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문학동네 시인선 210
권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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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해를 끼친 사람은 피해를 본다/고 믿었던 적 있다//하지만 다정한 사람도 아프고 못된 사람도 아프고/앞뒤 가리지 않는 불행을 과연 저주라 할 수 있을까//내가 기계처럼 느껴질 때 있다/‘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기계라는 말이 있는데 난 똥마저 하루 한 번 못 만들고//(-)//앞으로 백 년도 못 살 텐데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좋지/최선을 다할 기운만 있다면……(저주 기계부분)

 

세상의 비참한 죽음을 접할 때/내가 죽어버렸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가슴을 치는 날이 많다 나는 할머니들처럼 엄마들처럼/운다 다른 방법을/내게 다른 방법을//제발이라는 말보다 진짜라는 말을 쓰면서 쫌이란 말을 쓰면서/나는 나에게 매달려 있다/내게 다른 방법을(반지하부분)

 

 

내가 말할 고통은 이런 게 아닌데

 

 

권민경

 

 

목덜미가 뜨거워지면 이런 멍청이라고 말한다

뒤통수를 타고 오르는 머리칼

 

오후의 아버지는 혼잣말로 욕을 한다

방에서 컴퓨터 하는 나를 향한 욕일까봐 놀라지만 아무래도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한다

그럼 그 욕은 어디로 간단 말인지

누군가는 반드시 욕을 먹어야 할 텐데

 

밤이 오는 동안

라면 냄비 속 중탕해놓은 약봉지

차갑게 식어버린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어둠

식탁 앞의 아버지는 앉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실은 지켜보지 않아서 모르겠어……

아버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오려서 식탁 앞에 앉혔고

지금은 그 자세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구부러진 아버지

포클레인으로 배경까지 떠 옮긴 것처럼

욕과 늦은 오후도 이불 속으로

 

요샌 아버지가 좋아져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고

아빠가 싫어지면 다시 아버지가 될

그와 나 사이에 닮은 점

우리는 서로의 병을 공유하지 못하지만 항상

어딘가 아픈 상태이다

난 고환이 아플 수 없고 아빠는 난소를 잃을 수 없지만

아픈 곳이 어디든 상관이 있는지?

정말 어디가 아픈지 알고 싶은 거야?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착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에게 윽박지르고

영원히 나는 윽박지르는 자세로

버스에 올라타고 창문을 내다보고 기스 난 부분을 쓰다듬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늘 윽박지르는 그대로이다

여러 번 붙여넣기를 한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모가지가 달랑달랑

 

아빠 아빠 아빠 몰아붙이는 마음

이분의 일 확률로 물려받은 나의 병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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