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말들 - 후지이 다케시 칼럼집
후지이 다케시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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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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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비사이드 콜렉티브 외 지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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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서 성소수자 동아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스무 살 재수생이던 시절에 재수학원 근처의 공원과 이반 DVD방, 이반 휴게텔 등이 여럿 있었다. 나는 공원에서 할아버지들과 크루징을 하고 차비 명목으로 5천원 남짓한 돈을 받아서, 뭘 사먹거나 그 돈으로 다시 이반 DVD방이나 이반 휴게텔에 가서 섹스를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에 내가 살던 도시에는 내가 접근 가능한, 성소수자를 위한 단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부모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통제당하는, 내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주거 공간이 양육자에게 예속된, 인터넷 등으로 사람들을 만나기에는 전화번호 등을 알리거나 만났을 때 술값이나 밥값으로 쓸 돈이 부담스러운, 애초에 가족들과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그런 기록이 남는 것조차 두려운 그런 상황들이 있었다. 나는 ‘이쪽’인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공원 화장실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방문하거나, 이반 DVD방, 이반 휴게텔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섹스를 하고, 대화하고, 소액의 돈을 받거나, 밥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이쪽’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오고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에 가입한 후 ‘이쪽’ 생활을 했던 경험을 말할 수는 없었다. 단적으로 해당 동아리에 들어가고 몇 달 뒤에 동아리에서 잡지를 낼 때, 잡지의 주된 내용은 ‘우리도 다른 학생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데이트와 연애도 잘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동아리 내부에는 문란함에 대한 낙인 혹은 이중적인 잣대가 존재했다. 끼를 잘 떠는 사람이 끼를 떠는 방식의 일환으로 본인의 문란함을 어느 정도 전시하는 건 재밌게 용인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반 휴게텔에 출입한다든가, 정말로 파트너가 자주 바뀌고 원나잇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시선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이반 휴게텔이나 이반 DVD방에 가서 원나잇을 하고, SM플레이를 즐기고, 나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아저씨들과 섹스하고 식사를 얻어먹으면서, 동아리에 가거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그런 것들과 거리가 먼 것처럼 굴거나 굉장히 축소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순진한 척을 해야 했다. 문란함에 대한 경멸을 어느 정도 내재화해야 그 공간에 버티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와 이반 휴게텔 모두가 중요했고, 양쪽 모두 나의 정체성을 크게 구성하고 있는 공간들이었다. 갈수록 이중생활의 격차는 심해졌다.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나의 다양한 특성을 드러내고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반 휴게텔에서의 내 경험들을 최대한 감춰야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크루징이 이루어지는 화장실이나 이반 DVD방, 이반 휴게텔 등을 계속 출입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공간들에 가지 않는 사람인 양 선을 긋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내 정체성을 밝힌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성소수자 동아리를 기반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나를 더 많이 드러내는 만큼 감춰야 하는 것들도 늘어났다. 크루징이 이루어지는 공간에는 “저 사람들이 왜 굳이 저렇게 나서서 시끄럽게 굴고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드느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 정체성을 밝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에는 “저 사람들은 왜 굳이 저런 데서 더럽고 위험하게 섹스하는지 모르겠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각의 공간을 퀴어라는 이유로 단순히 동일하거나 유사한 그룹으로 간주하기엔 각각의 공간과 공간이 작동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또 그 차이는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

(-) 2009년부터 2년가량 나는 스스로를 mtf 트랜스젠더로 소개했고, 주변의 일부 게이들과 여러 갈등을 빚었다.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만난 많은 게이들은 끊임없이 내가 mtf 트랜스젠더가 맞는지 검열하려고 들었다. “가방을 더럽게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의심스럽다”든가 하는 말로 내가 나를 설명하는 방식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선배라고 부르면 멀게 느껴지니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든가 하는 말로 내가 나를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와 같은 태도가 적절한 것인가와는 별개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mtf 트랜스젠더가 맞는지 고민하게 됐다. 나는 여성인가? 나는 나를 여성으로 감각하는가? 여성으로 감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은 무엇인가? 어느 질문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찾아 읽었던 다른 mtf들의 서사는 나와 그렇게 일치하지 않았다. (-)


(-)


한 대형 인터넷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TG/CD게시판에 올린 공지를 통해 ‘일부 성매매를 일삼는 TG/CD분들 때문에 전체가 싸잡혀서 비난 받고’ 있다고 훈계하고, ‘성매매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발각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게시판/대화방에서 노골적으로 성매매/매수’를 하는 이용자에 대해 ‘준회원으로 강등하거나 IP를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신고 게시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성매매 증거화면을 캡쳐하여 등록하면 24시간 이내에 처리’해주겠다고 알리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이트에서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면 광고를 올릴 수 있는 광고 게시판과 한 번 글을 작성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홍보 게시판에는 ‘TC’를 지불하면 ‘선수’를 ‘초이스’할 수 있는 클럽, 빠, 노래방의 광고와 그런 업소에서 일할 ‘선수’를 찾는 홍보 게시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이트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 개인 조건만남 성노동자는 별도로 만들어진 신고 게시판을 통해 IP차단까지 당하지만, 한 달에 몇 만원씩 내거나 글 하나를 작성할 때마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게시판에는 공공연하게 ‘성매매’를 암시하고, 성산업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포함된 광고들이 올라온다. 이때 ‘전체가 싸잡혀서 비난’ 받게 만드는 ‘일부 선매매를 일삼는 TG/CD’와 ‘선수’를 ‘초이스’할 수 있는 클럽, 빠, 노래방의 차이는 무엇인가? (-) ‘성매매’를 불법화하는 법과 사이트 운영에 필수적인 수입 사이에서 이와 같은 모순적인 상황이 나타날 때, ‘성매매를 일삼는’ 성노동자인 나는 내가 성노동을 하기 위해 손님을 구하려고 글을 쓰는 게 문제가 되는지, 그런 글을 돈을 내지 않고 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


예전에 한 행사 자리에서 ‘성매매가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어, 그에 대해 내가 성노동 운동을 하는 성노동자임을 밝히고 반박한 일이 있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상대는 내 반박에 대해 다시 반박하고 논쟁하는 대신 ‘한 당사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 없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자기 서사로 국한될뿐더러, 그 이상을 이야기할 때조차 내가 하는 말은 ‘한 당사자의 개인적인’ 자기 서사로 치부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내가 하려는 말이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말로서 적절한가를 검열하게 된다. 자기 서사로 치부될 수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는 정말로 당사자가 맞는지를 의심받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삶을 다루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 트랜스젠더퀴어 바텀알바인 나는 내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나의 이야기가 연구자와 언론의 이익에 복무할 때만 제한적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

말할 수 없음에 대해 고민했다. 말하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대치되거나, 그것은 진지하게 이야기될 주제가 아니라고 치부되거나, 내가 특정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위치지어지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기 위한 언어가, 체계가 부재한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그것을 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저 ‘이쪽’ 사람들이라는 집단에 대한 경험적인 글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쪽’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계급, 인종, 이주, 장애, 연령과 같은 것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 자체를 분할하거나 커뮤니티에 진입하기 위한 요건을 만들 때, 거기서 미끄러진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

(-)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높아져 가지만 ‘이쪽’인 사람들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이쪽’ 사람들이 모여서 크루징을 하고 관계를 맺는 공원 화장실, 사우나, 이반 DVD방은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이따금 그 공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여러 사람들도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나이든 퀴어의 삶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말은 곳곳에서 들리지만, 의구심이 든다. 보이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보지 않는 것인가? (-)

(-) 섹스/젠더/섹슈얼리티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 이전에 존재하는가? (-) 그와 같은 분류 자체가 내가 도달해야 하는 지향점처럼 상상되고, 그에 부합되지 않는 구체적인 삶의 양상이 무시될 때, 그 분류 속에서 내가 특정한 이름을 갖는 것에 어떤 의미가 남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_도균_게이라는 게 이쪽이라는 뜻이야?_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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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 완전하지 못한 내 마음에게 That's OK
명난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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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난희 작가가 6699프레스와 <괜찮아> 책을 절판하면서 ‘출판사가 퀴어 인권 및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관련된 책을 출판한 것이 개인적인 방향성과 다르고 (성소수자가) 틀림을 인정‘한다고 계약중도파기서를 작성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이에 대한 명난희 작가와 RHK 출판사의 입장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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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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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허리 공연을 보면서 두번째 이야기에서부터 눈물이 줄줄 났다. 두번째는 자기 자신이 되는 이야기였고 세번째이야기는 10년째 공연을 해온 장애여성 나예슬을 화자로 내세워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예술가인지 아니면 장애여성일 뿐인지 묻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어떻게 타인도 나를 봐줄 수 있을까?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게 진짜 나라고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타인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대로 나를 볼 때, 나만이 정말 이것이 나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사람일 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불안과 고독 속에서 아니야, 하고 고개 젓게 만드는 힘. 두번째 이야기는 그래서 혼자여야 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남들이 말하는 (장애여성의) 성공한 삶, 비장애인 남편이 있고, 일할 수 있고, 두 아이가 있는 그 삶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받고 나이기 위해서 혼자서 한참 헤매어야 했던 그 용기. 자신의 언어가 왜곡되고 무시당하고 전달되지 않는 갑갑함 속에서 계속해서 의사를 표현해내야 하는 삶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이겨내어야 하고 벗어던져야 하고 싸워야 하고,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배부른 소리로 간주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나는 예술가인가? 나는 예술을 하고 있나? 아니면 단지 장애를 가진 나(장애여성)를 무대에 올린 것일 뿐인가? 내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공연을 했던 십년 동안 하나도 전달되지 않은 것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꿈, 충격을 주는 꿈, 감동을 주는 꿈을 꾸었던 그것은 계속 꿈이며 혼자만의 소망일 뿐인가? 다시 공연을 준비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이러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지, 무엇을 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지 않고 나의 장애만을 신기해하고 기특해하고 대견해하며 눈물 흘려야 할 무엇으로만 사람들은 보고 있는 것인가? 정말 성공하셨어요, 대단하세요, 이렇게 사랑을 받으시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어요... 사람 조심해 길 건널 때 조심해 항상 조심해 이것저것 다 조심해! 널 위해서, 내가 할게, 이렇게 할게, 이게 최선이야, 이게 니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이야, 내가 해줄게, 내가 잘 알잖아, 도와줄게, 아니야 넌 할 수 없어, 보호자는 어디 있어.

나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던 질문. 비어 있는 것들. 나는 남들이 정말 평범하고 아무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도 절대로 궁금하지 않거든요.. 에서 내가 바로 그 복수의 '다른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거. 나는 비어 있다, 내 삶은 내 경험은 존중될 무엇도 아니고 내 고민은 너무 얕고 아무것도 바꿔내거나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상처 주기 쉬울 뿐이고 폭력적이며 단지 도구일 뿐이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거나 조명의 일부인 나사이거나.. 그러리라는 사실. 나는 비어 있다는 거 나는 안 대단하고 내 삶은 문제는 치명적이거나 누구를 압도하는 것도 아니고 비교하자면 시시한. 그게 뭐 어때서?의 수준인. 도구나 부품인 내가 누군가를 그나마 '아' 하고 탄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목격한 타인의 경험이거나 타인의 고통이거나 그의 수치심이거나 그가 감추고 싶어했던 것이어서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내가 누군가를 '아'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비어 있는 채로 살아가야 하고 나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아서도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기다. 혼자서 저 멀리에 빨리 도착한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한뼘이라도 다같이 함께'여야 한다. 혼자는 속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까지 속이기는 어렵겠죠. 집회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어야 했을까? 어떤 것이 성과일까? 무언가를 누락했을까? 뭘 생각하지 못했을까? 광장을 꽉 채웠으면 아 대단하다 잘했다 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 채워진 사람들은 누구이고 오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오지 못함의 조건이 무엇이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게 하는 그 투쟁의 맥락과 말의 가닿지 않는 불통을 보면서, 오해당하고 무시할 수 있는 그 힘의 차이를 보면서 이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 수 있나? 떠나고 포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쉽게 생각하지 않으려면요. 제가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면요. 

안녕 나의 몸, 다리, 배, 입술, 머리.. 감춰왔던, 그리고 감출 수 없었던 '나(의 장애)'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안 감춰진다고요. 아무것도 나의 조건을 바꿀 수 없어요. 이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 조건이니까요. 나의 언어는 계속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어렵고 뭉개지고 용기를 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오해당하면서 이 모든 걸 견디는 싸움을 해야겠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나는 내 생각만 하여서는 안 된다. 내 생각만 하면 모든 게 쉽고 모든 건 결정 가능하다. 정말 그런가? 하고 누군가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도 있다. 아니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정말? 누가 알고 있다면 말해준다면 좋겠네. 내가 이런 사람일 수밖에 없을 때 이런 사람이어도 되는지, 그래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 '불만폭주 라디오' 공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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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외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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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표(*)가 붙은 질문의 경우 다음과 같은 순위로 자신의 느낌을 숫자로 표시한다. 1=항상 느낀다, 2=가끔 느낀다, 3=드물게 느낀다, 4=전혀 느끼지 않는다


별표(*)가 없는 질문의 경우 다음과 같은 순위로 자신의 느낌을 숫자로 표시한다. 1=전혀 느끼지 않는다, 2=드물게 느낀다, 3=가끔 느낀다, 4=항상 느낀다



UCLA 외로움 측정 기준(3차 개정본)


1* 주변 사람들과 '유대감'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2 자신이 동료 의식이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3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4 자기 혼자뿐이라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5* 자신이 친구들의 일원이라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6*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공통점이 많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7 주변 사람이 자신을 더 이상 알아주지 않는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8 자신의 관심사와 의견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9* 자신이 외향적이고 친절하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0* 자신이 사람들과 가깝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1 자신이 따돌림을 당한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2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의미가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3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4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고립되어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5*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6*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7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꺼려진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8 주변에 친구들은 있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19* 대화가 되는 사람이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20*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UCLA 외로움 측정 기준(UCLA Loneliness Scale, version 3) Daniel W. Russell, "UCLA Loneliness Scale(version 3): Reliability, validity, and factor structure. "Journal of Personallity Assessment 66(1996) 



각 질문에서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강도를 1과 4 사이의 숫자 중 하나로 정해 그 옆의 빈칸에 적는다. 주의할 사안은 여기 제시된 질문의 절반은 자신의 삶에서 결여된 느낌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삶에서 존재하는 느낌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 두 가지 질문 유형 모두가 같은 느낌을 서로 반대의 방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질문의 절반은 높은 숫자가 '더 자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머지 절반은 높은 숫자가 '덜 자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다음 각 질문 곁에 쓴 숫자를 합산해서 자신의 점수를 매긴다. 총점 44점 이상이면 외로움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28점 이하면 외로움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다. 33~39점은 평균적인 외로움 수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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