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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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복은 분홍색과 흰색 줄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내 마음의 명령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거기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가령 ‘꽃과 죄수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같은 의미 말이다. 꽃의 연약하고 섬세한 성질은 죄수의 거칠고 무감각한 성질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나에게 죄수나 범죄자를 묘사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수많은 꽃으로 그들을 장식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다른 것들과 전혀 다른, 새롭고도 커다란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람들이 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해 모험을 계속해 왔고, 그 때문에 감옥에까지 가게 되었다.


(-)


도덕적 행동의 아름다움은 그 표현의 아름다움에 달려 있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단정 짓는 것이다. 그 뒤에는 그것을 증명하는 일만 남는다. 그것은 바로 이미지의 역할이다. 이를테면 물리적 세계의 웅장함과 조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구멍에서 노래를 발견하게 하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한다면 그 행동은 아름다운 것이다. (-) 배반 행위가 우리를 노래하게 한다면 그 배반은 아름답다. (-)

(-) 그는 어색하지만 가볍게 미소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을 갈망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언젠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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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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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는(-) 핸드폰도 못 찾아서 나중에 동영상도 다른 친구들 거 복원된 것에서 볼 수 있었지요. 다들 동영상을 찾아서 보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무섭고 그래서 한동안 못 봤어요. 우리 아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욱 볼 수 없었어요. 건우가 겁이 많았거든요. 무서운 영화 보고 오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가려면 불을 다 켜요. "너 또 왜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 하면 "엄마, 나 무서운 영화 봤잖아" 그래요. 그 생각을 하면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서.

그런데 한번은 예상치도 못하고 영상을 하나 보게 됐어요. 1초 정도 건우 모습이 나와서 "앗, 건우다" 하는데 지나가더라구요. 그때 가슴이 덜컹하고 또 안정이 안 돼서 안 봐야겠다 했는데 뉴스에 계속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같은 반 (박)수현이가 찍은 영상을 받아서 봤지요. 우리 아들이 약간 겁먹은 얼굴로 있더라구요. 그때 심하게 울었더니 아빠는 보지 말라고 하구요. (-) 그래서 한동안 안 보다가 또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엔 건우 목소리까지 나오는 거예요. 다른 엄마들은 다 찾아서 보려고 하는데 나는 안 보려 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봤어요.

그 마지막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거기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더라구요. (-)


다른 애들은 문자도 전화도 했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전화도 문자도 안 했을까 되게 의문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 순간에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

지금도 사무치게 마음 아픈 게, 생존자 아이들이 전하는 말이 아이들이 서로 밀치지도 않고 구해줄 줄 알고 줄 서서 있었다고 그래요. 그 말 들으니까 애들은 다 자신들이 구해질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애들이 얼마나 성숙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오라는 정보도 안 주고... 아이들이 어려서, 말 잘 들어서 그랬다는 거 들으면 억울하고 분하고...



172번인가 174번인가로 건우가 나왔어요. 이것도 기억이 없네.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4월) 24일에 나왔어요. 확인은 25일에 됐어요. (-)


(-) 다른 실종자 가족들한테 우리 아들 나와서 간다고 하는데... 미안한 거예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나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 이렇게 나온 것이 감사할 일인가요. 사실 거기(팽목항)서 우리가 마지막이 될까봐 너무 힘들었어요. (-) 옆에서 다들 부러워하더라구요. 이게 부러워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그리고 서로 축하를 해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래요. 그러니 내가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왜 이게 감사해요? 도대체 왜?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고, 아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

팽목항에 갔더니 사진을 보여주더라구요. 사진을 보여주는데 잠자는 모습 같아요.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자체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아들 얼굴만 찍어서 보여주는데 그걸 보는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어요. 내가 살아온 50년이란 세월 중에서 가장 괴로운...



우리 아들은 늘 "헤~" 이렇게 웃었어. 무슨 말만 해도 웃고 너무 잘 웃어서 별명이 '헤보'였어요. 친구들은 하도 건우가 빼빼하니까 '모기'라고 불렀어요. 아이가 작아서 친구들이 놀리고 괴롭힐 줄 알았는데 친구가 많았어요. (-)



미사 중에 그런 말을 하셨어요. "정의를 위해 물러서지 말라." 저는 맨날 그러거든요. '아, 이거 싸워야 돼, 말아야 돼." 하느님은 늘 용서하라고 하시거든요. 무조건 용서하라구, 사랑하라구. 그런데 그게 너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평생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진짜 못된 짓 한 사람도 다 용서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것만큼은 절대로 못하겠어요. 그래서 용서 못하겠다고, 이것만큼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고, 어떻게 이걸 용서하냐고, 이걸 내가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냐고 계속 마음속에서 그랬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그분이 저한테 딱 답을 주시는 것 같더라구요. 정의를 위해 물러서지 말라고! 저는 그 말 한마디만 마음에 꽂혔어요. '아, 그래. 미워해도 되는구나. 진짜로는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들 죽이든, 미워하든 내가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가장 오래 남는 게 냄새라는데,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는데, 냄새가 안 나요. 이불에서도 냄새가 안 나요. 너무 너무 힘들면 길바닥에 건우 이름을 새기며 걸어보라던 수녀님 말씀을 생각해 어떤 때는 건우가 신던 신을 신고 걸어봐요. 도장 찍는다 생각하고. 매일 분향소에 걸어서 가요. 갈 때마다 눈물이 나서. 그래도 걸어보자 하며 나가봐요. 그런데 나가면 역시 우리 아들이 걸었던 길이다 생각하면 눈물이 막 나오죠. 바람이 불어도 우리 아들이 맞던 바람 같고. 여기 와동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 모든 곳에 건우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주변에서 이사 갔다고 하는 소식 들으면 어떻게 가지 싶어요. 어떻게 가지, 아이와 시간을 보낸 곳을 두고. (-)


(-) 어느 날은 그랬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살 백살까지 살 거야. 내가 건우를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다 살기 싫고 죽고 싶고 그래요. 너무 화가 치밀어오르는데 화를 가라앉힐 수도 없어요. 이게 반복돼요. 이 나라한테 화가 나... '아, 이 OO 같은 세상!' 혼자 막 이래요. (-)

너무 화가 나서... 화가 안 풀려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날은 아빠가 건우한테 가자고 저를 데리고 나가요. 그러면 건우한테 가서 그래요. "건우야, 우리 용서하지 말자. 이 개새끼들! 우리 절대 용서하지 말자. 너랑 나랑 절대 용서하지 말자!" 이렇게 욕을 하고 와요.

'이 OO 같은 세상. 빨리 네게 가고 싶은데 그래도 5개월이나 살았어. 많이 살았어. 엄마... 그렇지?' 욕했다, 화를 다스렸다, 오래 살겠다 다짐했다가 다시 빨리 아들에게 가고 싶다가... 이렇게 매일, 이게 일상이 되었어요.

건우가 가고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어느 날은 건우 아빠가 이렇게 물어요. "내가 자기를 안 만나고 그랬으면 건우가 안 태어났을 텐데,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나 안 만나고 싶지 않아? 그러면 이 고통의 시간을 안 당해도 되잖아."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나는 또 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건우를 만나고 싶어. 다시 택한대도 나는 건우 엄마를 택할 거야"라고. 그 17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회가 생기면 건우를 또 만나 그 시간을 다시 건너고 싶다고. 내 인생에서 건우와 보낸 17년은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_작가기록단 정주연(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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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음의 시 219
황유원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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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익과 인권 25
문경란.홍성수 엮음, 안경환 외 지음 / 경인문화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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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마 - 장애의 세계와 사회적응
어빙 고프만 지음, 윤선길 외 옮김 / 한신대학교출판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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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대개 눈에 보이는 장애만을 장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에 불과할 뿐,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이 각자에게 하나의 낙인이 되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장애를 갖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을 범주화하는 방법이 있으며 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반 속성 또는 기질들을 확립해 놓는다. (-) 낯선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 우리는 첫 모습을 보고 그가 속한 범주와 속상, 즉 그의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예측에 의존하고, 나아가 이를 (-) 기대로 전환시키며 심지어는 이를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요구가 이행될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이 들 때까지 사람들은 (-) 그런 요구가 제기되었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문이 드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유형의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으로 계속 가정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속에 품었던 요구는 “실제로” 제기된 요구(-)라고 보아야 한다. (-)

 

  어떤 개인은 우리의 현실적 요구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런 결핍으로 인한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 자신은 완전한 정상적 인간이며 오히려 일반인들을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 사람은 낙인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영향을 받거나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

  (-) 낙인자는 정체성에 대하여 대체로 우리와 동일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는 내면적으로 자신을 “정상적 인간”이라고 의식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진정 자신을 “수용”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을 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그의 생각이 꽤 정확하다. (-)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결점으로 보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신경 쓰도록 훈련되며, 이로 인해 잠시나마 그가 꼭 갖추어야 할 것을 결핍하였다는 사실에 동의하고야 만다. 무엇보다도 이때 가장 먼저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자신이 더럽혀진 속성을 소유하였거나, 어떤 속성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수치심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상인과 함께 함으로써 자아요구(self-demands)와 자아(self)의 괴리가 강화되지만, 자기 혼자 거울을 대하고 있을 때도 자기 혐오(self-hate)와 자기비하(self-derogation)가 역시 나타날 수 있다.

 

  마침내 나는 회복되고……다시 걷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난 확대경을 들고 내 자신을 보기 위해 긴 거울 앞에 섰다. 나 혼자서. 다른 누구에게도……내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끼는 심정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순간 조용했다. 나는 소리 지르지 않았다. 비참한 내 자신을 보면서도 분노로 절규하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거울 속에 있는 저 사람은 나일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나를 건강하고, 평범하고,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아니야, 거울 속의 저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러나 다시 얼굴을 돌려 거울을 들여다보니 거울 안에는 내 두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치욕감에 충혈 된 내 눈이……내 자신 스스로 서글퍼하거나 한 마디 말도 하지 못 한 이 일을 누구에겐가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된 혼란과 공포는 그때 그 자리에서, 혼자만 알게,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아주 오래 오래 가두어 두었다.

 

  (-)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는 공포에 떨었다. 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는, 모든 게 가능한양 항상 낭만적 우쭐함을 안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받고 살던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한 낯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약하고, 비참하고, 섬뜩한 몰골과, 내가 응시할 때 수치로 괴로워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이방인이었다. 그 모습은 (-) 평생 벗지 못 할 분장이었다. 거기에 그 모습이 있었다.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었다.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치 머리를 한대씩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

 

 

  열등의식이란 극단의 불안을 상시 의식에서 떨쳐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안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질투가 불안보다 실제로 더 나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질투로 외로워한다. 자신의 어떤 모습으로 인해 남들이 존경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 불안해 한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은 (-) 치유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정상인들을 대하면서 항상 이러한 점을 느낀다. 그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할 때조차, 정말 언제나, 내심으로는 나를 범죄인 정도로밖에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현재의 내 자신을 어떻게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걸 알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여전히 이 사실, 즉 그 사람들은 나를 다른 존재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게 그들의 유일한 접근방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모든 낯선 아이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그 애들도 (-) 내가 무서워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고, 그리하여 심지어 가장 유순하고 상냥한 아이들마저 내가 위축되거나 공포에 질리면 자동적으로 나를 조롱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청각장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니치(Nitchie) 학교에서 지낸 것이 얼마나 편했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은 청각보조기를 자연스레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누가 보건 개의치 않고 내 송신기의 음량을 조절할 수 있다면 (-) 잠시나마 목 뒤의 코드 줄이 보이지 않나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에겐가. "어이, 내 건전지가 다됐어!"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항문절개수술을 받기 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냄새가 날 때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냄새나는 사람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여겼는데,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 것이고 어딜 가기 전에 목욕부터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먹은 음식 때문에 그런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걸 너무나 싫어했다. 내게는 그들이 구질구질하고 더러워보였다. (-) 마찬가지로 내가 냄새를 풍기면 젊은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믿는다.

 

 

  안내견에 대한 질문에는 공손하게 비켜갔다. 다른 정상인 근무자가 나를 이끌고 시설을 둘러보게 했다. 우리는 브레일리 도서관, 교실, 맹인들이 음악이나 연극 연습을 하는 동아리 공간, 축제 때 맹인끼리 춤을 추는 레크리에이션 홀, 맹인끼리 볼링을 치는 볼링장, 모든 시각장애인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 시각장애인이 대걸레와 빗자루를 만들거나 카펫을 짜고 등나무 의자를 만들어 실질적인 생계비를 버는 대형 작업장 등을 다녀보았다. 각 방을 옮겨 다니면서 나는 발자국 소리,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 지팡이로 똑똑 더듬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곳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하고 격리된 세계였다. 사회복지사가 확신을 주는 것처럼, 내가 방금 떠나온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여기가 바로 내가 살아야 할 세상이란다. 내 직업을 포기하고 자루걸레나 만들면서 살아야 한다. '등대' 단체는 기쁜 마음으로 내게 걸레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나는 이제 남은 생을 눈먼 사람들과 자루걸레를 만들고, 눈먼 사람들과 밥을 먹고, 눈먼 사람들과 춤을 추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 그런 그림이 그려지면서 나는 두려움에 진저리쳤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그렇게 파멸적인 고립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


  (-) 맹인에 가깝게 실명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척하다 걸상에 걸려 넘어지거나 음료수를 셔츠에 엎지를 때와 같은 꾀죄죄함, 청각장애자가 그의 결함을 모르는 사람이 건넨 말에 대답을 못했을 때와 같은 부주의함, (-) 

 

 

  (-) 낙인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하는 바로 그 테크닉이 이런 수법에 친숙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비밀을 폭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왜 지압요법을 해 보지 않으세요?"[단순히 안면만 있는]그녀는 콘비프를 씹으며 내게 물었다. 그 질문에는 나의 내면세계를 밑바닥부터 뒤집어 놓겠다는 어떠한 암시도 보이지 않았다. "플래처 박사님 말씀이 요즘 귀머거리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던대요."

  나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우리 아버지도 귀를 먹었어요."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귀먹은 사람은 귀신처럼 알아내요. 당신의 그 부드러운 음성. 그리고 말을 맺지 않고 질질 끄는 요령. 우리 아버지도 언제나 그렇게 하셨거든요."

 

 

  ……자신의 장애를 감추기 원하는 사람은 장애를 나타내는 다른 사람의 버릇을 금방 눈치 챈다. (-)

 

 

  (-) 은밀한 결함을 보유한 사람은 여러 가능성을 정밀 검색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냥 별일 없이 지내는 그 단순한 세계와 소원해지기 쉽다. 그들에게는 땅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숫자가 되기 때문이다(역자 주: 일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딛고 다니는 땅일지라도 시각장애자들은 언제나 걸음 수로 세고 다니기 때문이다). 거의 실명한 상태의 청년에게서 한 가지 예를 볼 수 있다.

 

  나는 메리와 청량음료를 24캔이나 같이 마시고 영화를 세 편이나 함께 보면서도 그녀가 내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배운 요령을 모두 활용했던 것이다. 매일 아침 그녀의 옷 색깔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고, 메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의 온 눈과 귀 그리고 육감까지도 곤두세워 주시했다. 나는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엔 그게 누구이건 친밀하게 인사했다. 그들은 아마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밤에 극장에 가거나 올 때면 항상 그녀와 손을 잡고 다녀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게 길을 인도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도로 옆의 인도 경계석이나 계단을 더듬지 않아도 되었다.

 

 

  외관상으로만 정상 청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의 남편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 사람 자체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 그는 (-) 내 실수를 만회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 나는 항상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는 내가 들었다고 생각하게 했다. (-)

 

 

  출산과정에서 뇌의 통제부분에 손상을 입어 무정위운동(athetosis) 유형의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났지만, 그 용어가 널리 알려지고 사회가 내게 명칭이 붙은 일탈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압박할 때까지 나는 (-) 깨닫지 못했다. 당신은 (-) 아마 사회가 당신이 누구이며 혹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알 때까지는 자신에게 정직할 수 없을 것이다.

 

(-)

 

정상인들은 정말로 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만일 그럴 경우에는 그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의적으로 행동하도록 그들을 재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경멸, 냉대, 적절치 못한 말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응대해서는 안 된다. 낙인자는 이런 것들에 괘념치 말고 동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정상인들을 재교육시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일반인들이 어떻게 느끼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해주기를 낙인자에게 요구하게 된다.)

정상인들이 그의 결함을 무시하는 것이 어렵게 보일 때, 낙인자는 그들을 도와 사회적 상황에서의 긴장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


(-)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개인은 상황을 통제하는 데 있어 그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에게 과시하는 것이 된다(-)

뇌성마비환자를 이해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를 관대히 용인하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사회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즐기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걸 명예라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지만 한번 도전해 볼만한 즐거움이라는 생각은 든다. (-) 그러나 이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처 입은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그의 면전에서 겪는 정상인의 곤혹감과 결합하여 긴장되고 불편한 관계를 유발시키는데, 이로 인해 그들은 서로 분리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또 더 폭넓게 수용되기 위하여, 상처 입은 사람은 정상인이 표출한 호기심을 기꺼이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먼저 상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서툰 노력을 요령 있게 받아들이는 일이 비록 낙인자에게는 부담이 될지라도, 그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오슬로(Oslo)의 노천식당에서 보았던 한 남자를 기억한다. 그는 심한 불구였는데, 식당 테이블이 있는 테라스로 가기 위해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려고 자기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그는 다리를 쓸 수 없었기에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그 남자가 이상한 모양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종업원이 달려왔다. 그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 식당에서는 그와 같은 손님을 모실 수 없다는 말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손님들이 그 식당을 찾는 이유는 식사를 하며 좋은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지 불구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우울해지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상대방이 자신을 적절한 수준에서 수용한 것(-) 이러한 수용이 조건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조건은 정상인들 중신의 조건으로서 그들이 쉽게 수용을 베풀 수 있는 한계, 또는 최악의 경우 그들이 거북스러우나마 수용을 베풀 수 있는 그 한계를 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낙인자도 적절히 신사다워야 하며 계속 순조로우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에게 베풀어진 수용의 한계를 시험해서도 안 되고, 그것을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일반적으로 관용은 거래의 일부인 것이다.


(-) 낙인자는 자신의 짐이 무겁다거나 그 짐을 지고 있어서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요구받는다. 동시에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런 믿음이 고통 없이 확인될 수 있도록 우리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 이런 상황에서 그는 또 다른 구경거리를 보듯 예의 주시하는 신랄한 관중 앞에서 실수 없이 이러한 자아를 연출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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