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문학동네 시인선 209
박연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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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타르트를 먹다
그 속에서 잠든 아버지를 꺼냈다

냅킨에 올려둔 아버지가 아가미를 뻐끔대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반죽 속 깊이, 그의 입을 다시 묻었다

어둠 속에서 사라진 입이 들썩였다

“당신은 입이 없어요.”
알려주자 고요해졌다

그때 냅킨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아버지의 말이 태어났다

“미안, 나 먼저 죽을게.”

또?

손바닥을 내리쳐 식탁 위로 지나다니는 말을 죽였다
두더지 게임과 비슷했다

냅킨으로 입을 닦고 식사를 마쳤다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데
허리 아래로 후드득

진눈깨비가 내렸다

_박연준_진눈깨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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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광 창비시선 492
채길우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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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채길우



야생 완두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

열매가 다 익은 후에도

자발적으로 깍지가 열려

씨앗을 퍼뜨리는 능력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으므로

식용작물이 되었다.


꼬투리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

비틀린 멱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때까지

입 꽉 다물어 속을 비치지

않았기에 사랑받았고

함부로 옷이 벗겨져

다섯알 중 서너개를 잃고도

하나쯤은 건사할 수 있다는 산술로

계약을 따냈다.


완두는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 초록의 순종으로서

동일한 껍질 속 똑같이 생긴 얼굴로

가지런히 줄 서 기다리며

선별과 배제는 우연이거나

더 높은 곳의 뜻임을

순순하게 다짐하는 겸손한 위치에서조차

간택되기 위해 무거워진 목을 늘어뜨린

비산도 탈출도 없이 동그랗게 어여쁜 두상들




채길우, 『측광』,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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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이연숙 지음 / 난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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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이지 두툼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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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시인선 207
남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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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어린이의 영혼은 공터만 보면 뛰쳐나가도록 설계되었어/넓으면 넓을수록 비어 있으면 비어 있을수록/망치기 좋은 것들이 가득한 세계(「모조」) 동생이 다치고 알았다/어디에나 계단이 있다는 것//잠든 거인의 등을 밀듯/복도 끝 철문을 힘주어 밀면/거기 누구든 구부리고 앉아/숨을 고르고 있다는 것//간이침대에 엎드린 채/언니들은 보호자로서 오늘 일을 받아 쓴다(「고양이 보호자」) 단 한 대도 때린 적 없이 키웠다는 말//그러고 보면 그 말은 힝 그럴싸해/누나들이 걷어차일 때 막내는 히히힝 달아났으니까//혼난 적은 있어도 맞은 적이 없는/비겁한 말,(「가정과 학습」) 최후의 최후를 알리는 통지서처럼/식탁엔 저녁이 쌓이고 있다/적을 만한 기쁨이 남았는지/살필 뿐인 나, 아픈 개/(-)/마음은 비 한가운데/영원한 폭우 속에서/망가진 우산뿐인 것을/파래진 입술뿐인 것을 당신께,/어떤 마음은 붙박인 것들을/사랑하는구나 생각한다(「캄파눌라」) 늦었네 들어가자/그런 말이 당신을 덜 다치게 하고/어딘지 모를 집으로 되돌아가게 한다//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좋은 그림이란 뭘까//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거지//(-)/너희 집 너희 가정 너희 가족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과/구두를 벗고 손을 씻고 아이를 안아올린 너의 심정은 좀 다른 국면일 것이다(「잊었던 용기」) 깨지는 빗방울/깨지기 위해 낙하하는 빗방울//(-)/우리는 서로에게 답하기 위해/저기 저 빗방울을 좀더 바라보자고/굳게 약속한다(「도마뱀」) 일상의 머리채를 더듬더듬 건져올리기까지/사랑도 되고 폭력도 된다는 머리통을 깨부술 때까지(「테라스」) 


_남지은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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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납작 엎드릴게요
헤이송 지음, 일미 그림 / 고라니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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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네책방 매대에서 만난 책. 제목을 보고 안 살 수가 없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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