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111호 - 2022.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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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페미니스트의 ‘돌봄’ 실천 가이드」의 초안

하나. 퀴어-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서 돌봄은 공동의 책임이다. 긴급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되 반드시 다른 사람과 내가 받은 책임을 나눠야 한다. 이것은 돌보는 일이 나를 죽일 가능성에 대한 배려다.
둘. 아무런 보답도 감사도 기대하지 말고 돌볼 것. 돌본 사실을 절대적으로 망각할 것. 이것은 돌보는 사람에게 혹시나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지배력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불가능한 수준까지 망각할 것.
셋. 돌보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술은 사랑이나 우정으로만 습득되지는 않는다. 그는 내 진심 따위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넷.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만큼이나 나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것.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있어 나의 우위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다섯. 이 모든 상황이 버겁다면 부디 그만둬야 한다. 한편으로는 아군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히 우리의 방법이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는 그가 죽으려는 힘이 내가 살리려는 힘보다 더 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섯. 그리고 어쩌다보니 살아 있는 우리는 남아서 침대에 누워 그들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것들을 우리의 소중한 유산으로 삼을 것이다. 그들이 아는 우리의 모습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겨우 이런 것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_이연숙, 「퀴어-페미니스트의 ‘돌봄’ 실천 가이드」를 위한 예비적 연구, 문학동네 202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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