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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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프레스의 감각을 익히고 나서는 나 혼자 운동할 때 가장 즐겨 하는 운동이 됐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면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슴 운동은 여자에겐 별 필요 없는 운동이라는 말이 많다. 아니면 반대로 가슴선이 예뻐지는 운동이라는 말도 있다. 여자에겐 필요 없다, 여자 가슴이 예뻐진다, 어느 쪽도 듣기 싫은 말이다. 꼭 엄마가 옆에서 잔소리하는 것 같다. 엄마는 늘 나에게 여자애가 왜 그렇게 가슴을 떡 젖히고 다니느냐며, ‘얌전하게 숙이고 다녀!’라고 타박했다. 얌전하지 못하다는 말, 몸가짐이 조심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영 싫었다. 가슴을 마음껏 젖힐 수 있다는 해방감, 내가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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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프레스를 하다 보면 하늘을 떠받친 헤라클레스가 된 느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건 원래 거인 아틀라스의 역할이다. 아틀라스는 제우스에게 패했기에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는다. 헤라클레스는 황금 사과를 구할 작정으로 잠시 아틀라스 대신 하늘을 떠받친다. 형벌로써 아틀라스가 하늘을 지는 고역과 헤라클레스가 자발적인 목적으로 하늘을 지는 것은 다르다. 세상사에서 짊어져야 할 비자발적 고역과 자발적 수고의 차이, 매번은 아니더라도 나는 되도록 헤라클레스처럼 하늘을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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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프레스가 몸에 익어갈 즈음, 농사짓는 후배네 집에 주말에 가끔 내려가 일손을 돕곤 했다. 그리고 역기 드는 얘길 자랑 삼아 했다. 그런데 후배는 정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깝다는 것이다. 그 힘을 왜 거기다 쓰느냐고, 여기 오면 들어 올릴 게 정말 많다고 말이다. 자기는 역도 선수 장미란을 볼 때마다 그 힘을 딴 데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늘 일손이 아쉬운 처지에서 나온 서글픈 농담이었다. 농사일뿐이랴. 힘을 써야 할 일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죄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다.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히 사치라 한다. 그러나 어디 삶이 필수품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살아가려면 간혹이라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여유와 틈을 사치라고 낙인찍은 건 아닐까. 그렇게 사치라는 말은 분수를 지켜라하는 말로도 바뀌어 우리 삶을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힘을 쓰는 일이 사치라면, 난 내 힘을 하늘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사치를 마음껏 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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