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철학 - 사상과 그 원천 들뢰즈의 창 3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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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글은 깨끗하고 말은 더럽다"고 언급하죠. 왜냐하면, 말은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유혹(seduction)'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꼭 전달해야 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귀를 열도록 유혹에도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죠.

집에 도둑이 들면 주위에 있는 무엇이라도 도구로 삼아 손에 들고 휘둘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면한 절실한 문제가 우리 주변의 학문을 필연적인 도구로 만드는 것이지, 그 태생이나 기원이 그렇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요. 

기호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미지의 어떤 것입니다. 들뢰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서 바로 이 기호의 의미를 이렇게 흥미로운 방식으로 알려주죠. 가령 남녀 간의 연인 관계에서 절실하게 필연적으로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미지의 어떤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애인의 거짓말입니다.

애인의 거짓말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당혹감, 배신감, 궁금함에 몸서리를 치면서 그 이면의 진실을 찾고자 나서죠.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지식은 좋은 것이다. 참된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니 참된 것을 한 번 찾아보자' 이런 식으로 미리 준비된 마음가짐에 따라서 진실을 찾는 게 아닙니다. 마치 애인의 거짓말처럼 무엇인가를 사유할 수밖에 없도록 밖으로부터 강요받고서야 진실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어떤 근본적인 것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워 넣으려는 갈망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전형적인 플라톤 식 사고입니다. 모든 것이 충족된 초월적이고 모범적인 것을 상정하고 현재를 결핍된 상태로 가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들뢰즈는 욕망이 사실은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들뢰즈가 보기엔 이런 욕망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여기의 삶을 살도록 하는 추동력이고 더 나아가, 사람들 간의 관계 또 세상을 바꿔가는 힘이죠.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729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라는 암소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등에 역할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나섰다가 아테나 시민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 죽었던 기원전 수백 년 전부터 철학은 우리를 평균적인 일상성 속에 머물지 못하도록 우리를 괴롭히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의미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건 죽은 자들과 맞바꾼 모종의 등가물을 가지게 되는 것이 한없이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죽은 이들은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하는데, 왜 삶을 소유한 우리는 삶에다가 덤으로 의미나 교훈 같은 것을 죽은 이들에게서 또 빼앗아 가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야 할 자가 살아있기에 뭔가 깨달은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체험이나 학습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 구체적인 이해관계나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넘어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를 공동체로 묶어주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을 세월호 비극을 경험하고 추모함으로써 알게 된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경험은 앞으로 우리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을 집단으로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말씀 정도는 감히 드리고 싶습니다. 세월호 앞에서 사유가 움직인다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 때문에 움직인다고.



_서동욱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731&ref=nav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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