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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문화사 - 죽을 수 있는 자유
게르트 미슐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시공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런던에서는 1829년에 시경이 세워지기 전까지 시청 직원이 자살 사건 우범 지역을 정기적으로 순찰했다. <휴먼 소사이어티>의 구성원들은 밤중에 하이드 파크의 연못이나 호수를 순찰했다. 1840년대까지만 해도 멘체스터와 런던의 경찰은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체포했다. (-) 많은 의사들에게 조울증과 망상은, 문제가 많고 비도덕적인 질환이었다. 그들은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훈계의자'라고 부르는 회전의자에 앉혀 놓고 일장 훈계를 하거나, 찬물로 샤워를 시키거나, 고의로 훼손된 자아감이나 자기애에 '도덕적 처치'를 해주었다.
나바호족은 (-) 자살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모든 생명의 아버지를 불쾌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들이 저 세상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벌로 자살할 때 사용했던 도구를 영원히 들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목을 매달아 죽으려는 수족과 나바호족은 가능하면 작은 나무를 선택해서 죽었다.
콜로라도 강 연안에 사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모하비족에게도 자살은 금기 사항이 아니었다. (-) 그들은 모든 종류의 죽음은 의지에 따른 행동이며, 자살도 예외가 아니라고 인식했다. (-) 모하비 문화는 모든 죽음을 자살로 간주했다. 죽고는 싶으나 자신을 스스로 죽이고 싶지 않아서 타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것도 자살과 같다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적의 손이나 마법으로 죽게 되는 경우도 자살로 인정받았다.
모하비족의 신앙은 개개인에게 자살을 감행할 수 있도록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제공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 파탄, 사랑의 실패, 근친상간 또는 질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며, 그 외에도 죽은 자들이 '영원한 사냥터'로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유혹했다는 이유로 자살했다. (-)
트로브리안드 섬에서 근친상간 죄를 저지른 사람은 소카라는 물고기의 쓸개즙을 마시고 자살해야 했다. 쓸개에 들어 있는 독이 너무나 강해서 누구든 일단 그것을 마시면 순식간에 즉사했다. 남태평양에서는 자살할 때 독성을 지닌 덩굴식물에 목을 매달거나 야자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노인들과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목을 졸라 달라고 부탁하거나 산 채로 매장되었다. (-)
그곳에서 살아가는 삶은 사회에 봉사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이에 실패한 사람은 전통적인 (-)도덕에 따라 자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소위 '실패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단결과 진보를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 가족에게 수치심을 준 자들도 자살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 이 세상은 질병과 노령화 같은 고통으로 가득 찬 중간 역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인간의 진정한 고향이 아니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몇몇 예외적인 교파들만이 죄인들에게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받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할복자살할 때 무사들은 맨 먼저 자신의 칼에 몸을 던졌다. 이때 중요한 사항은 복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복부는 중세 일본인들의 도덕 규범에서 진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얼굴은 사회적인 예의를 표할 수 있지만, 복부는 삶의 원초적인 힘과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어떤 시대에서든 경멸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살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회나 종교 또는 도덕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는지 금지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
오늘날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사회적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종교, 철학, 도덕적인 금지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는 사람도 드물다. 대부분 자살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고통이나 질병, 노령 또는 외로움 때문에 죽는다. 그런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 일부분을 누리지 못한다. 서구 인권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한, (-) 스스로 삶에 종지부를 찍어 자신의 존엄을 지킬 권리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삶이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에게 삶은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가 된다. 그때 삶은 일종의 강요나 속박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는 오직 자살만이 그러한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삶이 실패했다고 여겨질 때 자살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행동이다. 자살은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계속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연에 반하는 행동이다."
고통과 권태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이 도움과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하고, 죽으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부할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조롱받지 않으면서 삶을 그만둘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방해할 자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
충분히 숙고한 뒤에 그야말로 자유 의지로 자살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자살한 사람의 친구들, 친척, 의사, 이웃이나 동료들은 대부분 ‘그 행동’을 경멸한다. 그들은 대부분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슬픔과 고통을 느끼기는 하지만 동정과 이해는 불가능하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살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결정에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