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회학
페이스 R.엘리엇 지음 / 을유문화사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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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와 켈너는 기능주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부부 가족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불안정하고 관료화된 공적 세계의 냉혹한 비인간성과 무자비한 경쟁과는 아주 뚜렷한 반대의 입장에 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흔히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욱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예를 들면 자살률이 낮다는)에 의하여 지지된다. 게다가 가족이 안식처라는 논지는 자녀의 '건강한' 인성 발달에 안정된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여 보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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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그는, 험한 세상에서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은 가족에게 '내적 고통'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인적 자유의 실제적 영역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족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의 견해로는 우리 문제의 뿌리깊은 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지 가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구원은 자본주의를 파괴함으로써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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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바시와 도바시(Dobash and Dobash, 1980)는 스코틀랜드의 두 도시에 대한 폭력 범죄에 관한 공식 기록을 분석하였는데 아내 구타가 모든 심한 폭행의 26%, 그리고 모든 가정 폭력의 76%나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부인을 때리는 것이 술주정뱅이나 정신 이상자들이 하는 드문 현상이 아니라 광범위한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임을 보여 준다. 도바시와 도바시에 의하면, 많은 남성들은 아내 구타를 남편 권위의 자연적인 확장으로 이해한다. 이 학자들은 또한 가족의 사생활과 독립성에 대한 신념이 경찰의 개입을 어렵게 하고, 아내 구타에 대한 처벌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하며, 여성이 공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도바시와 도바시는, 애정과 보살핌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족이 동시에 여성에 대한 부당한 폭력이 가장 묵인되는 장소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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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쟁들은 가족이 부정적 긍정적 측면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가족에 대한 폭넓은 수용뿐만 아니라 거부를 설명하는 이론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우리는 현대 부부 가족에 대한 플레처(Fletcher, 1973)의 지속적인 치열한 방어에서 이러한 경향을 본다. 플레처는, 현대 가족은 자녀 양육과 부부의 정서적·성적 욕구를 감탄할 정도로 잘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개인적인 친화력의 관계로 보는 관념은 서로의 기대와 생활 방식을 조화시키는 계속적인 과정이 반드시 따르며, 따라서 성공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만약 성공적이라면 결혼이 '가장 보상적이고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가장 비참하고 참을 수 없는 인간 경험'이 될 수 있다(Fletcher, 1973, p.140). 그는 또한 가족이 애정적 관계의 장소로서, 긍정적인 정서가 있는 장소인 동시에 파괴적인 정서가 있는 장소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족은 좋든 나쁘든 인간 자질과 가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진가─진실됨과 정직함, 거짓과 속임, 친절과 동정, 무관심과 잔인함, 협동과 인내, 자기 본위와 적의, 인내, 공정함과 공평함, 편견, 독단과 완고함, 타인의 자유와 성취에 대한 너그러운 관심, 남을 노골적으로 못살게 굴거나 심리적으로 교묘한 방법으로 지배하려는 비열한 욕망과 같은─가 일어나는 집단이다(Fletcher, 1973, p. 42).


(-) 이혼 경험은 배우자들이 가능한 대안들에 의하여 매개된다.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게 이혼은 재혼(-)이나 동거(-)를 통해 새로운 관계(반드시 더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끼리의 결합(-) 또는 집단 생활(-)에서 결혼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혼이 편부모 역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혼이 고립된 고독한 생활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혼 경험이 이혼에 관련된 사람에게 미치는 궁극적인 결과는 이러한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분명히 다르다. 끝으로, 이혼이라는 상처의 가혹함은 평생 사랑하는 결혼이라는 전통적인 이상과 단혼 핵가족의 특권적 지위에 '수반되는' 모든 기대의 함수이다. 이혼이 더욱 보편화되어 감에 따라, 단혼 핵가족에 대한 대안이 합법성을 갖게 됨에 따라, 그리고 여성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가 됨에 따라 사랑하는 부부에 대한 이상은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혼이 갖는 의미는 감소되고, 이혼은 상처를 덜 주는 경험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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