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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는 삼십 분 후 노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내 이야기를 들어. 너희는 도무지 열심히라는 것을 모르니까 삼십 분간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에 대해 생각해. 열심히.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열심히. 열심히에 도달하면 이제 너희의 소리와 너희의 노래가 완성되고 완성이 되면 너희는 이제. 이제 노래가 되어 세상으로 날아가는 거다, 그게 노래다.
"너는 또다시 너 자신으로 돌아왔구나. 그게 어떤 건지 알기나 해?"
"몰라. 나도 나를 모르는데 아저씨가 보는 나를 어떻게 알지?"
남자는 다시 말을 시작한다. 너는 새로운 자신으로 나아가야 해. 열심히의 세계로. 아름다움과 정신과 정열의 세계로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해. 이러면 안 돼. 테이블이 부서질 때까지 자신을 부수고 테이블이 부서짐과 동시에 자신도 부수고 태어나야 해 새롭게. 그러니까 너는 생각해봐. 너는 아냐. 너는 지금 셀린 디온도 아니고 코트니 러브도 아니고 이렇게 가다간 영영 되지도 못해. 니가 뭐가 되겠니? 너는 그렇다고 엘라 피츠제럴드라든가 그런 쪽도 아니잖아. 그쪽으로는 싹수가 안 보여, 여하튼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뭐냐, 너는 그러니까 아름다운 건 못 된다는 거야. 왜? 너는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똑바로 보라고, 그게 미래인데 그게 아름다움인데 그쪽으로 가야 해 그렇게 가야 한다고 학생. 다른 길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봐 뭐가 될 만하니 다 웃기지도 않지. 그러니까 계속 생각해봐. 자 자. 뭐 생각하다 보면 누군가 될 만한 인물도 있기야 하겠지. 어쨌든 그런 사람들처럼 되어야 하지 않겠어? 얼른 테이블을 부숴야지. 우리가 세상을 뒤흔들어야지. 남자는 여주의 어깨를 붙잡고 말한다.
나는 3번 방에 앉아 있는 남자를 뒤로하고 카운터에 가서 앉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애초에 손님도 별로 없었다. 애초에 손님도 별로 없고 낡고 이름도 이상하지 구름새 노래방 이런 데 오는 게 아니었다. 여주야 너는 똑똑하고 말도 잘하면서 왜 이런 데 왔니? 나는 멍청하고 생각도 없고 병준이는 왠지 레트로해서 좋다고 증말 다시 생각해도 민망한 말을 하며 왔지만 너는 안 그렇잖아. (-) 사실 나에게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어. 어제 노래에 대해 생각했거든 검은 옷 남자의 주입 때문에 한 번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도 있고 그러니까 너만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게 아냐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 물론 내 생각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여기서 어떻게 나갈지 이런 건설적인 것도 못 된다. 검은 옷 남자에게 금방 수긍하고 노래에 대해 생각해버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생각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히 말하면 검은 옷 남자는 뭐랄까 지망생의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지망생도 못 되기 때문에 오히려 노래라는 주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남자는 열심히에 대해 말하지? 하지만 잘못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있다면 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지? 하는 비뚤어진 교정 의식과 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지? 하는 피곤한 자학이 둘뿐이었다. 뭐 열심히 해서 뭔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게 필요하긴 하지. 나는 게임은 꽤 잘하는데 그건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된 것도 있으니까. (-) 뭐 양보해서 열심히가 중요하다고 쳐도 정말로 열심히의 세계가 있겠어? 있다 해도 그게 튼튼해? 검은 옷 당신의 말처럼 열심히의 세계로 만들어진 노래가 자기의 몸을 부수고 세상에 던져질 만큼 튼튼해? 게다가 열심히로 만들어진 노래라니 조금도 듣고 싶지 않잖아. 안 그래? 정말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는데 아니라고 생각해.
(-) 여주는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자려고 하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경찰 경찰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깨웠다.
"뭐라고?"
"경찰서에 가야지. 얼른 신고해야지."
"뭐라고 신고해? 컵라면만 줬다고? 노래를 시켰다고?"
"미친놈아. 우린 유괴당한 거거든?"
"정신 차려."
"정신 차렸어."
"갈 수 있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주는 내 어깨를 흔들었다.
"둘이 가서 남자를 가두면 되지 않을까?"
"가두자고? 어떻게?"
"끈으로. 동시에 때려서 방심한 틈에 이렇게 끈으로 묶으면 되지 않을까?"
"죽어도 싫어."
"나는 그 남자가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벌은 내가 줘야 한다고 생각해. 벌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놀리고 곤란해서 스스로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고 무릎 꿇고 빌었으면 좋겠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 하랄 땐 안 하고 왜 이럴 때 갑자기 적극적인 거야.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당장. 난 집에 가고 싶어. 경찰서에 신고하고 맛있는 거 먹고 그냥 자고 싶다고."
"그럼 넌 집으로 가. 집으로 가서 엄마 아빠한테 말을 해. 그럼 엄마 아빠가 신고를 해줄 거야. 그사이에 나는 남자를 괴롭힐 거야. 마이크로 머리를 때릴 거야."
"저는 열심히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고 왜냐면 열심히의 세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아무리 때려도 이걸 맞고 죽지는 않겠지? 이러고 우리가 나가면 비틀거리며 일어나 내일이면 다시 옆집 고양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럼에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그걸 강요하고 어린애들을 붙잡아 요즘 젊은 것들은 열심히도 모른다고 훈계하겠지? (-) 어떻게 해도 남자는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니까, 생각도 했지, 그러니까 생각한 걸 말했다는 거야. 그렇게 안 함. 당신이 말한 것에 수긍하지 않음. 그걸 말했다니까. 나는 소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여주는 내 손을 잡아당긴다. 우리는 3번 방의 문을 닫고 나온다. 정말 피곤하다.
(-) 나는 집요하고 치사하기만 한데 여주는 힘이 있다. 검은 옷 남자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열심히라는 게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름다움이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지도 모르지. 왜 여주같이 잘 달리는 사람에게 셀린 디온을 들먹이는 거야? 그 여자가 달리기도 잘해? 그런 걸 열심히 하니까 감상적이기만 하니까 그저 음악 지망생, 노래의 세계에서 끝 번호에 있는 후보 같은 거야. 프로가 아니라니까. 뛰어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봤는데 하나도 예쁘지 않고 정말 평범하다. 그런데 너무 잘 뛰니까 금방 사라져버렸다. 사라졌으니까 생각한다. 눈앞에 있는 걸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라지는 건 생각하고 싶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 자꾸만 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잠이 들지만 꿈은 꾸지 않는다. 왜냐면 너무 피곤하니까. 일주일쯤 갇혀서 일을 하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 하고 그리고 생각도 하고 화도 내고 괴롭히고 싶은 사람을 괴롭혔으니까. 이제 자야지. 이제 자도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해서 그렇게 하찮은 것도 이제 생각한다. 자야 된다 말아야 한다 그런 것도 생각한다. (-) 그러고 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지. 남자는 살아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며 노래방은 불에 타지도 부서지지도 않았고 나는 피곤하기만 하다. 그런데 피곤하기만 한 것은 자꾸만 잠을 자게 하니까 뭐 좋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 아 잠만 열심히 자야지 열심히 안 해 아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한다. 안 해 절대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