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해 질 무렵이면 나는 또다시 마당을 쓴다.
나는 불을 피우고 아이는 조그만 꽃삽으로 열심히 낙엽을 모아 와 쌓인 재 위에 덮어 연기를 피운다. (-)
그러나 내 눈이 더 많이 머무는 것은 기분 좋은 소리로 타들어가는 나뭇잎이나 연기보다, 신기해하는 빛으로 불꽃을 열심히 지켜보는 아이의 얼굴이다. 아주 훗날 어른이 된 그 애에게 어느 순간,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쓸쓸함이 찾아올 때 문득 엄마와 함께 마른 잎을 태우던 저녁의 연기, 타버린 재 속에 숨어 있던 불씨의 추억이 떠올라 그에게 따스한 위안으로 작용하기를, 그를 낳은 부모들 또한 조그만 일에 행복해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삶의 순간들을 살아갔음을 깨닫게 되고 그 앎이 그의 생에 대한 용기와 사랑, 부드러움을 일깨울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이 쓰기의 일차적 질료가 된다고 할 때 내가 사는 세상이, 내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이 다 읽은 책처럼, 다 마셔버린 술병처럼 확연하고 투명하기만 하다면 그 친밀함과 무감각과 익숙한 것의 감옥에서,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글쓰기가 사라진 생활을 상상할 수 없었건만 그런대로 삶은 관성의 법칙과 타성에 의해,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소소한 기쁨과 자잘한 근심 걱정으로 무늬를 짜 넣으며 무탈하게 흘러갔다. 글을 쓸 수 없는 삶이란 곧 죽음이라는 비장함을 지녔던 지나간 한 시절이 젊음의 열정과 치기로 미소 속에 돌아보아지기도 했다. 규범과 관습, 질서에 충실한 생활에는 단정하고 평범한 삶의 미덕과 평안함이 있었다. 오랜 방황과 괴로움 끝에 찾아온 생과의, 세상과의 화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열망하는 자의 몫이라거나 내게 오는 모든 것들을 순하게 받아들이겠노라는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그런대로 다 괜찮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 보다 높은, 또 다른 세상의 출구를 향한 갈망과 열정에 몸이 뜨거워지며 거친 격정으로 울기도 하였다.
음악방송으로 다이얼을 고정시킨 라디오에서는 가벼운 고전음악이 흘러나오고 창밖 저만치 먼 곳에서는 이 도시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적막하다면 적막하고 덤덤하다면 덤덤한 상황이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똑같이 되풀이되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쌀을 안치고 바삐 찬거리를 손질하던 나는 문득 일손을 멈추고 거실과 주방의 트인 공간을 일별하였다. 어두워지는 시각, 넓지 않은 한 공간에서 말없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정황이 연극 무대 위의 한 장면이거나 오래된 흑백영화 화면 한 컷처럼 아득히 보이며 그와 함께 어떤 예상치 못했던 감정 즉 언젠가 훗날, 이 저녁의 정경이 나를 가슴 에이게 하고 울게 만들 것이라는 돌연하고 확실한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 나 자신 이미 이승을 떠난 혼이 되어 떠돌며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았던 집으로 돌아와 안타깝고 그립고 정답게 안을 엿보는 듯한, 비현실감과 쓸쓸함이기도 했다. 우리 둘 중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 다시 만나거나 함께할 수 없을 때 남겨진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돌이키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은 뛸 듯이 기뻤던 일도 어떤 성취의 만족감도 아닌,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풍경들이 아닐까. (-) 그 평범한 저녁은 오래전,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과도 같았고 이 순간을 얻기 위해 허덕허덕 그 먼 길을 함께 걸어왔는가 하는 탄식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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