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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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는(-) 핸드폰도 못 찾아서 나중에 동영상도 다른 친구들 거 복원된 것에서 볼 수 있었지요. 다들 동영상을 찾아서 보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무섭고 그래서 한동안 못 봤어요. 우리 아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욱 볼 수 없었어요. 건우가 겁이 많았거든요. 무서운 영화 보고 오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가려면 불을 다 켜요. "너 또 왜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 하면 "엄마, 나 무서운 영화 봤잖아" 그래요. 그 생각을 하면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서.

그런데 한번은 예상치도 못하고 영상을 하나 보게 됐어요. 1초 정도 건우 모습이 나와서 "앗, 건우다" 하는데 지나가더라구요. 그때 가슴이 덜컹하고 또 안정이 안 돼서 안 봐야겠다 했는데 뉴스에 계속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같은 반 (박)수현이가 찍은 영상을 받아서 봤지요. 우리 아들이 약간 겁먹은 얼굴로 있더라구요. 그때 심하게 울었더니 아빠는 보지 말라고 하구요. (-) 그래서 한동안 안 보다가 또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엔 건우 목소리까지 나오는 거예요. 다른 엄마들은 다 찾아서 보려고 하는데 나는 안 보려 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봤어요.

그 마지막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거기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더라구요. (-)


다른 애들은 문자도 전화도 했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전화도 문자도 안 했을까 되게 의문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 순간에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

지금도 사무치게 마음 아픈 게, 생존자 아이들이 전하는 말이 아이들이 서로 밀치지도 않고 구해줄 줄 알고 줄 서서 있었다고 그래요. 그 말 들으니까 애들은 다 자신들이 구해질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애들이 얼마나 성숙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오라는 정보도 안 주고... 아이들이 어려서, 말 잘 들어서 그랬다는 거 들으면 억울하고 분하고...



172번인가 174번인가로 건우가 나왔어요. 이것도 기억이 없네.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4월) 24일에 나왔어요. 확인은 25일에 됐어요. (-)


(-) 다른 실종자 가족들한테 우리 아들 나와서 간다고 하는데... 미안한 거예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나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 이렇게 나온 것이 감사할 일인가요. 사실 거기(팽목항)서 우리가 마지막이 될까봐 너무 힘들었어요. (-) 옆에서 다들 부러워하더라구요. 이게 부러워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그리고 서로 축하를 해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래요. 그러니 내가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왜 이게 감사해요? 도대체 왜?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고, 아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

팽목항에 갔더니 사진을 보여주더라구요. 사진을 보여주는데 잠자는 모습 같아요.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자체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아들 얼굴만 찍어서 보여주는데 그걸 보는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어요. 내가 살아온 50년이란 세월 중에서 가장 괴로운...



우리 아들은 늘 "헤~" 이렇게 웃었어. 무슨 말만 해도 웃고 너무 잘 웃어서 별명이 '헤보'였어요. 친구들은 하도 건우가 빼빼하니까 '모기'라고 불렀어요. 아이가 작아서 친구들이 놀리고 괴롭힐 줄 알았는데 친구가 많았어요. (-)



미사 중에 그런 말을 하셨어요. "정의를 위해 물러서지 말라." 저는 맨날 그러거든요. '아, 이거 싸워야 돼, 말아야 돼." 하느님은 늘 용서하라고 하시거든요. 무조건 용서하라구, 사랑하라구. 그런데 그게 너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평생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진짜 못된 짓 한 사람도 다 용서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것만큼은 절대로 못하겠어요. 그래서 용서 못하겠다고, 이것만큼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고, 어떻게 이걸 용서하냐고, 이걸 내가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냐고 계속 마음속에서 그랬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그분이 저한테 딱 답을 주시는 것 같더라구요. 정의를 위해 물러서지 말라고! 저는 그 말 한마디만 마음에 꽂혔어요. '아, 그래. 미워해도 되는구나. 진짜로는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들 죽이든, 미워하든 내가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가장 오래 남는 게 냄새라는데,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는데, 냄새가 안 나요. 이불에서도 냄새가 안 나요. 너무 너무 힘들면 길바닥에 건우 이름을 새기며 걸어보라던 수녀님 말씀을 생각해 어떤 때는 건우가 신던 신을 신고 걸어봐요. 도장 찍는다 생각하고. 매일 분향소에 걸어서 가요. 갈 때마다 눈물이 나서. 그래도 걸어보자 하며 나가봐요. 그런데 나가면 역시 우리 아들이 걸었던 길이다 생각하면 눈물이 막 나오죠. 바람이 불어도 우리 아들이 맞던 바람 같고. 여기 와동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 모든 곳에 건우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주변에서 이사 갔다고 하는 소식 들으면 어떻게 가지 싶어요. 어떻게 가지, 아이와 시간을 보낸 곳을 두고. (-)


(-) 어느 날은 그랬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살 백살까지 살 거야. 내가 건우를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다 살기 싫고 죽고 싶고 그래요. 너무 화가 치밀어오르는데 화를 가라앉힐 수도 없어요. 이게 반복돼요. 이 나라한테 화가 나... '아, 이 OO 같은 세상!' 혼자 막 이래요. (-)

너무 화가 나서... 화가 안 풀려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날은 아빠가 건우한테 가자고 저를 데리고 나가요. 그러면 건우한테 가서 그래요. "건우야, 우리 용서하지 말자. 이 개새끼들! 우리 절대 용서하지 말자. 너랑 나랑 절대 용서하지 말자!" 이렇게 욕을 하고 와요.

'이 OO 같은 세상. 빨리 네게 가고 싶은데 그래도 5개월이나 살았어. 많이 살았어. 엄마... 그렇지?' 욕했다, 화를 다스렸다, 오래 살겠다 다짐했다가 다시 빨리 아들에게 가고 싶다가... 이렇게 매일, 이게 일상이 되었어요.

건우가 가고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어느 날은 건우 아빠가 이렇게 물어요. "내가 자기를 안 만나고 그랬으면 건우가 안 태어났을 텐데,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나 안 만나고 싶지 않아? 그러면 이 고통의 시간을 안 당해도 되잖아."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나는 또 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건우를 만나고 싶어. 다시 택한대도 나는 건우 엄마를 택할 거야"라고. 그 17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회가 생기면 건우를 또 만나 그 시간을 다시 건너고 싶다고. 내 인생에서 건우와 보낸 17년은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_작가기록단 정주연(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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