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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책 ㅣ 문학동네 시인선 207
남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개와 어린이의 영혼은 공터만 보면 뛰쳐나가도록 설계되었어/넓으면 넓을수록 비어 있으면 비어 있을수록/망치기 좋은 것들이 가득한 세계(「모조」) 동생이 다치고 알았다/어디에나 계단이 있다는 것//잠든 거인의 등을 밀듯/복도 끝 철문을 힘주어 밀면/거기 누구든 구부리고 앉아/숨을 고르고 있다는 것//간이침대에 엎드린 채/언니들은 보호자로서 오늘 일을 받아 쓴다(「고양이 보호자」) 단 한 대도 때린 적 없이 키웠다는 말//그러고 보면 그 말은 힝 그럴싸해/누나들이 걷어차일 때 막내는 히히힝 달아났으니까//혼난 적은 있어도 맞은 적이 없는/비겁한 말,(「가정과 학습」) 최후의 최후를 알리는 통지서처럼/식탁엔 저녁이 쌓이고 있다/적을 만한 기쁨이 남았는지/살필 뿐인 나, 아픈 개/(-)/마음은 비 한가운데/영원한 폭우 속에서/망가진 우산뿐인 것을/파래진 입술뿐인 것을 당신께,/어떤 마음은 붙박인 것들을/사랑하는구나 생각한다(「캄파눌라」) 늦었네 들어가자/그런 말이 당신을 덜 다치게 하고/어딘지 모를 집으로 되돌아가게 한다//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좋은 그림이란 뭘까//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거지//(-)/너희 집 너희 가정 너희 가족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과/구두를 벗고 손을 씻고 아이를 안아올린 너의 심정은 좀 다른 국면일 것이다(「잊었던 용기」) 깨지는 빗방울/깨지기 위해 낙하하는 빗방울//(-)/우리는 서로에게 답하기 위해/저기 저 빗방울을 좀더 바라보자고/굳게 약속한다(「도마뱀」) 일상의 머리채를 더듬더듬 건져올리기까지/사랑도 되고 폭력도 된다는 머리통을 깨부술 때까지(「테라스」)
_남지은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