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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거짓이다. 그것은 소리치는 양심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자기 위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이다. 비인간의 삶에 미련을 갖는 자는 결코 인간으로서 죽을 수 없고, 따라서 결코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폐되어 껍데기를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異性)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한 인간이 그의 인간성을 풍성하게 하는 과정은 곧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데기를 깨고,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을 뜻한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 놀라시면 안 됩니다.”
태일이 어머니에게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어머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아들의 얼굴을 만져보니 이미 다 굳어 있었다.
팔과 다리도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화기(火氣)는 약간 가신 듯, 말소리만은 또랑또랑한 것을 보고 어머니는 외상이 심할 뿐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보려 애썼다. 그러나 역시 죽을 것 같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근로자를 위하여 애쓰는 태일이의 뜻이 이 모양으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뜻이 아니고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가엾은 목숨도 당신 뜻대로 하소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품 속에 품고 온 성경책을 아들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그러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전태일은 말했다.
“어머니 담대하세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래야 내가 말을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들,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가는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
어머니는 웬일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흉하게 탄 아들의 얼굴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 어찌 원망하겠니? 원망하지 않는다.”
예수가 인간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는 큰 사상을 실천한 것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때문임을 성경은 시사하고 있다. 가난한 이웃집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는 그의 어머니의 요청 때문에 아직 ‘자기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한다. (-)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픔을 안아야 했고, 나아가 아들의 뜻을 펴는 일에 평생을 바쳤으니 예수의 어머니가 성모로 추앙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