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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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틴조선도 하얏트도 파라다이스와 노보텔은 물론 토요코인과 기타 등등도 없었을 때, 안개 낀 바닷가는 끝이 없이 펼쳐진 바닷가는 적막하며 막막하고 조용하여 어쩐지 무서웠다고 나는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해운대를 나는 모르고. 오래전의 한국영화들. 여자가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채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고 남자는 멀리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런 영화의 배경이었던 바다의 모습과 비슷하겠지 생각해보다 말았다. 그 시간이 지나 해운대에는 모든 것이 들어섰는데 모든 것이 무어냐면 부동산 투기자와 부유층과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백화점과 외국투자자본과 주소지가 서울인 집주인과 체인형 식당과 극장과 까페와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 그때는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어딘가 앉을 데를 찾아 들어가 빵을 사고 커피를 사고 창밖을 바라보며 산 것들을 입에 가져가면 주변의 사람들은 명백한 외국인이거나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거나 했고 어떤 사람들이건 고운 얼굴에 좋은 것들을 입고 걸치며 외국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운대는 이제 갈 수 없는 땅이 되었고 그때의 해운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마치 폼페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아주 찬란한 최정점에 있던 어떤 것이 파묻혀버린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감독은, 모자는 마치…… 마치 무언가를 잊고 싶다는 것처럼 자다가 고개를 흔들었어요 하고 말했고 나는 그 대사가 좀 웃긴다고 생각했고 이건 뭔가 좀 뻔하잖아 싶어서 웃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웃지 않는 그 장면을 혼자서 곱씹었다. 개가 사고에 대한 공포로 악몽을 꾸는 것이라 모두들 생각하고 싶어했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개의 꿈을, 개가 꾸는 꿈을 하고 입에 올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고 바로 웃음이 나왔다. 개가 무슨 꿈을 꾸든 개의 꿈, 나의 개, 나와 함께 사는 개의 꿈, 그 개가 꾸는 꿈, 그 개가 꾸는 꿈 하고 중얼거려보면 왠지 좋을 거야. 웃긴 생각이 들거든. 네가 개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개에게 큰 도움을 받기만 하겠지만 말이야. 그런 개에 관한 생각들을 했다.


2014년 2월에 '여기 옮긴 것보다 다른 부분이 훨씬 좋다' 하고 써놓았는데 그럼 왜 이 부분을 베껴놓았나 모르겠다. 뭘 하자면(쓰거나 베끼자면) 너무 크고 막연하니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할 때 이거라도 하자 싶었나보다. 하지만 왜 다른 부분이 훨씬 좋다고 했는지는 알겠다. 내가 이 부분을 베낀 것은 이유가 있어서, 해운대나 개의 이미지가 나에게 특정한 누구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어서다. 길을 지나다 자기 이름이 들어간 가게를 보면 잠시 쳐다보게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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