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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빛 - 쟝그르니에전집 16
장 그르니에 지음, 함유선 옮김 / 청하 / 1990년 12월
평점 :
절판
(-) 새벽은 곧 아침이 오리라는 약속과 같은 것이므로, 오로지 그때만 진실로 아름다울 뿐이다.
자갈투성이인 어떤 오솔길 한가운데에서, 아니면 가난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느 고샅길을 가다가, 자신의 알 수 없는 내밀한 감정에 휩싸여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수가 있다. 그들은 문득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헐벗은 대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내던져져 있었던 것이다. (-) 그들은 마침내 영원하다고 느껴지는 어느 순간에 그처럼 터져 있는 상처들을 손으로 어루만진다. (-)
우리의 불안한 마음은 너무나도 커다랗고, 우리의 근심 또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엄청나다. 우리의 생활은 낮에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밤에는 너무나 불확실하기만 하다. 여기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가 하면, 저기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
차라리 빨리 취해 버리자. 만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육제가 있었다면, 성 토요일Samedi-Saint에 여전히 취했었듯이, 나는 술을 마실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에 가면, 너무나 많은 방향들이 있다. 박물관에 가보면 너무나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찻집에 가면 너무나 많은 음료들이 있다. 약국에 가면 너무나 많은 약들이 있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특히 무엇보다도 저녁 여섯 시에 나의 호텔방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은 이제 곧 저물어 갈 것이고, 램프 불빛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나 혼자 이렇게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제는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
오늘 아침 나는 가벼운 고통으로 잠이 깨고 말았다. 그것은 오래된 어떤 상처 하나가 나의 삶의 습관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안다.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고통을 느낀다. 알지도 못하고 다만 느끼고 있는 짐승들이여 행복하여라.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그 수많은 상처로 인해서 나는 나의 피가 흘러 넘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주 전체를 향해 나의 온몸을 열어 놓은 채 그대로 있다.
우리 인간들 중에서 그 어떤 사람도 자기를 실제의 자신보다 더욱 나은 사람으로 행세하게 하거나, 어쨌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결코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그 자신의 어떤 영상이 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