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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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애는 골형성부전증이에요.” (-) 골형성부전증은 쉽게 말해서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지는 장애’다. 모든 장애가 그렇듯 장애 유형은 같아도 장애 정도에 따라서 개인마다 장애로 인한 경험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골형성부전증 환자 중에서도 장애 정도가 심한 편이다.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백 번이 훨씬 넘게 골절을 경험했다. 사실 백 번은 그냥 ‘많다’라는 표현이지 내가 얼마나 자주 뼈가 부러졌는지 수치로 헤아리기 어렵다. (-)


(-)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나의 장애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장애가 왜 ‘낯설고 놀라운 것’이 되는지, 이 ‘장애에 대한 낯설음’이 문제가 될 때는 언제인지, ‘낯선 장애’를 가진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장애로 경험하는 일상’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장애’는 어린 시절 나에게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장애물’로 ‘미래 없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을 끊임없이 나누며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정상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고 이러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장애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지금, 장애는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의 경험과 관계들, 더불어 장애와 함께 동반되는 통증은 매 순간 나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애를 떼놓고 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애와 나의 몸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장애와 ‘좌충우돌 적응 중’에 있으며, 이 적응에는 마침표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다. 나 또한 ‘장애’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나의 삶이 그냥 ‘장애인의 삶’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통증을 동반한 장애를 가진 ‘여성’인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그 의미를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이 글은 그러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첫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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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제는 이전 같으면 2~3개월이면 붙었을 뼈가 6개월이 넘도록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결국 골절된 상태에서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 휠체어에서 내려오다가 왼쪽 다리가 또 골절되었고, 수술을 앞두고 다른 병원의 새로운 담당 의사를 만났다. 그런데 그 의사는 내가 척추측만증이 심해 폐활량이 매우 줄어서 전신마취 후에도 회복이 안 될 수 있고, 마취에서 깨어난다 해도 회복이 쉽지 않아 뼈가 붙을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 ‘골절된 상태’로 지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몸에 대한 정상성의 기준이 또 하나 깨져나가는 희열을 느꼈다.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살아가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면 ‘골절된 상태로 지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의사의 메시지는 좀 더 쿨하게 나를 나의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날 밤 나는 바로 짐을 싸들고 퇴원했다.

골절이 일상인 나에게 골절 후 뼈가 더 이상 붙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현재 하고 있는 일상생활이나 활동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과 또 다르게 골절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막막함이 생겼다. 골절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골절로 인해 이전의 일상생활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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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과 통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골절이 일상인 나는 운명처럼 평생을 통증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통증으로 단련된 나는 정말 웬만한 통증은 잘 참는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 그대로 아픈 티를 좀 덜 내고 ‘잘 참을 수 있다’는 것이지, 통증에 무뎌지거나 덜 아프다는 뜻은 아니다. 아픈 건 그냥 아픈 것이고, 이는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

(-)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게 지금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건강함’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은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사회생활을 포함한 일상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리고 이는 곧 일상을 함께했던 관계가 멀어지거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단순히 통증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사실보다 그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일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


(-) 골형성부전증이 심한 경우 성인이 되면 청각장애나 호흡기에 질환이 오기 쉬운데 나는 둘 다 경험하고 있다. 30대 초반, 휠체어에서 떨어져 귓속 뼈가 골절이 되면서 오른쪽 귀로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왼쪽 귀도 이전보다 잘 안 들리게 되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청각장애를 경험하게 되면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일상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입으로 말하는 구화 중심의 사회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그래도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고 구화로도 대화가 가능하지만, 구화로 대화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의 경우 문자나 수어(수화)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신체장애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일상에서의 소외나 배제의 문제들은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청각장애로 인해 겪는 일상의 문제들을 소통하고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골절되었다고 할 때 “에구 어쩌다가…… 조심하지”라는 식의 얘기다. 걱정되는 마음에,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지 몰라서 건네는 말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은 결국 내가 부주의해서 골절됐다는 말이기 때문에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뿐더러 내 장애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조차 하게 된다.

골절로 인한 힘듦은 누구보다도 본인인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늘 골절되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조심한다. 그럼에도 휴지를 던지다가, 기침을 하다가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던 행동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골절로 이어지는 것을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진공 상태에서 정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골절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목 디스크와 척추측만증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았을 때에도 추후 와상장애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무조건 ‘누워만’ 있으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은 나보다 경증임에도 골절의 위험성과 몸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분의 선택인 거고, 나는 그냥 나의 골절이 나의 일상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하며 살고 싶다.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비정상적인 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환상은 의학과 자본이 만나 실제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넘쳐나는 의학 정보와 건강을 매개로 하는 수많은 상품들은 건강한 몸, 즉 정상적인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물론 매일 통증에 시달리는 나도 내가 좀 덜 아팠으면 좋겠고, 장애도 지금보다 더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덜 아프기 위해 그리고 장애가 더 심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은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장애나 통증보다 ‘몸에 대해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나의 장애는 늘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장애가 없고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된 몸’을 가진 내가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이다.

(-)

그래, 누군들 내일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난다면 정상성을 중심으로 한 몸에 대한 규정에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장애가 있든 없든, 아픈 몸이든 아프지 않은 몸이든,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인정되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몸들의 진정한 해방은 안정된(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정한 상태가 불안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몸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예측할 수 없기에 스릴 있고, 예상치 못한 배움의 연속일 것이다. 나는 변화하는 나의 몸을 마치 애도하듯이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의 장애는 나이 듦과 더불어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가속화될 것이다. 나는 막연히 두려워만 하기보다 누구나 겪는 삶의 과정으로 지혜롭게, 장애와 더불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


_조미경_진화하는 장애,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_어쩌면 이상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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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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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언니가 두발로 걷는 게 그게 더 이상했어요. 왜 나는 무릎으로 걷는데 쟤는 두발로 걸을까? 거의 초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이상한몸북콘서트 중 지원님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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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96호 - 2018.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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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은 칼이다. 모든 것을 찌를 필요는 없지만 날이 서, 읽는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꼼짝 못하게 시선을 붙잡는 칼이면 좋다. (-)

좋은 시인의 문장은 ‘선언’과 닮아 있다. 그건 자기만의 선언, 자기 세계의 선언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이 선언자-예언자를 찾았다. 그들은 종종 눈에 띄었지만, 많은 이들이 아무데서나 퍼져버리고 주절대거나 중언부언했다. 시인은 정치나 도덕의 측면에서 늘 옳은 선언을 하는 자는 아니다. 그보다 자기 목소리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 (-)

정확한 문장 구사 능력, 그건 시인에게 심장이나 폐처럼 기본으로 지니고 태어나야 할 것이다. (-)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 물고기는 비늘이 있는지 없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냥 있는 것이다. (-)

(-) 죽기 살기로 시를 붙잡는 태도는(아마도 살기 위해서 그래야 했을 테지만) 좋지만, (-) 불에 달궜으면, 그다음엔 얼음으로 식힐 것! 그게 유일한 당부다.


_박연준



(-) 소설을 쓴다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따져보면 호랑이도 버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 이야기, 소설이 아닌가. 그러면 조금 더 거침없고 활달하게 뛰어도 괜찮지 않은가.


_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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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가족 - 치유를 위한 12단계
리차드 코헨 지음, 정지훈 옮김 / 하늘기획(호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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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붙들고 읽을 사람들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성소수자 관련 서적을 보고 싶다면 <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 <커밍아웃 스토리>를 검색해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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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입장들 2
정영문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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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입장들 시리즈는 2019년 10월에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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