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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도 가끔은 생을 향한 애착을 드러내고야 만다. 한밤중 어느 친구와 함께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오곤 했다는 일화가 그렇다. 그 친구는 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니라 바닥에 유리 파편이 잔뜩 흩뿌려진 골목으로 굳이 돌아서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가로등 불빛과 빗물과 깨진 유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우연한 결합”을 딜런과 함께 목격하고 싶어했다고. 딜런은 그 길을 친구와 함께 거닐면서, 바닥에 흩뿌려진 빛점들을 내려다보면서, 마치 별자리 위를 가로지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쓴다. 반짝이는 성운들을 관통하며 죽음의 순간을, 동시에 탄생의 순간을 감지했다고. “이런 것들을 누가 보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쓴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딜런이 당연히 동성애자일 거라 여겼다. 그와 함께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오곤 했다는 친구를 그의 숨겨진 파트너로 치환해 읽었다. 어째서 그랬을까. 평소에도 나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처리해놓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통해 이러한 확신에 빠지곤 했다. 내 멋대로 추측하고 판단하여 저자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읽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아버지.
나는 매번 그렇게 외치려는 순간에야 내 입에 재갈이 물려 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구해주기 위해 천국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보인다. 결박된 내 처지에 아랑곳없이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걸음걸이라는 점 외에는―어쩌면 그래서 더욱―완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으버지(아버지).
나는 재갈을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린다.
빠이 아 어시고 모애오(빨리 안 오시고 뭐해요)?
그렇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다보면 어느새 그는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온화한 눈빛으로 나를 굽어살핀다. 의자 주변을 느릿하게 한 바퀴 돌면서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한다.
드아주세오(도와주세요).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간청한다.
이어 조 푸어다하오요(이것 좀 풀어달라고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내 앞에 선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한 걸음 다가와서는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내가 의아해하며 올려다보는 사이 마지막 단추까지 풀어젖힌다. 다만 셔츠를 벗어던지지는 않고―갈라진 가슴골과 복근을 드러낸 채―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는다.
나는 그 꿈을 수없이 꾸었음에도 매번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새삼스레 놀라워한다.
아버지는 두 손을 뻗어 내 바지의 벨트를 풀기 시작한다. 철그렁거리는 쇳소리가 나고, 내가 영문을 몰라하는 동안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바지를 끌어내린다. 단숨에 팬티까지 벗긴다.
으버지(아버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쳐다본다.
지그 모아이는 거에오(지금 뭐하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