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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6
장애여성공감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11월
평점 :
춤추는 허리 공연을 보면서 두번째 이야기에서부터 눈물이 줄줄 났다. 두번째는 자기 자신이 되는 이야기였고 세번째이야기는 10년째 공연을 해온 장애여성 나예슬을 화자로 내세워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예술가인지 아니면 장애여성일 뿐인지 묻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어떻게 타인도 나를 봐줄 수 있을까?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게 진짜 나라고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타인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대로 나를 볼 때, 나만이 정말 이것이 나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사람일 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불안과 고독 속에서 아니야, 하고 고개 젓게 만드는 힘. 두번째 이야기는 그래서 혼자여야 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남들이 말하는 (장애여성의) 성공한 삶, 비장애인 남편이 있고, 일할 수 있고, 두 아이가 있는 그 삶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받고 나이기 위해서 혼자서 한참 헤매어야 했던 그 용기. 자신의 언어가 왜곡되고 무시당하고 전달되지 않는 갑갑함 속에서 계속해서 의사를 표현해내야 하는 삶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이겨내어야 하고 벗어던져야 하고 싸워야 하고,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배부른 소리로 간주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나는 예술가인가? 나는 예술을 하고 있나? 아니면 단지 장애를 가진 나(장애여성)를 무대에 올린 것일 뿐인가? 내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공연을 했던 십년 동안 하나도 전달되지 않은 것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꿈, 충격을 주는 꿈, 감동을 주는 꿈을 꾸었던 그것은 계속 꿈이며 혼자만의 소망일 뿐인가? 다시 공연을 준비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이러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지, 무엇을 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지 않고 나의 장애만을 신기해하고 기특해하고 대견해하며 눈물 흘려야 할 무엇으로만 사람들은 보고 있는 것인가? 정말 성공하셨어요, 대단하세요, 이렇게 사랑을 받으시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어요... 사람 조심해 길 건널 때 조심해 항상 조심해 이것저것 다 조심해! 널 위해서, 내가 할게, 이렇게 할게, 이게 최선이야, 이게 니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이야, 내가 해줄게, 내가 잘 알잖아, 도와줄게, 아니야 넌 할 수 없어, 보호자는 어디 있어.
나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던 질문. 비어 있는 것들. 나는 남들이 정말 평범하고 아무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도 절대로 궁금하지 않거든요.. 에서 내가 바로 그 복수의 '다른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거. 나는 비어 있다, 내 삶은 내 경험은 존중될 무엇도 아니고 내 고민은 너무 얕고 아무것도 바꿔내거나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상처 주기 쉬울 뿐이고 폭력적이며 단지 도구일 뿐이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거나 조명의 일부인 나사이거나.. 그러리라는 사실. 나는 비어 있다는 거 나는 안 대단하고 내 삶은 문제는 치명적이거나 누구를 압도하는 것도 아니고 비교하자면 시시한. 그게 뭐 어때서?의 수준인. 도구나 부품인 내가 누군가를 그나마 '아' 하고 탄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목격한 타인의 경험이거나 타인의 고통이거나 그의 수치심이거나 그가 감추고 싶어했던 것이어서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내가 누군가를 '아'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비어 있는 채로 살아가야 하고 나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아서도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기다. 혼자서 저 멀리에 빨리 도착한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한뼘이라도 다같이 함께'여야 한다. 혼자는 속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까지 속이기는 어렵겠죠. 집회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어야 했을까? 어떤 것이 성과일까? 무언가를 누락했을까? 뭘 생각하지 못했을까? 광장을 꽉 채웠으면 아 대단하다 잘했다 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 채워진 사람들은 누구이고 오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오지 못함의 조건이 무엇이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게 하는 그 투쟁의 맥락과 말의 가닿지 않는 불통을 보면서, 오해당하고 무시할 수 있는 그 힘의 차이를 보면서 이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 수 있나? 떠나고 포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쉽게 생각하지 않으려면요. 제가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면요.
안녕 나의 몸, 다리, 배, 입술, 머리.. 감춰왔던, 그리고 감출 수 없었던 '나(의 장애)'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안 감춰진다고요. 아무것도 나의 조건을 바꿀 수 없어요. 이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 조건이니까요. 나의 언어는 계속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어렵고 뭉개지고 용기를 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오해당하면서 이 모든 걸 견디는 싸움을 해야겠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나는 내 생각만 하여서는 안 된다. 내 생각만 하면 모든 게 쉽고 모든 건 결정 가능하다. 정말 그런가? 하고 누군가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도 있다. 아니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정말? 누가 알고 있다면 말해준다면 좋겠네. 내가 이런 사람일 수밖에 없을 때 이런 사람이어도 되는지, 그래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 '불만폭주 라디오' 공연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