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 오은영의 현실밀착 육아회화
오은영 지음, 차상미 그림 / 김영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 말씀드리지요? 마음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생각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결정이에요. 욕구를 잘 조절해서 현실에 맞게 상식적으로 마지막 행동을 했다면 그것으로 된 거예요. (-)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한 것 같아요.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지 못해서 속상한 아이의 (-)마음은 그냥 두어야 합니다. 마음은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해줘서도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주인뿐이에요.

마음의 해결이란 불편한 감정이 소화되어 정서의 안정을 되찾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려는 마음의 해결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끝’을 보는 겁니다. 상대가 징징거리는 행동을 멈추고, 상대가 쏟아내는 속상함과 아쉬움의 말을 ‘그만’ 하는 거예요. (-)

왜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해결해주려고 할까요? 상대의 불편한 마음 이야기를 들으면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에요. 그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이 계속 불편해져서 견딜 수가 없으니, 상대가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하고 싶은 거예요.(-)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상대의 정서를 억압하는 거예요.

상대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그냥 좀 두세요. 흘러가는 마음을 가만히 보세요. (-) ‘아,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아, 아이가 지금 기분이 좀 나쁘구나. 기다려주어야겠구나’라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말만 하세요. 불필요한 말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받다보면 서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게 돼요. (-) 그러려면 상황의 핵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씻기 싫어도 씻어야 하는 것 가르치기!’ 이 상황의 핵심입니다.

 

 

(-)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좋은 의도여도 아이가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요. 문제 상황에서는 늘 간결하게 말하면서 아이가 억울하지 않게 정당성과 타당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대개 아이들은 문제 상황에 처하면

본인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어도

무척 당황해요.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어린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제법 큰 아이도 그렇습니다.

아이는 그 순간 부모가 자신을 안심시켜주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부모가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그때 그랬어요.

 

 

어떤 장소나 상황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은 다른 사람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그 원칙은 나의 기분 상태, 나의 선호, 나의 선택과 관계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쳐다보든 쳐다보지 않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것을 가르칠 때는 “원래 원칙이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 있어.”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아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구나’ 하고 배워 ‘자신’이 배운 것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이 결정해서, ‘자신’이 행해야 해요. 즉, 배우고 행하는 주체가 ‘아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겠어?”라고 말하면 행동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있는 겁니다. 도덕성 발달단계에서도 가장 하위단계이지요.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언제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아이들은 자기 나이에 맞게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게도 했다가, 이 문제도 일으켰다가 저 문제도 일으켰다가 합니다. 그게 자기 나이답게 인생을 사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인생을 살면서 요리조리 부모를 건드려요.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마음이 건드려지는 것은 사실 나의 해결되지 않은 숙제 때문이에요. 내 숙제입니다.

아이의 문제 행동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면 그 문제는 ‘내 숙제’입니다. 내 숙제가 버겁다고 아이를 탓하진 마세요.

 

 

말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이해할 때, 아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나와요.

 

 

아무리 궁금한 마음이 앞서도 부모가 걱정하는 그것을 콕 집어 묻지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감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말하기도 불편해합니다. 아이도 그래요.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마음이 있다는 것, 나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 달라는 겁니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은 나의 것임을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그것이 정말 사랑하는 당신의 것과 달라도

당신에게만큼은 나 자체로 존중받고 싶은 겁니다.

 

 

아이가 긍정적인 감정을 말해요. 누구나 받아주기 쉽습니다.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말해요. 듣고 있기가 힘듭니다. 마음이 불편해지거든요. (-) 감정을 말했는데 야단을 맞으면 다음부터는 아이가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을 수 있어요.

(-)

우리가 아이와 대화할 때 (-) 사랑하는 아이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으면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해요. 빨리 깨닫게 해주려고 애씁니다. 애쓰다보면 압박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 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잘못된 생각이야”라고 말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쌀쌀한 2021년 3월 6일 오후 네시 오십분 서울광장에 있다가 시청역 2호선 건대 방향 전철에 타서 36페이지를 읽으니 피식 웃겨서 두근거리던 심장도 참을 만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살의 이해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지음, 박민철 옮김 / 하나의학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 밤, 남은 게살을 마지막 한 점까지 싹싹 해치운 나는 위스키 잔의 얼음을 초조하게 계속 흔들어대고 있었다. 잭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딘지 불안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굳은 약속을 했다. 만약 한쪽이 또다시 자살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때는 케이프 코드에 있는 잭의 별장에서 만나서, 자살 충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일주일을 보내면서 자살을 단념시키도록 상대편을 설득하자는 맹세였다. 자살 충동은 리튬 복용을 중단한 탓일 테니(-) 왜 다시 리튬을 복용해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이유를 들려주자고 했다. (-)

(-)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껏 우울증이 재발할 때마다 엄습했던 자살 충동과 싸우면서, 수화기를 들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

하지만 디저트로 수플레가 나왔을 즈음에는 잭도 나도 그 계획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자기기만은 조증 상태에 있는 조울병 환자 특유의 설득력 넘치는 자신감과 증폭된 에너지와 열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잭은 나에게, 나는 잭에게 전화를 걸 것이고, 우리는 힘을 합쳐서 체스판에서 '흑기사'를 물리치고 내쫓아버릴 것이라고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 잭은 벌써 몇 해 전에 결혼을 했고, 나는 워싱턴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잭이 머리에 총을 쐈어요, 그의 가족이 말해주었다. 그가 자살했다고.


(-) 자살은 20년도 넘은 내 직업상의 관심 분야였으며,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괴로웠던 나의 경험을 통해 자살이 얼마나 인간을 무력화하고, 지배하고, 속이고, 황폐화시키며, 파괴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런 자살의 위력에 이제 거의 존경심마저 품을 지경이다. (-)



세인트 로렌스 섬의 유트 에스키모들은 누군가가 자살 의사를 세 번 표명하면 친척들이 그의 자살을 도와줘야 했다.



자살의도 척도(자살기도자용)


고립

0. 누군가 옆에 있음

1. 가까이에 또는 보이거나, 말을 걸 수 있는 범위 안에 사람이 있음

2. 가까이에 또는 보이거나, 말을 걸 수 있는 범위 안에 아무도 없음.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려 한 6세 소녀는 정신병원에 와서 이렇게 설명했다. ‘배가 너무 고파 참을 수가 없어서 사람을 물어뜯어 먹으려고 해요. 전 나쁜 아이니까 죽어야 해요.’



인간의 이해력에는 한계가 있다. 망자가 남긴 마지막 신호나 메시지, 이를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끊어져 버린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다. 자살자의 정신세계를 재구성해보고 싶다고 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간접적이고 불충분한 일들뿐이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자살할 좋은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점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15세였던 한 소년은 자살하기 2년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오래전... 그는 시 한 편을 썼다

그리고 '촙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가 기르던 개의 이름이었고, 그리고

그 개에 대한 이야기만 쓰여 있었기에...


그리고 선생님은 그에게 'A'를 주시고, 

황금별도 주셨다.

어머니는 이를 주방문에 붙여놓고

이모들에게 읽어주었다.


오래전... 그는 또 시 한 편을 썼다.

그리고 '물음표가 붙은 천진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의 슬픔의 이름이었고, 그리고

슬픔에 대한 이야기만 쓰여 있었기에...

선생님은 그에게 'A'를 주시고

이상한 얼굴로 그를 한참을 바라보셨다.

어머니는 이 시를 주방문에 붙여놓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그 시를 절대로 보지 못하게 했기에...


오래전, 새벽 3시에... 그는 또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시에 제목은 붙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에게 'A'를 주고

축축이 젖은 양 손목을 칼로 그었다.

그리고 그 시를 욕실 문에 붙여놓았다.

주방까지는 갈 기력이 없었기에...



아무리 상실감이나 낙심이 크고, 아무리 수치심이나 소외감이 깊다 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만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자살의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 죽음을 결심할지 여부는 보통 사건의 해석으로 좌우되며, 대부분의 사람은 정신적으로만 건강하다면,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 일을 자살의 정당한 이유가 될 정도로 파멸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이럴수가 묻지도따지지도않고 바로사야한다는 솔뫼작가님의 책이나왓네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큐의 기술 - 다큐멘터리스트는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설득하는가
김옥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롤로그


스무 겹의 매트리스 아래 콩 한 알의 질문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폭풍우 치는 밤, 한 여인이 왕궁의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그녀는 자신이 공주라고 했지만 왕비는 그 말이 의심쩍어, 매트리스를 스무 겹 쌓고 그 위에 다시 오리털 이불을 스무 겹 쌓은 특별한 침상 위에서 그녀가 자도록 했다. 아침에 일어난 그녀는 무언가가 등에 배겨 한잠도 못 잤다고 불평을 했다. 그제야 왕비는 그녀가 진짜 공주임을 인정한다. 전날 밤 왕비는 그 침상의 맨 아래쪽에 완두콩 한 알을 넣고 그 위에 매트리스와 오리털 이불을 쌓아두었던 것이다. 즉 스무 겹의 오리털 이불과 스무 겹의 매트리스 아래 있는 그 완두콩의 존재를 몸으로 느낀 ‘예민함’이 동화에서는 공주의 자격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격을 ‘공주’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스트’로 바꾸어 부르고 싶다. 다큐멘터리스트는 천성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불편함에 예민한 인간들이며, 인간들이어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통상적으로 무시되어온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다. 그것은 우리의 타성적인 사고에 대해, 관습화된 인식에 대해, 표피적으로만 소비되는 우리 사회의 온갖 현상에 대해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생각하면 의심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면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다큐멘터리스트는 좋은 회의주의자’인 것이며,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가 항상 질문이며 질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그 질문을 ‘독백’이 아니라 ‘대화’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질문을 ‘우리’의 질문으로 치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다큐멘터리는 사람과 사물과 행위와 풍경 같은 보이는 것들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정과 생각과 의미와 가치까지 영상에 담는 일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배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 영상의 흐름에서 어떤 서사와 담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나아가 그 서사와 담론에 공감하고 동의하게 하는 일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략적 사고와 기술적 고려가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연출자들은 ‘전략적’이라는 말에 흔히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낸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며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장르인데, 무슨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이 대상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작품에 투영되는 것은 아니다. 보는 이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져야만 느껴지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만드는 이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의자’를 만들려면 자신이 만들려는 것이 ‘의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 의도해야 하며, 자신이 의도하는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재료들을 확보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공급해야 하며, 그 재료들을 적소에 배치해 못을 박든 접착제로 붙이든 순차적으로 형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의자를 만들어내려면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그 의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고, 기여하도록 하는 그 사고 과정 자체가 ‘전략적 사고’인 것이다.


 


(-) 다큐멘터리에 입문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것은 ‘사고하는 법’이다. (-)


내가 만들려고 하는 다큐멘터리가 무엇인지, 대상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그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과연 그 말이 발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말을 하기 위해 어떤 에피소드와 어떤 이미지가 동원되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한 세계 속에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는 것이다. (-)


(-) 이 책은 (-)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며, 다큐멘터리의 이야기 구조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대한 총체적 이해 없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획은 가능하지 않으며,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이야기 경로’를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무 겹의 요 아래의 콩알

―동화 4



발바닥이 아프다. 왕의 집에선 어디서나

여문 콩알이 흩어져 있어,

잘자려무나 깊은 밤

왕의 소유인 두꺼운 양털구름 스무 장쯤 빌려 깔고 

모든 땅의 돌기들을 무시할 것

왕의 잠으로써

눈떠 있는 콩알들을 지워버리고

내 온몸의 눈 평화롭게 꼭 감을 것


바깥엔 길고 어두운 비가 온다.

새파란 콩알들은 스무 층 아래 있다.


꿈도 없는 잠 속에서

위험하게 흔들리는 구름의 성(城)

콩알들은 스무 층 아래!

콩알들은 스무 층 아래!

스무 충 아래! 새파란 현실은, 새파란 대낮은.


그러나 마디마디 배기고 아파서

소리없이 입을 딱딱 벌리는 어둠

돌아누워도,

떠나가도 떠나가도 모든 흐느끼는 바다 위를 배는 갈 것이었다.

평화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었다.

한 겹의 요 혹은 스무 겹의 요의 배반.

콩알들은 싹이 트고 무섭게 자라기 시작한다.

스무 겹의 요를 뚫고

누워 있는 내 가슴을 뚫고 돛대 끝까지

넝쿨이 감겨 오르고


잘 자려무나 깊은 밤

음험한 왕은 껄껄 웃고 있다.



김옥영 시집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 중에서






영상뿐 아니라 무엇이든 질문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실마리가 되어줄 책이 아닌가. 무작정 쓰기만 했지 이것을 어떤 형태로 가공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을 때 웹진에 연재되던 김옥영님의 글은 머리를 청량하게 씻어주고 가벼운 용기를 손에 들려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원하지 않아도 무시로 반복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