지만 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돌아올 수 없다. 부모만 달랑 남아 있다. 그들의 세계는 계속 좁아진다. 3막에서는 아버지가 아주 옹색한 다락방으로 옮겨가는 게 보인다. 소음 때문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껴 그는 아내가 들어오기도 전에 문을 봉쇄해버렸다. 그는 혼자다. 그러나 소음, 즉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다가오는 죽음의 소리는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에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그는 죽는다.

 

 

  (-) 1906년에 태어난 부차티 (-) 1955년 카뮈의 각색으로 파리에서 상연된 이 드라마의 제목은「한 임상(臨床) 케이스」(Un caso clinico)다. 2부(13장면)로 된 이 희곡은 중년의 사업가 조반니 코르테의 점진적인 죽음을 보여준다. 남자는 하는 일이 많아 과로한데다 가족에게 구박받으면서도 방종하다. 왜냐하면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때문이다. 그는 무조건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그는 멀리서 어떤 여자가 자신을 부르는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집에서는 여자 유령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유명한 전문의를 찾아가보라는 충고를 듣고 최신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의사를 찾아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그 병원의 환자가 되고 즉각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병원은 최상이고 최신 시설을 갖추었다며 그를 안심시킨다. 실제로는 멀쩡하거나 그저 관찰 대상인 환자들은 7층에 누워 있다. 건강이 썩 좋지 않은 사람들은 6층에 머물고 있다. 병중이긴 하지만 꼭 돌봐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5층에 누워 있고 등등, 그런 식으로 1층까지 내려오면 그곳은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다.

  (-) 처음에 코르테는 7층에서 6층으로 옮겨진다. 그보다 더 급하게 개인 간호사가 필요한 새로운 환자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다. 그뒤 한 층을 더 내려갔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의료기구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옮겨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명해지기도 전에 그는 최하층에 내려오게 되어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는 포기해버린, 버림받은 사람들 사이에 묻힌다. (-)

  (-) 이 작품은 (-) 무엇보다도 그의 몰락이 전혀 눈치챌 수 없게 일어나다가 그가 갑자기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체험케 한다. (-) 즉 사회란 개개인을 죽음으로 몰아대는 몰개성적인 조직체인 것이다. 이 조직체는 개개인을 돌보고, 개개인에게 봉사하지만 동시에 접근 불가능하고, 규제되어 있고, 포착 불가능하며 무서운 것이다. (-) 「한 임상 케이스」는 인간이 늙어감과 질병에 어떻게 점차 압도당하는지,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묘사한다. 점진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개인성을 잃는다. (-)

 

 

  1957년 7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초연된 페드롤로의 단막극 「크루마」(Cruma)는 인간의 고독화에 대한 연구다. '크루마'는 에트루리아의 도량형, 즉 측량기구의 명칭이다. (-) 커다란 집의 한 부분으로 보이는 퇴락한 벽이 있는 텅 빈 복도에서 그곳에 살기 때문에 '거주자'라 불리는 남자가 벽의 면적을 재느라 애쓴다. 한 사람이 찾아와 그 일을 돕는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허사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줄자에 눈금도 숫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 거주자는 자신이 바깥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자신의 것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방문자는 그가 재떨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묻는다. "모르겠소. 누군가 가져왔을 테고 그래서 여기 있는 거요"라고 그는 대답한다. (-)

  (-)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접촉한다. 나가이오라는 여자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한 처녀가 복도를 지나가지만 두 사람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방문자가 손을 씻으려고 욕실 문을 열자 그곳에 낯선 자가 있고 거주자는 그를 방문자로 생각한다. (-) 나가이오라는 여자의 얼굴은 마당의 반대쪽에 있는 집의 창문이 열릴 때 보인다. 거주자와 방문자(-)와는 달리 낯선 자는 곧장 그녀와 친해지고 심지어는 데이트 약속까지 한다. 그는 이제 다시 복도를 지나가는 처녀와 대화를 나눈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이제 그는 나가이오가 아니라 그 처녀와 외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처녀가 방과 복도 사이를 갈라놓은 커튼 뒤로 사라졌을 때 그는 그녀를 따라가려 한다. 그런데 커튼이 갑자기 고정된 문이 되어버린다. 거주자는 문을 열 수 있고 낯선 자는 그 처녀에게로 간다. 거주자와 방문자만 달랑 남게 된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을 방해했던 기이한 존재들이 실제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그들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린다. 거주자는 문을 열기 위해 문으로 간다. 바로 그 순간 막이 내린다.

  이 독특한 작품은 '타자들'의 실재, 그리고 그들과의 접촉 가능성을 묻는다. 각 인물마다 존재의 다른 단계를 형상화한다. 거주자가 그 단계의 끝에 있다.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실재하고, 신빙성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나 타자들과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는 친구와 낯선 자도 식별하지 못한다. 그 단계의 또 다른 끝에 젊은 처녀가 있다. 그녀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일 때에만 실재한다. 나머지 세 인물은 이 단계의 중간에 있다. (-)

  페드롤로의 이와 같은 양식의 두번째 작품이며 수준 높은 희곡이 「인간들과 노우」(Homes i No)인데 (-) 무대는 두 개의 철창으로 삼분되어 있다. 가운데 공간에서 기이하고도 비인간적인 노우라는 이름의 간수가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수감자들을 지킨다. 노우는 잠이 들어 있다. 양쪽의 감방에 수감되어 있는 커플들, 즉 한 쪽의 파비와 셀레나, 다른 한 쪽의 브레트와 엘리아나는 간수를 제압하려고 한다. 그러나 간수는 때맞춰 눈을 뜬다. 두 커플의 탈옥시도는 좌절한다. 그러나 탈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된 후 그들에겐 자신들이, 또는 언젠가는 자신들의 아이들이 탈옥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커진다.

  2막에서는 한 커플에겐 아들 페다, 또 다른 커플에겐 딸 소르네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이 감옥을 벗어나 결합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 그들의 부모는 끊임없이 노우의 감시 하에 있기 때문에 감방의 다른 쪽을 조사해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 면밀히 조사해본 결과 (-) 벽은 그저 커튼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이 커튼 찢는 일을 감행해야 하나? (-) 간수 노우는 아주 당황하며 두 사람에게 어떤 경우라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간청한다. 만일 그런 짓을 하면 그들은 끝장이라는 것이다. 죽음? 아니, 훨씬 더 끔찍한 것. 긴장감이 증대된다. 드디어 페다는 모험을 감행하려고 한다. 그는 커튼을 찢는다. 벽의 뒤에서 새로운 철창들이 나타난다. 이 철창들은 감방을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우 자신도 세번째 감방에 갇힌 죄수임이 드러난다. 새 감방의 뒤엔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세 간수들이 말없이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 노우도 그저 죄수에 지나지 않았다. 맞다. "그걸 알고 있었으니 죄수 이상이지!"라는 페다의 말처럼. 

 

 

  (-) 1932년 메릴라(옛날 에스파냐령의 마로코)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아라발(-)의 세계에 있는 부조리성의 뿌리는 (-) 인물들이 아이들의 천진하고도 불가해한 눈길로 인간 상황을 바라본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들은 때로 아이들처럼 잔인하다. 왜냐하면 도덕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도덕률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아라발은 스무 살 때 한국전쟁에 대해 들었고 그 인상을 바탕으로 이 희곡을 썼다. 이 짧은 단막극은 우리에게 최전선에서 혼자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 자포를 보여준다. (-) 그의 부모가 그곳으로 면회를 온다. 그들은 함께 일요일의 피크닉을 벌이려 한다. 갑자기 적군 병사 제포가 나타난다. 자포는 그를 체포하지만 나중엔 피크닉에 초대한다. 즐겁게 식사를 하다가 그들은 모두 폭탄세례를 맞고 죽는다.

  (-) 단막극 「기도」에서도 (-) 한 남자와 한 여자, 피디오와 릴베(-)가 한 아이의 관 옆에 앉아 오늘부터 선해지기 위해 그 관을 어떻게 놓으면 좋을지 의논한다. 릴베는 '선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

 

릴 베: 그러니까 이젠 묘지에 가지 않고도 전처럼 즐길 수 있단 말이지?

피디오: 그럼, 그렇고 말고.

릴 베: 전처럼 시체에서 눈알을 파내?

피디오: 그건 안 돼. 안 돼.

릴 베: 죽이는 건?

피디오: 안 돼.

릴 베: 그럼 사람들이 계속 살게 놔둬야 돼?

피디오: 물론이지.

릴 베: 그게 더 나쁠 텐데.

 

  (-)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피디오와 릴베가 자신들이 죽인 자신들의 아이의 관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 드디어 한번쯤 선해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릴베는 그것이 지루하리라는 것을 예견한다.

 

 

  (-) 이스라엘인 아모스 캐난의 희곡(-) 이 작품의 프랑스어 제목은 「사자」(Le Lion)인데 (-) 세 사람이 등장한다. 즉 쉰 살가량의 베이비(아기), 서른 살가량의 부인-그녀는 베이비를 자기 자식인 양 다룬다-그리고 스무 살가량의 운전기사가 등장한다. 한 번도 동시에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세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쉰 살의 베이비가 갑자기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이 되고, 이 장군이 다시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실업가가 된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베이비를 전쟁터와 공장부지를 둘러보는 감리 작업차에 태워서 다니는 운전기사는 부인의 집에 침입하는 도둑이 된다. 그는 모든 귀중품들을 가져가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부인과 동침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베이비-실업가의 정부로 등장하는데 그에게 구둣가게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인은 다시 젖먹이의 어머니가 되어버린다. 그녀는 아이에게 미음을 먹이려고 한다. 그러나 베이비는 그건 사자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 이 작품은 시간의 연속을 해체함으로써 인간 발전과정의 공관(共觀)적 관점을 창조하려고 한 것 같다. 베이비는 이미 장군의 소지가 있고, 장군은 여러 측면에서 아직 베이비인 것이다. 그런데 두 인물 모두 사자의 공격적 본능이 있는 것이다. 부인은 어머니고, 먼 곳에서 그리워하는 연인이고, 강도의 육감적인 공범자다. 그런데 강도는 다시 장군의 충성스런 부하고, 죄 없이 박해받는 희생자고, 마지막에는 교활한 범죄자다. 만일 우리가 주변사람들의 삶의 단계를 시간의 흐름에서 연속적으로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면 한 인간 속에 모순되는 본질적인 특징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하는지를 보고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논증하고 있다.

 

 

  “농(弄)이 세 번째 최상의 위장이지. 두 번째 최상은 센티멘털리즘이고 [……] 그러나 가장 최상이자 가장 확실한 위장은 [……] 역시 적나라한 진실이야. 이상도 하지. 이걸 아무도 안 믿으니.”

 

 

  귄터 그라스(-)의 희곡들은 근본적으로 거칠다. (-) 「아저씨, 아저씨」(Onkel, Onkel)에서는 살인에 전력투구 헌신하겠다는 젊은이 볼린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계획한 대로 성공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희생물로 점찍어놓은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소녀는 그가 그녀의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기어나왔는데도 그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에게 글자 맞추기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까지 한다. (-) 그가 목욕탕에서 살해하려고 하는 스타 영화배우는 얼토당토않은 잡담으로 그를 쫓아내고, 마지막에는 두 아이들이 볼린의 권총을 훔쳐 그를 쏜다.

 

 

  “한 방 안에 있는 두 사람-한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이미지가 종종 나를 사로잡습니다. (-)” (-) “그들은 분명 방 밖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방 밖에는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는 하나의 세계가 있죠. 그게 겁이 나는 겁니다. 그건 당신과 나에게도 똑같이 두려운 거라고 난 확신합니다.”(-)

 

 

 

  (-)「실내장식업자」(I Gaspiri/The Upholsteres)에서는 한 외국인이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라고 묻자 “결혼에서요”라는 대답을 듣는데 대답한 사람은 뒤이어 “거긴 아주 근사한 곳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가 결혼했는지 알고 싶어하자 그는 “글쎄요. 내 옆에 사는 여자가 한 사람 있긴 한데 난 그녀를 잘 보관할 줄 모릅니다”라고 설명한다.

 

 

  (-) 이오네스코는 (-) 이렇게 썼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갖지 못해 미궁에서 길을 잃은 인간이라는 테마가 카프카 작품에서의 [……] 원초적 테마다. 인간이 인도하는 실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그 실을 더 이상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인간의 죄의식, 두려움, 역사의 부조리함이 유래하는 것이다.”

 

 

  (-) “(-) 우리의 운문 시대가 끝난 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섬세한 색과 신경증적 리듬이 없어진 후, 콘더(Conder)가 그린 흐릿하고 혼합된 색조가 사라진 후 무엇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뒤엔 야만인들의 신이 오겠지” (-)

 

 

  (-) 인간은 가는 것을 모방하고 싶어서 다리와는 전혀 닮지 않은 바퀴를 창조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 1959년 7월 29일 (-) 방송극 「가벼운 통증」에서 (-) 세 인물들 중 두 인물들만 말을 한다. 세 번째 인물은 말이 없고, 그래서 낯선 자의 경악을 나타낸다. 늙은 부부 에드워드와 플로라는 몇 주 전부터 성냥상자를 메고 그들의 집 뒤편 입구에 서 있으면서도 결코 성냥을 팔지 않는 알 수 없는 성냥장수 때문에 불안하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남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그에게 말할 수 없다. 그가 여전히 말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방문자의 고집에 자극받아 에드워드는 그에게 자기의 인생이야기를 하게 된다. 에드워드는 자기가 전혀 겁먹고 있지 않다고 확신하지만 실은 그도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정원으로 나간다. 이번에는 플로라의 차례다. 그녀는 말없는 방문자에게 추억과 고백을 잔뜩 쏟아놓는다. 그녀는 심지어 성적 욕구에 대해서까지도 이야기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 늙은 부랑자에게 매력도 주지만 동시에 혐오감도 준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난 당신을 여기 머물게 하겠어요. 이 끔찍한 양반아, 난 당신을 바나바스라고 부르겠어요.” 늙은 남자에 대한 플로라의 태도에는 모성 본능과 성적 본능이 뒤섞여 있다. 에드워드는 강한 질투심에 휩싸인다. 이제 그가 다시 바나바스에게 이야기할 차례다. 상대방에게서 무언가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또 실패하자 그는 점점 더 사적(私的)으로 되고, 그러는 동안 눈에 띄게 초췌해진다. 작품의 마지막에 플로라는 바나바스를 받아들이고 에드워드를 쫓아낸다. “에드워드, 자 여기 당신 판매상자!” 남편과 부랑자가 자리를 바꾼 것이다.

 

 

  1960년 (-) 방송된 방송극 「난쟁이들」에서 핀터는 아스턴의 체험을 다시 한 번, 좀더 넓은 형식으로 다운다. 주인공 렌 역시 환각증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이 맛있는 쥐고기를 먹이로 주는 난쟁이 동아리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난쟁이들을 무서워하고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나 꿈의 세계가 사라지자 그는 그 세계의 더러운 마당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기분 좋은 무질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손실로 여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방은 [……] 열리고 닫혀 [……] 너희들한텐 그게 안 보이냐? 그 방들은 제멋대로 모양이 변하지. 그 방들이 어떤 고정된 모습만 갖고 싶어한다 해도 난 아무 말 않을 거야. 그런데 그렇진 않아. 난 한게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이 내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한계 말이야.” (-)

 

 

  「울리는 벨소리」의 극적 장소는 파라독크(파라독스를 연상시킴) 부부가 사는 방갈로의 거실이다. (-) 바라독크 부부는 상점에서 코끼리를 한 마리 주문해 배달시켰지만 코끼리는 개인 집에 들어가기에는 좀 크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코끼리는 호텔에나 맞는 크기다”). 그래서 그 부부는 코끼리를 뱀과 바꾼다(“뱀은 더 길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아”). (-)

 

 

  작가(-)는 이렇게 선포한다. “저는 특별한 세계관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저의 독자적인 개념들은 좀더 나은 여러분의 개념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 것인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저는 서커스의 난쟁이입니다. 저는 저의 신체적인 약점과 정신적인 약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득을 취합니다.” (-)

 

 

  (-) 가장인 아서 그룸커비는 파코미터 공장을 운영하여 생활비를 번다. (-) 그는 법학에 대해 대단히 흥미가 있고 나무로 공작품을 만드는 데 열정적이다. (-)

  아서의 아들인 커비 그룸커비는 파블로브 방식에 따라 자신을 훈련시킨다. 그는 식사 전에 자동 금전등록기가 울리는 것을 들어야 식사를 할 수 있다. 그것 말고도 그는 거대한 교육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즉 그는 5백 개의 “자동저울”에게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을 연습시키려 한다. 그는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동저울들이 말을 할 수 있으니 노래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는 꽤나 진전을 본다. 자동기계들이 노래하는 것을 배우면 곧 그는 그것들을 북극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을 부추겨 똑같은 순간에 모두 한꺼번에 뛰어오르게 하면 지축이 기울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국에 빙하시대가 올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는 것이다. (-)

 

  (-) 미무스(Mimus)(-)는 일종의 민중극으로서 (-) 춤, 음악, 곡예로 이루어진 극이었다. (-)

 

  고대의 미무스에서 어릿광대는 모로스(moros)나 스투피두스(stupidus)로 등장했다. (-) 라이히는 집을 팔고 싶어서 돌을 집의 견본으로 끌고 다니는 남자의 예로 든다. (-) 또 다른 대표자는 자기 노새에게 먹지 않고도 사는 기술을 가르치려고 한다. 노새가 드디어 굶어죽게 되자 그는 “엄청 손해났군. 노새가 ‘안 먹기’를 배웠는데 그만 뒈졌으니 말이야”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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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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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아무 생각 안 하고 시간 때우기에 제격이기 때문이에요. 깊은 걸 읽으면 내가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게 되면 내가 변해야 하니까. 그게 두려웠어요. 그런데 나처럼 생각하기 싫어했던 놈이, 생각하기 싫어서 그 몇 분 남는 시간에 무협지 읽던 놈이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생각이란 걸 해요.

처음에는 파업 참여할 때 제 마음속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단 생각도 있었고 모멸감도 있었고 부조리에 대해 화가 난 것도 있었어요. 지금은 '과연 내가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을까? 나의 일상이라고 믿었던 그것이 정말 돌아가고 싶은 일상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혼자 밥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청소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 책 읽고... 그 생활로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분노나 모멸감이나 무력감이 주된 동기였을 때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싸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분노나 무력감이 동기가 아니니까 목적의식도 오히려 흐릿해요. 고민은 지금이 더 깊어요. 매일같이 고민합니다. 매일같이 선택합니다. '내일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매일 물어요. '내가 정규직화 걸면서 싸우고 있는데, 정규직 돼서 쌍차 돌아가면 뭐할 건데?' 갈등이 많고 목적이 불분명해졌어요. 정말 무엇이 내 목적인지가 불분명해졌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돼요.

(-)



(-) 호민이랑 저랑 염진영이랑 "부당한 해고다. 징계해고가 부당하다."라고 주장하며 재판까지 했지만 대법까지 졌어요. 대법까지 다 졌기 때문에 공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어요. 공장에 돌아가는 것도 순서가 있어요. 무급자가 제일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에 희망퇴직자, 그다음이 해고자겠죠. 그다음에 우리(징계해고자)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대법에서까지 졌으니 그만둬야 하나? 이제는 진짜로, 정말로 돌아갈 가망이 아예 없을까?

(-)



윤충렬에게는 풀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있다. 그해 2009년, 그는 어떻게 해야 했던가?


우리 모친은 나한테 그러죠. "이 미친놈아, 그냥 처음에 가만히 있지 뭐가 잘났다고 나섰냐." '산 자였을 때 가만히 있지.' 그 말이죠. 집사람 보기 미안해서 하는 말이죠.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걸 그만두고, 이 해고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럼 나는 돌아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내가 그때 그렇게 후배들이랑 평택 공장으로 파업 참여하러 올라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너무 억울한데 그렇다고 법이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변호사들이 그랬어요. 법대로 하면 복귀된다고. 회사가 잘못한 게 밝혀지고 있는데 잘못한 놈이 해고시켜 놓고,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더 처절해지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그걸 알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미친놈인가 알고 싶어서.

그렇지만 대한문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2009년에는 다 우리보고 잘못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게 쌍차만의 문제가 아니더라. 우리 가족의 문제일 수 있겠다." 그런 말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거든요. 누가 해고돼도 상관 안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해고당하고 보니 억울해 죽겠는데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여겨 주는 것 보면서 '난 세상을 잘못 살았구나.' 하고 배웠어요. 지금은 미사 때문에 버티는 것 같아요. 수녀님이나 신부님이나 신도들, 굳이 매일 저렇게 할 필요 없잖아요. 이번 달에 비 얼마나 많이 왔어요? 폭우 맞고 기도하더라고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하더라고요. 자기 일도 아닌데 그러는 것 보고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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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H-2000 때 '야,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게 너무 좋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공장에 돌아가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또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려고 공장에 들어가야 하나? 나는 새로워졌는데, 나는 공장에서 일할 때 느꼈던 그런 부품화된 사람이 아닌데, 훨씬 자유롭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데 전에 일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장에 들어가야 하나?' 그러면서 재빨리 합리화시켰어요. '그래, 나처럼 꿈꿀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공장에 들어가서 보여 주자.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자.' 하고 말이에요. (-) 공장 안 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에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제가 그랬어요. "우린 월요병이 없다. 우리는 매일 휴일이다. 그런데 월요일이 너무 갖고 싶다." 너무나 원해요. 월요병 앓고 싶어요. 그런데도 그런 공장 가고 싶지 않아요. 5년이 지났는데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쌍차 문제를 생각보다 많이 알아줘서 고맙다. 그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헛짓이다.'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이렇게 자동차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헛짓이라고요. 대한문에 와서 서있는 것도 헛짓이라고요. 제선이, 한윤수가 와서 서있는 게 헛짓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건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정리 해고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 하는 걸 본 적이 없을 뿐이에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헛짓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불러요. 나는 정만이 형이, 상구 형이, 우리 형들이 공장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간절한 꿈이에요. 우리가 이명박 정권에 대항해서 혹은 어떤 정권에 대항해서 싸운 게 아니에요. 우리는 살려고 했어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일을 잊지 않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공장 복귀하면 5년간 내가 했던 이야기나 생각이나 행동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양 살고 싶지 않아요. 이 경험들이 내 남은 평생을 관통하면서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77일 파업이 5년 투쟁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면, 지금 보낸 5년이 내 삶을 이끌어 갈 원동력이었으면 좋겠어요.

 

(-)


그리고 아직도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가 왜 해고되었나?' 동민이는 우리가 해고된 데는 각자의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래도 알고 싶어요. '그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해고되었을까?' 제 삶은 엎질러진 물이에요. 물방울 하나하나를 주워 담고 있는 건지, 하나하나 담으면 담을 수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차가 없었으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저는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컸어요. (-)


(-)


저는 버텨서 투쟁하는 게 아니라 투쟁해서 버티는 거예요. 여길 관두면 저는 외로와서 못 견뎠을 거예요. 여기서는 나를 놔주지 않아요. 나를 놔주지 못하죠. 제가 죽을까 봐. 제가 죽을까 봐 여기 사람들이 저를 꽉 잡고 있죠. 지금도 가끔은 혼자 있으면 생각을 하죠. '죽을까?' 그게 머릿속에 있단 걸 아니까 제어를 하죠. 그리고 투쟁을 못 접는 게 뭐냐면 우리 동민이가 많이 싸운단 말이야. 동민이가 싸우고 있고 창근이가 싸우고 있고 우리 수석(김득중 수석부위원장)이, 상균이 형이, 기주 형이 싸우고 있고 기성이가 싸우고 있고 우리 동지들 다 싸우고 있고. 우리는 놀 수가 없어. 왜? 나보다 더 확실하게 싸우는 사람에게 미안해. 나도 싸워. 그래도 미안해.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래서 결국 같이 가는 거야. '씨발, 나는 그렇게 못해. 난 관둘래.' 이게 안 돼. 뭔가 연결되고 연결돼 있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연결돼 있어. 내가 제일 미안한 게 동민이야. 나는 그렇게 못해, 우리 동민이처럼. 나는 항상 미안해. (-) 이건 정신적인 거야. 이제는 자신도 없고. 자동차 조립하던 내가 다른 데 가서 뭘 할까 자신도 없고. 그리고 해고자니까. 해고자라는 정체성이 있으니까. 내 머릿속에는 그게 찍혀 있어. '나는 해고자다. 나는 버림받았다.' (-) 이건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물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너무나 정신적인 문제인 거야.

내 진짜 꿈은 5년을 그대로 되돌려서 5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 5년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싶어요. 스물네 명 죽은 사람 없이, 아무도 죽은 사람 없이, 아무도 우는 사람 없이, 라인에서 일하다 소주 한잔하고 퇴근하고... 그렇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해고 무효 소송 재판이 진행되는데 이겨야 하고 회계 조작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그게 꿈이에요.


(-)

연대해 주는 분들이 없었으면 무너졌을 것 같아요. 잠깐 쉬려고 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고 또 나오고, 스물두 번째 죽음까지는 거의 한 달 반 만에 희생자가 한 명씩 나와서 쉬려야 쉴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힘들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 집사람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어서 감정 기복이 심해졌어요. "잘 자."라고 말하고 전화 끊어도 다음 날 아침 기분 나쁠 때가 많습니다. 점심 때 밝았다가도 저녁에는 또 아닙니다. 남편은 없고 본인은 힘드니까. (-)

(-) 자영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날 받아 줄 곳은 없습니다. 해고자이자 전과범으로, 사회적으로 낙인도 찍혔습니다. 상상도 해봤어요. '지금 공장으로 돌아가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공장 바깥에서 투쟁 과정에서 힘들지만 사람과의 정 나눔도 많았고 많이 배웠는데, 공장으로 돌아가면 또 노동에만 매몰돼서 매일 아침에 눈 뜨고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돌아와 밥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삶을 한번 바꿔 볼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지만,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 주장과 선택이 올발랐다는 것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2009년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저는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해고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물네 명 죽어버린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들 해고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한 기업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 갔는데 이 땅에 살면서 방치되는 것이 맞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찾고 싶습니다.


(-)


우리 5천 명 중에 1천 명이 공장에 남아 싸웠습니다. 1천 명 중 20퍼센트는 비해고자였고 80퍼센트는 해고자였어요. 그전까지 노조 간부를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많지 않았어요. 정말 묵묵히 일만 하고 가정만 지키려고 왔다 갔다 했던, 그야말로 회사의 방침에 열심히 따랐던 친구들이 남았어요. 저는 그런 친구들 아니었으면 77일 싸움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1천 명 중에 이탈하는 사람들에도 순서가 있는데, 일반 조합원이 아니라 방귀 깨나 뀌었다던 활동가들이 더 빨리 빠져나가요. 해고의 충격이 큰 사람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요. 가장 억울했던 사람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요. '귀족 노조' 행세를 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덜 억울했을 겁니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은 싸워서 될 게 아니라는 정세 판단을 하고 먼저 백기를 드는 거죠. 그런 싸움의 현장에선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요. (-)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양심이 없으면 운동이 안 되더라고요. (-)

사실 평상시에는 도덕.염치.양심 이런 것들이 다 있어요. 그런 것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많이 무너져 버려요. 그런데 양심.염치.도덕이 있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노동자다웠어요.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의리, 동료 이런 것들을 먼저 팽개쳐 버리더라고요. 나한테는 바코드가 남아 있어요. 사람 하나하나마다 도덕.양심.의리.염치의 바코드가 남아 있어요. 누가 배신하고 도망갔는지가 또렷이 다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 그것이 나의 개인적 괴로움 중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걸 해결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로 모이려면 그걸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도 나약한 인간이니까, 그걸 희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노력하고 있어요. (-)

(-)

내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 마음은요, <주역>에서는 '단금지교'라고 해요. 마음이 모아지면 무쇠도 자릅니다. 하나씩 하나씩 모인 그런 소중한 마음들이 이 엄청나게 얽히고설킨 난제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느껴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 측은지심이 나오면서 본인들 스스로도 '우리가 왜 싸웠지?'하고 자기들에게 묻는 것이 느껴져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 귀에 막 들리는 것 같아요. '우리 미쳤어. 미쳤었나 봐. 우린 그런 사이가 아냐. 우린 형제야.' 이렇게 서로 답변하고, 그 이야기가 멀리서 들려오다가 지금은 가까이서 들려와요. 그리고 형제는 어떻게 하지? 그렇지, 싸웠더라도 금방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며 놀고, 부모 돌아가시면 함께 울고 하는 게 형제잖아요. 우리는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요. 우린 이렇게 회복되는 거예요. 인간성이 회복되는 거예요. 5년 만에요. 자본이 어떤 시혜를 베풀어서 노사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이런 큰마음들이 발효돼서 풀어 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


(-)


이제 우리가 말하지 않은 한 가지를 말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관한 것이다. 양형근은 1989년 입사했다. 


(-)

(-) 우리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 이렇게들 이야기했어요. "중국은 관용차만 1년에 8만 대다. 쌍차가 12만 대 만드는데 관용차만 8만 대면 얼마나 많이 팔 수 있겠느냐. 우리도 이제 넓은 시장에 차를 팔아야 한다." 거기에 넘어간 거죠.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먹튀'(먹고 튀기) 조짐이 보이더라고요. 오리온전기가 이미 겪은 일이에요. 우리 과정이랑 똑같아요. 그래서 상하이차가 기술 유출한다고 고발을 제가 했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상하이차는 우리를 인수하면서 독립 경영, 고용 보장 등 몇 가지를 약속했어요. 1년에 3천억 원씩 4년간 1조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특별 협약까지 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지키고... 인수 자금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웠어요. 상하이차는 우리를 5천9백억 원에 샀어요. 그것도 우리 은행들이 신디케이트론(둘 이상의 은행이 해외기업체에 공동으로 자금을 대출하는 일) 4천2백억 원을 대출해 줬어요. 그 대출금도 아마 쌍용차 돈으로 갚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어요. 경영은 자본가들의 성역이라는 거죠. 제가 매각 과정부터 헐값이라고 주장하고, 먹튀나 기술 유출 등을 고발하니까, 외국 사장이 이번엔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거죠. 하지만 사측에서 결국 취하했어요. 저희는 생존권 사수대를 결성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당연히 해고를 각오했고, 진실은 있다고 변함없이 믿었어요. (-) 파업 끝나고 나니 평조합원이었음에도 징역 7개월 살았어요. 가족들을 책임지기는커녕 파산 신청했고 퇴직금도 가압류 때문에 1원 한 푼 못 받고, 지금은 카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파업 끝나고 나와서 생계 투쟁은 한 적이 없고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와서 그때부터 회계 조작, 기획 부도 증거들을 모았어요. 쪼가리 쪼가리 모았어요. 이렇게 하기까지 참 힘들었어요.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내 말을 믿지 않고, 우린 현장 출신이라 거칠어서 전문가들 손을 거쳐야 하니까. 저는 사무직인 사람 하나랑 계속 이 문제를 파왔어요.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쌍차 자산이에요. 정리 해고 당시 안진 회계 법인이 쌍차 자산을 어떻게 평가했나? 왜 갑자기 1년 사이에 5,177억 원이나 줄었나? 왜 부채 비율이 160퍼센트대에서 560퍼센트대로 크게 증가했나? 정리해고 숫자가 2,646명이란 근거는 어디서 나왔나? 저는 이 과정에서 회계 조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거예요.

저는 해고자 복직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우리만 해고당했나요? 다른 사업장에도 수많은 해고자가 있어요. 다른 사업장에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너네만 해고되었냐? 왜 너네만 난리야?" 하지만 쌍차 문제의 두 핵심은 진실과 죽음이에요. 우리가 정리 해고의 문제의 중심에 선 것은 우리가 많이 해고돼서가 아니라 진실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 말은 쌍차 복직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가려내는 것, 그것이 복직이라는 거예요. 진실만 밝히면 우리는 원상회복되는 거예요. 진실이 곧 복직이에요. 우리가 인간적으로 안돼서, 불쌍해서 복직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한 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때문이에요. '뭐가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지? 왜 경영상의 문제가 생겼지?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책임 전가 안 하려면, 특히 노동자만 책임지고 경영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게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 그냥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이것이 스물넷이 왜 죽어 가야 했는지를 밝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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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낙인찍히고 왜 이런 대우를 받느냐?' 사회에서 받아 주지 않고 억울하니까 죽는 거예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 해고가 되었다 치더라도 죽지 않고 살 수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잖아요. 

희망퇴직 한 사람이 진짜 희망을 가져야 해요. 지금은 '절망 퇴직'이잖아요. (-) 한때 국정조사.청문회 할 때는 조금식 희망을 갖기도 했어요. '우리는 억울하게 쫓겨난 거고 곧 진실이 밝혀지겠구나. 그전에 흑자기업이었는데 기획 부도로 법정 관리된 거구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 회계 조작 때문이었구나. 우리는 청춘을 바쳐 일한 곳에서 억울하게 쫓겨났구나.' 청문회 때 이미 상하이차의 먹튀가 밝혀진 거잖아요. 청문회 때 신디케이트론 이야기했잖아요. 산업은행 같은 국책 은행이 개입된 것이니, 산업은행은 과연 회계 조작을 몰랐는지를 따져 봐야죠. 국가 기관들이 다 개입된 것이잖아요.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씌운 것이잖아요. 생산성 지수 가지고요. '현대차는 서른 대 만드는데 쌍용차는 열 대만 만드느냐?'는 식으로요.

(-) 이 구조 조정 자체가 잘못되었고, 법정관리도 허구라면? 저도 정리 해고자이지만, 정리 해고자만 살자는 게 아니에요. 복직도 돼야 하지만, 이런 진실이 밝혀져야 들어가서도 부당한 대우를 안 받아요. "회사가 받아 준 거야. 너네 잘해." 그런 말 안 들어요.



___

<안녕 히어로>

http://dmzdocs.com/archives/program/good-bye-my-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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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남편 1
타가메 겐고로 지음, 김봄 옮김 / 길찾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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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함 <<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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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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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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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여는 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59
김형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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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초범이다.

이 세상을 살다 떠난 사람은

더는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런데도 믿는다는 사람들은

주심 다시 태어나라고

태어나 우리 대신

한 번 더 죄를 지어달라고

밤낮없이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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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16-09-1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지 시집 본문 인쇄상태(글자 핀트 나감, 그림자 생김 등..) 왜 이런지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