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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우주의 건축가와 함께 나란히 걷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7년 7월
평점 :
그가 얼마나 비굴하게 굽실거리는지, 온종일 얼마나 막연한 불안에 떨고 있는지를 보라. 그는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신성하지도 않다.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일 뿐이다. 세간의 평판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아니 결정한다기보다 암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코트나 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마지막 옷을 벗어서 허수아비한테 입히고 그 옆에 알몸으로 서 있어보라. 그러면 허수아비한테 인사하지 당신에게 인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 사람보다 새 옷을 더 필요로 하는 사업은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새 사람이 없다면 새 옷이 어떻게 몸에 맞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뭔가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걸친 채 해보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일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일 자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사업을 벌이고 항해한 결과 자기가 헌 옷을 입은 새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헌 옷을 계속 입는 것은 헌 병에 새 술을 담아두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느껴질 때까지는 헌 옷이 아무리 누더기가 되고 더러워져도 새 옷을 마련하면 안 된다.
날짐승이 털갈이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허물을 벗을 때는 삶이 위기를 맞았을 때다. 되강오리라는 물새는 외딴 연못에 틀어박혀 털갈이 철을 보낸다. 몸속에서 일어난 어떤 작용과 팽창의 결과로 뱀도 허물을 벗고 애벌레도 고치를 벗는다. 옷은 우리 몸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표피이며 속세의 괴로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벗어 던지지 않으면 가짜 깃발을 달고 항해하다가 들키게 되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은 물론 인류에게도 버림을 받아 추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옷을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성스럽게 해주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삶이다.
어느 날 도끼자루가 빠지는 바람에 호두나무의 생가지를 잘라 돌로 때려서 쐐기를 박아넣었다. 자루가 다시는 빠지지 않도록 쐐기를 물에 불리려고 도끼를 호수의 얼음 구멍에 담근 순간, 줄무늬 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 뱀은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적어도 15분 넘게 호수 바닥에 가만히 있었지만 불편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동면 상태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현재의 비참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다운 봄기운이 자신을 깨우는 것을 느끼면 사람들은 반드시 더 높고 영적인 생활을 향해 일어설 것이다. 나는 전에 서리가 내린 아침 길을 걷다가 여러 번 뱀을 만났는데, 뱀들은 추위에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햇빛이 녹여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하룻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호수의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길 잃은 기러기 한 마리가 호수 위를 이리저리 헤매면서 길을 잃은 듯이 또는 안개의 정령이라도 되는 듯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나는 도끼 한 자루만 가지고 나무를 베고 깎아서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었다. 사람들에게 전할 만한 생각이나 학자다운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은 채 그저 혼자서 노래만 흥얼거렸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안다고 말하지.
하지만 보라! 모든 게 날개를 펴고 날아가버렸다.
예술도, 과학도,
무수한 발명품도.
부는 바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아는 전부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