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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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때 오종선(吳從善)은 그의 『소창자기(小窓自紀)』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팔았어도 이 멍청함[痴]은 다 못 팔았고, 평생을 고쳤어도 이 고질[癖]은 못 고쳤다. 탕태사(湯太史)도 ‘사람은 벽(癖)이 없을 수 없다’고 했고, 원석공(袁石公)은 ‘사람은 치(痴)가 없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럴진대 멍청함은 팔 필요가 없고, 고질은 고칠 필요가 없다.” (-)

 

사람이 벽이 없으면 버린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병이란 글자에서 나온 것이니, 지나친 데서 생긴 병이다. 비록 그러나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김군은 꽃밭으로 서둘러 달려가서 눈은 꽃을 주목하며 하루 종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오두마니 그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손님이 와도 한 마디 말을 나누지 않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친 사람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비웃는 자들의 웃음소리가 채 끊어지기도 전에 생동하는 뜻은 이미 다해버리고 만다. _박제가 「백화보서(百花譜序)」

 

『백화보』라는 책은 꽃에 미친 김군이란 사람이 일 년 내내 꽃밭 아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절에 다라 피고 지는 꽃술의 모양, 잎새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책이다. 그는 아침에 눈만 뜨면 꽃밭으로 달려간다. 꽃 아래 아예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하루 종일 꽃만 본다. 아침에 이슬을 머금은 꽃망울이 정오에 해를 받아 어떻게 제 몸을 열고, 저물녘 다시 오므렸다가 마침내는 시들어 떨어지는 과정을 쉴새없이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린다. 그리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글로 옮겨 쓴다. 손님이 찾아와도 혹 꽃피는 모습을 놓치게 될까봐 말도 시키지 말라는 표정으로 꽃만 바라보고 있다.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저 사람 완전히 돌았군! 미친 게 틀림없어” 하며 혀를 차거나,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실성을 했누” 하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가?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다”고 박제가는 힘주어 말한다. (-)

『백화보』라는 책! 남들 하는 대로 하고, 주판알을 튕기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해냈다. 미쳤다는 손가락질, 멍청이라는 놀림에도 아랑곳 않고, 손님이 와도 시간이 아까워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하는 열정 끝에 그는 이 책을 완성했다. 그를 손가락질하던 사람은 훗날 자취조차 없겠지만, 꽃을 사랑해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그의 이름은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

 

박지원은 이런 마니아들의 세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 최흥효(崔興孝)는 온 나라에 알려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가서 답안지를 쓰는데, 한 글자가 왕희지와 비슷하게 되었다. 앉아서 하루 종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차마 능히 버리지 못하고 품에 안고서 돌아왔다. 이는 얻고 잃음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 「형언도필첩서(炯言挑筆帖序)

 

_정민_옛글의 갈피─미쳐야 미친다_디새집 이천이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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