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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ㅣ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19년 11월
평점 :
(-) 우리는 그렇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그것을 빼앗았다가 바로 되돌려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딱하게도 C는 내게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는(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말씀을 들려주었다. 그처럼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을 향한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라고 할 때 나는 기겁한다. (-) 만약 어머니가 죽은 아이를 잃었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아이가 무엇을 잃어버렸나를 생각하며 슬퍼한다면, 죽은 아이가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위안이 된다.
(-)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됨에는 위안이 되지 못하리라. 특히 어머니로서의 행복은 지워 버려야만 하리라. 어느 곳 어느 때에도 그녀는 다시는 무릎 위에 아이를 올려놓지 못할 것이며, 목욕시키지도,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아이의 미래를 계획하지도, 손주를 보지도 못하리라.
사람들은 이제 H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평화롭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는 걸까? (-)
왜 사람들은 모든 괴로움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고 확신하는 걸까? (-) 그녀가 '안식'한다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다른 것은 다 제쳐 두더라도, 남은 사람을 이토록 괴롭게 하는 이별이 떠나는 사람에게는 왜 고통스럽지 않단 말인가?
왜 나는 마음속에다 이처럼 쓰레기 같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남겨 놓는 것인가? 이렇게 하면 마치 내가 덜 느낄 수 있기라도 하는 양, 손바닥으로 느낌을 가리려 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기록이, 고통이란 겪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의 의미 없는 글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누가 있어 아직도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요술장치가 (찾을 수만 있다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겐가? 치과에서는 손으로 의자를 꽉 붙들고 있든, 손을 점잖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드릴은 입속을 파고들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슬픔은 여전히 두려움처럼 느껴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중간한 미결 상태 같기도 하다. 혹은 기다림 같기도 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은 삶이 영원히 임시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을 가치 없어 보이게 한다. (-)
H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올바른 영혼을 지녔으며 영민하고 칼과 같이 벼려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성인은 아니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수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고, 아직까지 치유받지 못한 남녀들이었다. 거기엔 닦아 주어야 할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박박 닦아 내야 할 얼룩도 있었음을 나는 안다. (-)
(-) 눈물로 눈이 흐려져 있을 때는 어느 것도 똑똑히 보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필사적으로 원하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 (-) "자! 우리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해 봅시다"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은 조용해져 버린다. '오늘 밤에는 반드시 잠을 푹 자야 돼' 라고 생각하면 몇 시간이고 깨어 있기 십상이다. (-) 구하여도 '너무 절박하게 구하는 자는' 얻지 못하리라. 얻을 수가 없으리라.
이것이 내가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 빈 공책이다. 거의 빈 공책이다. 제일 마지막 몇 페이지에는 옛날 J가 산수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까지만 끄적거리기로 결심한다. 이런 목적으로 공책을 새로 사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내가 어떤 상태를 묘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닌 역사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임의로 어느 지점에서 그 역사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날마다 기록해야 할 새로운 것이 있다. 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 (-)
_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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