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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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어느 날, 생브누아 거리

 

너는 내게 무얼 기다리느냐고 묻는군.

나는 대답한다, 모른다고.

기다리는 것.

바람의 변전變轉 속에서.

어쩌면 내일 나는 네게 또 편지를 쓸 거야.

 

우리는 이걸로 살 수 있어.

웃고 뒤이어 우는 걸로.

 

 

1894년 10월 14일

 

1914년 10월 14일. 여기서 제목은 저자에게 말고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그 제목은 그러므로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그 제목은 또 이걸 기다린다. 하나의 제목을, 하나의 시멘트를.

나는 숙명의 날짜에 바짝 다가서 있다.

그 날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날짜는 금빛 종이 위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남자의 금발 머리 위에 새겨져 있다.

어린아이의 머리.

나는, 난 이걸 믿는다. 나는 어린아이의 머리와 나란히 씌어진 것을 나를 넘어서 믿는다.

그것은 기록의 잉여다. 그것이 기록의 한 의미다.

그것은 또한 거길 스쳐지나간, 그 어린아이를 스쳐지나간 사랑의 향기다.

 

욕망의 미지未知를 죽도록 읽고 싶어했던, 한 어린아이의 몸내음을 맡았던 방향 없는 사랑.

독서 텍스트가 지워질 때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10월 15일

 

나는 내게 꼭 들어맞는 자유 속에서 나 자신과 접촉하고 있다.

 

 

침묵, 그러고 나서

 

내게는 본보기가 있어본 적이 없다.

나는 복종하면서 불복종했다.

글을 쓸 때, 나는 삶 속에서와 같은 광기에 휩싸인다. 글을 쓸 때 나는 돌덩어리들을 다시 만난다. 『태양을 막는 방파제』의 돌들을.

 

 

1994년 12월 25일, 파리

 

어린아이들의 비가 내렸지, 햇빛 속에서.

행복과 함께.

 

 

3월 25일 토요일

 

수십 년이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세상의 이편에 있다.

죽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삶의 어떤 순간에, 사물들은 끝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사물들이 끝난다고.

바로 그렇다.

 

 

성 금요일

 

네 눈물 속에, 네 웃음 속에, 네 울음 속에

날 데려가렴.

 

 

같은 일요일

 

선한 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너야. 넌 그걸 철석같이 믿어야 해, 너는.

 

 

6월 28일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

 

 

침묵, 그러고 나서

 

난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런 식의 삶일지라도.

좋아, 난 말들을 찾아냈어.

 

 

침묵,그러고 나서

 

삶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그걸 모르지. 살려고 애써야 해.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선 안 돼.

이게 다야.

이게 내가 해야 할 모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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