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의 범죄 ㅣ 열림원 이삭줍기 19
D.A.F. 사드 지음, 오영주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두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실존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 어느 곳에서든 인간은 ‘기도’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토대가 된다. 인간은 ‘탄원’을 올려야 할 존재를 그리기 위해, 또 ‘사랑’하는 존재를 노래하기 위해 소설을 만들었다.
(-) 리처드슨과 필딩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연의 미로인 인간의 영혼에 대한 심오한 연구만이 소설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과 소설은 역사가가 하듯이 있는 그대로 혹은 보이는 대로의 인간만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는 대로의 인간, 죄악으로 인한 변화와 온갖 종류의 격정을 겪고 난 인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가능한 한 미덕을 향해 나아가야겠지만, (-) 이 규칙은 단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모든 인간이 복종하길 바라는 것일 뿐이며, 소설에 있어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흥미를 이끌어내는 규칙은 더더욱 아니다. (-) 가혹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악이 미덕을 때려눕히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찢어진다. 우리를 엄청나게 감동시킨, 디드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마음의 뒷면까지 피로 물들인’ 작품은 의심할 여지 없이 흥미를 유발시킬 것이고, 또 흥미만이 성공을 보장해준다.
(-) 소설은 인간을 알고자 하는 철학자에게 역사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하다. 역사의 끌은 자신을 보여주는 인간을 새길 뿐이다. 그런데 이때 인간은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다. 야망과 자만이라는 가면이 그의 얼굴을 덮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정열만을 볼 뿐 인간 그 자체는 볼 수 없다. 반대로 소설의 붓은 인간을 내면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가면을 벗은 순간의 인간을 포착한다. (-)
소설이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은 분명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지식이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듯이, 이 중요한 지식은 ‘불행’이나 ‘여행’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보아야 하고, 그들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피해자가 되어보아야 한다. (-) 마치 폭풍우로 인해 조난당한 여행자가 암초 위에 서서 격노하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쳐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듯이, 불운의 희생자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인간을 바라본다. 그런데 자연이나 운명이 그를 어떠한 상황에 놓을지라도, 그가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을 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반면 경청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
(-)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그리려는 불타는 갈증을 경험했다면, 자신의 예술을 찾고 또 모델을 길어 오기 위해 전율하며 자연의 가슴을 갈라보았다면, 뜨거운 재능과 열정적인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자신을 인도하는 손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는 인간을 꿰뚫어 보았고, 인간을 그려낼 것이다. (-) 바보는 장미를 꺾어 꽃을 따지만, 천재는 그 향기를 맡고 그것을 그린다. 바로 이런 사람의 글을 우리가 읽게 된다.
(-) 독자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느낄 때 화를 낼 권리가 있다. 독자는 작가가 자기를 속이려 하는 것을 잘 알아차리며, 또 그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자기를 속이려 한다는 것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 원하는 것을 모두 말할 수 있을지라도 서투르게 말할 권리는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그대가 만약 R***처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만 쓴다면, (-) 고생스럽게 펜을 들 필요가 없다. 아무도 그대에게 이 직업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그대가 이 일을 시작했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일을 그대의 생계와 관련짓지 말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작업은 그대의 곤궁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그대의 약점이 그 속에 드러날 것이다. 그대의 작품은 기아의 창백함을 띠게 될 것이다.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널려 있으니, 구두를 만들지언정 책은 쓰지 말라. (-)
D. A. F. 사드 _「소설에 대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