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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89호 - 2016.겨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우문투 응구문투 응가반투(Umuntu ngumuntu ngabantu)’,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뜻의 아프리카 속담이다.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인간됨의 마땅한 본질로 여긴, 이른바 ‘우분투(Ubuntu)’ 정신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
(-) 국가-기업의 질서하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라는 것은 ‘정규직’으로 특정되고 구체화되었으며, 이 자리를 차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을 개돼지의 자리로 밀어낸 뒤 희소해진 사람됨의 자리에 값을 매기고 흥정하는 사회는 사실상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해 여기는 한때 사회였으나 점점 그렇지 않게 되어가고 있는 박토(薄土)이고, 이런 땅에서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자격을 부득불 박탈당한 자들의 사람됨은 어떻게 보전될 수 있는가. 친척집의 삯바느질을 도우러 온 뒤 그 집 딸인 해옥과 친자매처럼 우정을 나누었다가 멀어져간 순애의 이야기(「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그에 대한 소설적 사례에 값한다.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순애는 자신을 마냥 좋아해주는 해옥에게도 그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묵묵히 허드렛일을 하는 소녀였으나, 결혼을 계기로 삶을 향한 순수한 열망을 갖게 된다. 그런 순애의 남편이 북에서 지령을 받은 반동분자로 몰려 사법 조치를 받게 되면서 이 열망은 좌절된다. 해옥은 순애의 안부를 살피는 한편 청원서를 쓰고 정의구현사제단의 선전문을 직장 사무실에 돌리는 등 사건을 해결하려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107쪽)다는 조소 섞인 반응만을 접한다. 강제로 형이 집행된 직후 그런 조소들이야말로 당대의 진실이었음을 확인한 해옥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르리라는 것”(109쪽)을 아프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준 한 직장 동료와 운명처럼 부부가 된다.
그후로도 해옥은 순애를 종종 찾아갔지만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순애는 해옥을 예전처럼 대하지 못하고, 해옥 또한 처지가 영 다르게 된 순애 앞에서 자신의 행복한 삶을 애써 감추는 식의 기만적인 배려밖에는 베풀 수 없게 된다. “엄마의 생활이 안정되어갈수록 이모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이모가 불편했”(114쪽)고 이 불편한 마음 탓에 왕래를 점점 뜸하게 하다가 종래는 아주 끊어버린다. 그렇게 해옥은 형부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초반부터 일찌감치 순애를 “없는 사람”(104쪽) 취급한 자신의 엄마나, 형부의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노력에 “애처럼 굴지”(107쪽) 말라고 충고했던 동료들의 편리한 태도를 체득하기에 이른다. (-) 처음 봤을 때부터 까닭 모르게 순애가 좋아서 뭐든 이야기하고 오래 같이 걸었던, 순애가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100쪽)임을 꿰뚫어 보던 태도를, 해옥은 잃었다.
형부가 출소한 해 겨울 순애의 집을 찾아간 해옥이 목격한 공장 뒤편 작고 허름한 방, 조카아이의 더러운 양말, 내복 차림의 형부, 사다 준 통닭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118쪽) 게걸스레 먹는 순애의 모습은 해옥을 불편하게 한다. 이 관계의 불편함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을 가누기 힘든 형부가 바닥에 앉은 채로 오줌을 누어 해옥의 옷가지를 적시는 순간 물리적으로 드러난다. 순애의 삶은 누군가를 초대하여 편안하게 배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박탈된 상황인 것이다. (-) 순애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돌연한 자각에 수치심을 느끼며 해옥을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120쪽) 제 삶으로부터 영원히 떠나보낸다. (-)
_이은지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최은영론」(『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